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정령
지나고 보면 찰나, 그 짧은 깨달음
― 강우식 시집『가을인생』에 대하여
1. 섬세한 감각으로 보는 초록
스승의 날 즈음, 선생님께서『가을인생』을 내시고 조촐하게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너는 내가 늙어서 너희들이 만드는 ≪아라문학≫ 같은 건 안보는 줄 알지? 너 요즘 산문이 아주 좋아졌더라. 제법 쓰더라.’ 하셨다. 그리고 편지도 몇 년 만에 받아보는 건데 고맙다 하시면서 가지고 간 카드를 보시고는 ‘잘 만들었구나.’ 하셨다.
그 칭찬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런 일은 생각도 안했을 일이지만 시에 대해 더 많은 공부가 되리라 내심 다독이면서 시를 평하기보다는 공감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이 시집은 특히 선생님께서 직접「여적」이라는 남긴 말을 써서 평이라기보다 자신의 시에 대한 열정과 시에 쏟아 부은 심상을 잘 드러내셨고, 또 서평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도 해놓으신 터여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선생님께서 펼치셨을 그 심상에 공감만 조금 더 보태어 읽었다.
선생님께서 쓰신 이번 시집『가을인생』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아야하는지에 대하여, 남다른 시인의 시각과 감각으로 표현하여 잘 숙성되게 만들어놓았다. 그만큼 복합되는 심상이나 감성이 가슴을 울려서라고 할까 선뜻 선생님의 시집을 들고 감히 서평을 쓰겠다고 나섰으니 사실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잖아생긴다. 그렇지만 감성을 가지고 함께 느끼며 와 닿는 느낌 그대로 선생님의 눈과 귀가 되어 보려고 한다.
어느 새 소리 소문 없이 물이 다 빠졌다.
물이란 그런 거다. 쓸모없는 죽정이 신세다.
옛날은 말 그대로 옛날인데도 옛날이 그립다.
늘 푸른 바람 불던 스무 살 봄 들녘처럼 누워
왜 하필이면 그녀는 나를 오빠라 했을까
궁금해 하면서 아직도 간절히 듣고 싶은 소리.
그녀가 헐떡이며 청보리밭 밖으로
오줌 싸듯이 길게 내지르는
오빠, 오빠, 오오바...
―「오빠」전문
이 시는 시집 속 72 쪽에 나온다. 선생님은 자신을 ‘쓸모없는 죽정이 신세’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오빠 소리가 듣고 싶다. 그래서 궁금해 한다. ‘왜 하필이면 그녀는 나를 오빠라고 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시절 시인들에 대한 여성들의 동경이나 관심은 호기심을 넘어 대부분 흠모와 연모였다. 그 시절 모든 여성들은 모든 시인에 대하여 우러러 보았을 것이다. 그런 여성들의 마음을 아는 시인의 속내가 잘 드러나 옛날을 그려보게 한다. 그것도 푸른 봄 청보리밭에서라면 ‘오줌 싸듯 길게 내지르’며 달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순수했고 여인은 세월 속에 흘러갔다. 이렇게 시인은 지나간 청춘의 풋풋한 이야기를 서정적인 시각‘푸른 청보리밭’과 청각적인 ‘오빠’소리의 회상으로 애틋하게 그려내어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자극한다. 그야말로 페이소스다.
겨우내 양치질 안 하고 살다가
날씨 좀 풀리니 바깥나들이하고 싶어
양치질한 물을 옥 물었다 뱉는 듯
봄비 속에는 하나님의 초록 이똥 냄새가 난다.
― 「봄비」 전문
‘하나님의 초록 이똥 냄새’라니 누가 이런 표현을 또 할까? 길게 늘어뜨리면 한 문장으로 된 시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응집된 단어의 조화가 압축의 묘미를 살려 잘 다루어져 있어 금방 알게 된다. 곱씹어 읽어도 너무 예쁜 표현이라 달리 말이 필요 없다. 봄비는 온 세상의 색을 초록으로 더욱 싱그럽게 보여주는 재료이다. 그런 자연적인 재료인 비에 싱그러운 초록을, 하나님이 양치질하다가 뱉는 이똥 냄새로 표현할 수 있다는 능력이 차라리 전지전능한 하나님 같다. 그래서「일흔 풍경」에서처럼 ‘일흔은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모든 게 다 시가 되고 보이는 나이’라 하지 않았던가. 선생님의 일흔이 넘은 초록은 늘 무한한 젊음이 깃들어 있다. 마치 싱싱한 유년의 양치질처럼 단맛이 난다.
