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나비야13 사과를 기다리는 사과 /정령 사과를 기다리는 사과 창밖 햇살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꾸벅꾸벅 졸아요 볼 빨간 사과가 과묵한 사과를 오매불망 기다려요 사과에 독이 들었는지 벌레가 들었는지 베어물기 전에는 이렇다 저렇다 볼 빨간 사과도 과묵한 사과도 잘 몰라요 이름만 사과인 사과도 사과를 찾아와 사과를 내밀어요 물망초를 수놓은 조각보에 사과가 앉아 사과를 기다려요 사과들이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살살 걸어와요 사과가 헤벌쭉 인사를 하면 햇살은 더 꾸벅꾸벅 졸아요 2022. 9. 1. 바라기들 바라기들 바다는 하늘이 좋아서 푸른 거야.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하는 저 물결 좀 봐. 갈매기 날개 털며 주례 보러 오고 있네. 하늘은 바다를 아우르고 바다는 하늘을 아우르고, 한없이 출렁대며 서로서로 바라보고만 있잖아. 2022. 6. 11. 자자, 나비야 자자, 나비야 빛깔에 끌리기로 하자 아침에는 주홍빛의 능소화 노란 금계국 붉디붉은 찔레 빙빙빙 후리며 돌다보니 겨드랑이가 결린다. 날갯죽지가 뻑뻑하다. 향기를 따르기로 하자 저녁에는 붉은 장미 바라보다가 코가 따갑다. 목련꽃 핀 자리에는 아련한 어머니의 냄새 고상하다는 튤립 옆에서 어깨를 편다. 옆집 누이 치마 속이 궁금해지는 명자꽃 정강이가 가렵다. 달개비꽃길 따라 맴맴 돌다가 보르르 날개를 접고 숨을 고른다. 2022. 3. 31. 싸락눈 싸락눈 / 정 령 소리도 없이 눈치도 없이 오는 듯 안 오는 듯 풀풀 싸락눈 날리는 날 꼬르륵 소리가 먼저 대문을 열었습니다. 쌓이지도 않은 눈길에 미끄러진 어머니의 낡은 신발 겨울눈 다 녹도록 툇마루 밑에서 끙끙 앓았습니다. 방학 내내 아버지 작업복 꼬질꼬질 땟자국 덜 지워지고 .. 2020. 3. 18.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