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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시집6

바라기들 바라기들 바다는 하늘이 좋아서 푸른 거야.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하는 저 물결 좀 봐. 갈매기 날개 털며 주례 보러 오고 있네. 하늘은 바다를 아우르고 바다는 하늘을 아우르고, 한없이 출렁대며 서로서로 바라보고만 있잖아. 2022. 6. 11.
자자, 나비야 자자, 나비야 빛깔에 끌리기로 하자 아침에는 주홍빛의 능소화 노란 금계국 붉디붉은 찔레 빙빙빙 후리며 돌다보니 겨드랑이가 결린다. 날갯죽지가 뻑뻑하다. 향기를 따르기로 하자 저녁에는 붉은 장미 바라보다가 코가 따갑다. 목련꽃 핀 자리에는 아련한 어머니의 냄새 고상하다는 튤립 옆에서 어깨를 편다. 옆집 누이 치마 속이 궁금해지는 명자꽃 정강이가 가렵다. 달개비꽃길 따라 맴맴 돌다가 보르르 날개를 접고 숨을 고른다. 2022. 3. 31.
두더지 잡기 두더지 잡기 남의 몸 희멀건 속살을 몰래 돌려보다가 심봤다 외쳐 뿍 어깨를 으스대며 동기동창동향선후배 출신 골라 따져 빡 주름 펴고 눈썹 문신 점 찍고 염색하고 보정하고 고쳐 뽁 점점점 커지고 드세어지고 번들거리며 나불대다가 쳐봐 호되게 때리는 방망이들 왜 때려 또 때려 아야 자꾸 쳐 저마다 잘난 세상 무조건 튀어야 사는 무리들이 우르르 뿍 빡 뽁 아야 왜 때려 또 때려! 자꾸 때려도 튀어나온다. 2022. 3. 28.
달 달이 뜬다. 노란 달이 뜬 어제는 그제 버린 사람 눈썹이 예쁘다 했네 빨간 달이 뜬 그제는 작년에 잊은 사람 입술이 달다 했네 파란 달이 뜬 작년에는 옛날에 잊은 사람 목선이 곱다 했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단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네. 달은 내일도 낼모레도 내년에도 뜰 것이네. 달이 진다. 노란 달도 어제 주운 사람도 멀어져 간다. 빨간 달도 그제 찾은 사람도 멀어져 갔을까. 파란 달도 작년에 보았었던 사람도 달 따라 갔다. 캄캄한 하늘에 별도 따라 떨어져 운다. 점점 날을 잃어가며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이운다. 작년에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듯이 날마다 단 웃음을 지으며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뜰 것이다. 달이 뜨고 진다. 2022.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