2. 찰나에 정점을 찍듯 뱉은 시어들
선생님은「여적」에 ‘이제 그 한 바퀴 인생도 거의 다 돌았다. 한 평생 세월도 지나고 보니 찰나다.’ 라고 하신 말씀으로도 시이면서 여생에 대한 짧은 사유를 더한 터라 가슴에 새기게 된다.
특히 누가 평을 하면서 칭찬일색인 것도 자신의 글발을 자랑하기 위해 해놓는 말들로 전부 가식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이 어떤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쉽게 느끼는 대로 읽어 보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시집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이 시는 이런 이야기고, 저 시는 저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쩐다 하는 식의 해설과 식자들의 어려운 단어는 부담이 된다. 더구나 외국 작가들의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는 해설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또 외래어를 쓰지 않은 해설은 그 시와 시인에 대하여 혹은 해설을 하고 있는 자신의 글발이 평가 절하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된다. 여러 가지로 선생님이 걱정한 것처럼 될 가능성이 많아 조심스러워 진다. 왜냐하면 동년배의 시도 아니고 감히 선생님의 시를 제자인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서정성을 가지고 시인의 마음으로 읽고 공감하여 느낀 그대로 표현한다.
가짜 꽃이 많은 세상에
이 도시의 백만 송이 장미는 모두 진짜다.
어디를 걷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미향 냄새가 난다.
장미, 늘 생화인 내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
너무나 아름다워 차라리
심연 깊이 떨어지는 황홀한 절망이다.
나는 향내 나는 여자의 산장미 꽃잎의 입술과
백장미 빛의 흰 치아를 보고 싶다.
― 「부천 도당산 장미」 전문
이 시는 선생님이 부천에 다녀가신 일도 없이 말로만 듣고 쓴 시라 한다. 그 말을 듣고 노래로도 유명하게 된 정지용의「향수」라는 시도 절대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만으로 가 본 것처럼 표현하였다고 하여 놀랐는데, 이 시도 그와 똑같이 감동하여 다시 읽어보았다.
선생님의 짧은 시들을 읽다보면 마치 정점을 찍듯 뱉어 놓은 시어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듯이 달콤하게 혹은, 쓰디쓴 씀바귀를 씹으면서 말하듯이 가슴에 새기면서 읽게 된다. 선생님의「여적」에 남긴 몇몇 시편들의 이야기는 선생님조차도 좋다고 하신 시편들이어서 곱씹어보게 되는 시들이다.
1
대기권을 진입하는 우주선처럼 생명노을이 불탄다.
2
독거노인 하나님의 저녁식사 준비칼질은 늘 서툴러서
열 손가락이 핏빛으로 성할 날이 없으시다.
― 「노을」 전문
누가 감히 하나님의 손길인 노을을 저리 함부로 표현할까 누가 감히 노을을 저리 ‘하나님의 저녁식사 준비칼질’이 서툴러서 생긴 거라고 상상이나 할까. 경이로운 부분이라 몇 번이고 읊다가 ‘독거노인 하나님’에서는 픽 웃음도 터지다가 그랬다. 선생님의 시들은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사실을 가지고 집약적이고 압축된 단어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시어들로 나열해놓았다. 그림처럼 연상이 되면서 시각적인 색을 대하다보면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제시해 놓은 언어의 산란과 파장을 보게 된다.
선생님의 시에서는 은근슬쩍 그리움을 내포하고 있다. 여태도록 보아온 시들 중에 선생님의 그리움은 왜 더 간절해지는지 곱씹어 생각해봐도 연륜에서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짠한 그리움이 베인 시를 읽다보면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담긴 따스함도 묻어나온다. 그것은 그리움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백수를 못 채운 것은 시인이니까
여백을 좀 남기려고 그러하였다쳐도
이 봄날 경천동지하도록
꽃들도 저들끼리 놀라도록 화들짝 폈는데
지상의 마지막 길,
일생 간구해 온 하나님을 아무리 뵙고 싶더라도
꽃으로 도배한 산하 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참 오랜 세월 살아왔으면서
단 며칠 밤 자면 꽃 지천 그것도 못 채우고...
가시긴 가더라도 핀 꽃이나 보고 가시지.
