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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목하는 시 한 편/김민철

by 정령시인 2016. 3. 12.

<내가 주목하는 한 편의 시>

홈쇼핑에 관한 우화

이종섶

배나무는 홈쇼핑 콜센터이다

애벌레 상담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출근한다

배의 씨방마다 들어가 앉아

당도 크기를 잰 서류를 꼼꼼히 체크하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전화벨 소리

철책선을 몰래 넘어온 구름과

대마도 근처에서 파도를 잡고 올라온 돌고래와

금촌의 양계장에 갇힌 닭들이 아침부터 소란을 떤다

그래도 배나무 홈쇼핑에는

비매품으로 꽃향기까지 포장도 해주고

그 누구보다 빠른 참새 퀵서비스까지 있으니 걱정하지 말 것!

갑자기 통화연결이 되지 않으면

애벌레 상담원들이 우화하는 시간이니 내년에 연락하시길!

-김민철, 「홈쇼핑 콜센터」, 『시인수첩』 2014년 가을호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김민철 시인이 『시인수첩』 2014년 가을호에 세 편의 시를 발표했다. 「산책은 악몽을 좋아한다」, 「미라처럼」, 「홈쇼핑 콜센터」가 그것인데, 그중에서 「홈쇼핑 콜센터」를 한 편의 시로 선택했다.

김민철 시인의 시 세 편에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바퀴벌레”(「산책은 악몽을 좋아한다」)와 “기생충”(「미라처럼」)과 “애벌레”(「홈쇼핑 콜센터」)가 각각 등장하는 것이다. 이 벌레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바퀴벌레”는 “내 머리맡으로 옮겨오”다가 “방심의 순간 꿈에까지 뚫고 들어”와서는 마침내 “나의 악몽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기생충”은 “사람이 죽고 영혼은 빠져나”간 뒤에도 “아직 몸에 남아 내장을 가꾼다”. “애벌레”는 “배나무 홈쇼핑 콜센터”의 “상담원들”로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서 일한다.

벌레가 “꿈” 속에 들어오고, “몸” 속에서 일하며, “배” 속에서 근무하는 이러한 풍경은 하나의 거대한 은유적 구도를 보여준다. ‘전체와 개인’, 또는 ‘전부와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일부’가 보여주는 그 역학관계적 에피소드의 감정은 「홈쇼핑 콜센터」에 이르러 우화적 수법을 만나 다양한 빛깔의 파장을 드러낸다. 그 파장의 중심 줄기는 ‘부정과 긍정’, 다르게는 ‘비판과 수용’이다. 김민철은 이런 개념을 시인답게 표현한다. 그 어느 쪽을 택하든 그것은 본질의 일부일 뿐이며, 그 본질을 드러내거나 그 본질과 다르다고 비판할지라도, 그것 역시 시가 가져야 할 자세와 덕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화적 기법은 본질과 그 역행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홈쇼핑”에 관한 양면적 접근이 “향기”롭게 “포장”된 우화를 통해, 부드럽게 그리고 오래도록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것이다.

어쩌면 김민철 시인 자신이 “바퀴벌레”요, “기생충”이요, “애벌레”일지도 모른다. 김민철은 “바퀴벌레”처럼 “무중력 속을 산책”하고 “길을 더듬으며 걷”다가, “걸레에서 목을 축이”고 한 사람의 “꿈에까지 뚫고 들어”가 그의 “악몽”에 관여한다. 김민철은 “죽고 영혼은 빠져나”간 사람이나, 그와 같은 지구와 우주 속에서 “아직 몸에 남아 내장을 가”꾸면서, 불멸의 미라를 위해 일하는 “기생충”으로 기능한다. 김민철은 거대한 “홈표핑” 구조와 관계망 속에서 “애벌레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신분이 좋거나 부자도 아닌 “철책선을 몰래 넘어온 구름과/대마도 근처에서 파도를 잡고 올라온 돌고래와/금촌의 양계장에 갇힌 닭들”을 상대한다. 그러면서 “비매품으로 꽃향기까지 포장도 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그 누구보다 빠른 참새 퀵서비스까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다정함도 보여주는 한편, “갑자기 통화연결이 되지 않으면/애벌레 상담원들이 우화하는 시간이니 내년에 연락하”라는 배짱도 보여준다.

김민철의 이러한 위치적 역할은 그 자체로 우화적이다. 시인이 어떤 존재이며 또 무엇을 말해야 하는 가를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통해 드러내는 방식 또한 그렇다. 이것이 그의 시가 가진 특질이라면, 아마도 그 특질을 십분 발휘해서 내어 놓는 시들마다 그 울림이 사뭇 오래가지 않을까 한다.

김민철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세상을 “산책”하는 것이며, ‘죽은 사람’ 안에서도 일하는 것이며, 시대를 수신하는 “홈쇼핑 콜센터”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의 시가 활자화되고 보여질 때, 그는 당신과 나의 “꿈” 속으로 “뚫고 들어”올 것이고, 당신과 내가 ‘죽은 자’처럼 살아갈지라도 그 속에서 끝까지 꿈틀거릴 것이며, 당신과 나를 “홈쇼핑” 고객 삼아 끊임없이 “콜센터”를 운용하며 전화를 주고받을 것이다.

주도권은 당신과 나에게 없다. 오직 김민철에게만 있다. 그게 싫다면 “악몽”을 꾸지말거나, 죽지 않거나, 미디어와 상품을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러니 김민철의 시가 보일 때마다, 긴장을 풀고 조용히 항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