― 「그것도 못 채우고-황금찬사백」 전문
가는 걸 배웅하는 이도 배웅하는 이를 보는 이도 많이 안타깝고 가슴 절절한 표현이다. 가슴 속에 뭔가 울컥한 것이 목으로 코로 찔끔찔끔 내 비치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워하는 표현인지 그것도 못 채우고 ‘단 며칠 밤만 자면 꽃이 지천’일 텐데 그것을 못 보고 그냥 가신 그 어른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저리도 야속하게 내비칠 수 있는가 말이다. 야속하고 절절하다. 가신님도 보낸 이도 그걸 바라보는 지금의 나도 누가 저렇게 안타까워해 해줄까 싶을 정도이다.
3. 자연과 동화된 자의식, 절제된 사유
선생님이 2013년에 내신 2행 시집 ?살아가는 슬픔, 벽?을 보면 단 2행으로만 된 시를 수록하였다. 내용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과 자연 현상에 대한 긴밀한 존재의미를 담고 있다. 자연과 동화된 인간의 존재를 해석해 내는 독특하고 능통한 사유의 조각들의 어울림으로 주를 이룬다. 이 시집은 선생님이 시인으로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달관한 인생관으로 세상을 대하는 범우주적인 통찰력도 가지고 있다. 시집에서 그리운 것은 그립다 말하며,
나 죽으면 여편네 곁에 가 살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 마음조차 부질없는 꿈같아 슬프다.
―시집?살아가는 슬픔, 벽?중에서「마음」전문
일생 땅 한 뙈기 가진 것 없어도
내 죽어 누군가의 흙이 되다니 고맙다.
―시집?살아가는 슬픔, 벽?중에서「흙」전문
흙으로 고이 정갈하게 돌아갈 줄 아는 초자연적인 자의식과 절제된 압축의 묘미가 아주 간결하다. 그리고 쉽게 읽혀지는 시 같으면서도 깊이가 묻어나는 시편들이 너무나 많다.
또 선생님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절제된 사유와 음식에 관한 삶의 자세가 잘 나타난 음식시집 ?꽁치?도 2016년에 냈다. 이 시집은 선생님의 독특한 사유들이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탁탁 치게 만든다. 그리고 2014년에 낸 시집 ?마추픽추? 는 하나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이 황홀감마저 들게 하는 연작 시편이었고, <김만중 문학상>도 받았다.
선생님은 초년의 첫 4행 시집 ?사행시초?를 낸 이후의 완성 시편 ?사행시초·2?를 50년이 지난 후 다시 발간하였다. 꾸미지 않은 언어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농도 짙은 연륜의 사유가 깊이 들어있는 시집이다. 주제어는 같지만 50년이 지난 시인의 시각은 인생의 종착지에 대한 미지의 세계를 그리면서 동경하고 있다.
죽으면 밤하늘의 별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아도
낙엽처럼 살다 죽고 싶은 이는 없다.
왜 그럴까. 낙엽은 바람에 휘불리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지기 때문일까.
―시집?사행시초·2?중에서「낙엽」전문
낙엽은, 한 여자가 생리일에 꾸겨버린 색종이처럼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가을 날
무덤 속같이 생각이 깊어버린 여자 곁에서
사랑이여, 우리가 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시집?사행시초·2?중에서「사행시초 다섯」전문
초년의「사행시초 다섯」에서의 ‘낙엽은, 여자의 생리일에 꾸겨버린 색종이같이 나뭇가지 끝’에서 나부끼고,「낙엽」에서의 ‘낙엽은 바람에 휘불리어서/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지기 때문에’더 의미가 없다. 곧 시만 남을 뿐인 것이다. 선생님은 줄곧 4행 시집을 시작으로 하여 3행 시집 ?하늘 사람人 땅?을 내셨다.
하여 최근 6년 사이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집을 내시는 저력을 보였다.
방산芳山의 대장간에서 뜨겁게 사는 법 배웠고
시구문 밖으로는 사람 실려 나가는 죽음을 보았다.
일찍이 생과 사를 터득했으니 시 아니면 무엇을 하랴.
―시집?하늘 사람人 땅?중에서「생업-제천에게」전문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시를 업으로 생각하시며 ‘일찍이 생과 사를 터득했으니 시 아니면 무엇을 하랴’ 하신 말씀은 시를 배우는 입장에서 도인의 경지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자연스레 찾아온 시적 본능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지만 이미 선생님은 필력을 앞선 선인仙人이고 시의 도인道人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여적」을 남기면서 내신 ?가을 인생?은 그래서 더욱 짠하고 더 큰 감동에 전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때 같은 것 문대고 안 진다고
병적으로 하루 종일 닦아내는 사람 없다.
살면서 다른 일하다 생각날 때 닦으면 되는 것이다.
―「적폐청산」전문
생활의 지혜를 오롯이 시 속에 담아놓은 적폐청산. 누구나 아는 일일 텐데도 저러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역시 시인다운 처사로 잘 해나가고 있음이다. 누구든지 조급하게 굴지 말고 ‘살면서 다른 일하다 생각날 때 하면 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달관하지 않고는 생각해내지 못하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하나하나 언어를 정성들여 조합했을 것이고 인생의 쓰고 단 여정을 거쳐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완성 했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반적인 시들로 채웠을 것이고, 이지적이고 감성적인 시들로 최근 시집들을 빼곡하게 채웠다. 선생님은 그만의 독특한 서정성을 발휘하여 빼어나게 형상화한 시들을 많이 담았다. 다음의 시는 그런 능력을 잘 보여주는 시다.
어리석어도,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그 어리석음을 철석같이 믿고 사는 게 부부다.
종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해일처럼 닥칠 것을 알면서도
하루를 살지라도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끈을
천년, 만년 살 듯이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부」전문
봄은 보인다고 해서 봄인가.
들새들이 풀숲에 알을 따듯하게 낳은 것도
마른 풀잎에 이슬방울이 맺힌 것도 보인다.
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사랑도 보인다.
―「봄」전문
부부에 대하여 노래한 이 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더 애틋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봄 같이 선생님의 사랑도 보인다. 지고지순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끝까지 잊지 않고 단 몇 줄이라도 그리워 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사랑이다. 선생님의 사랑도 한가득 자음과 모음 속에 들어 있다. 다 보인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시 속에 담긴 메세지가 오래도록 번져가는 사랑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4. 고도의 압축과 객관적 언어발현
선생님은 이번 시집에서 1행부터 10행까지 한 주제를 놓고 쓰기도 하였고, 고도의 숙달된 문장의 압축과 아름다운 언어절제의 미와 시적 형상화를 보였다. 이러한 시적 형식에 대한 실험적 도전의식과 도의 경지에 이르는 시의 작업은 시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따라야할 기본자세이다.
도의 경지에 이르는 선생님의 시적 자세는 문학에 삶의 구체성을 담았고, 그로 인하여 쉬운 언어로 쉽게 읽혀지는 시를 누구나 공감하며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최근 현대의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분리되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그저 겉으로 돈다고 한다면, 선생님의 시들은 다정하게 다가와 시적 서정을 만끽하게 해준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선생님의 유창한 언어의 탄력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선생님의 시들이 보이는 언어의 탄력성이란, 시에서 삶의 구체성을 실감나게 하고 삶과의 연관성을 주관하고 미화해주는 개연성 있는 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그리게 한다는 의미이다. 선생님 시의 경우, 시인의 상상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자연의 소멸을 대할 때 단연 선생님의 상상력은 돋보인다. 더구나 시인으로서의 객체인 자신과 또 다른 객체의 눈과 귀가 하나로 되어, 상호 긴밀한 소통의 작용을 한다. 객관적인 시인 특유의 능력으로, 그것이 살아있는 상태의 언어의 발현을 탄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가을이면 낙엽송 되어 내육신도 어김없이 계절을 탄다.
여름의 폭염처럼 늘 상승기류이던 불씨가 사라졌다.
같이 동거하던 눈물도 물기하나 없이 깨끗이 증발했다.
늙은이의 걸음으로 내 몸의 노을이 빠져 나갔다.
밤마다 가슴을 물어 피 칠갑하던 여자였다.
가진 것 별로 없는데 사라지는 것은 왜 이리 많은지
가난한 자여 세상이, 사는 것이 가벼워졌다 하지마라.
그대는 피도 안 마른 이마로 세상을 나선 구도자가 아니다.
죽는 날까지 아무것도 쥐거나 가지지 못한 손은 슬프리라.
지키는 이 없이 홀로 떠나는 임종을 슬퍼하라.
―「사라짐에 대하여」전문
이 시는 무덤덤한 선생님의 지금 현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 인생무상을 초월한 듯 애잔하게 살아 있는 모습이 그대로 읽혀진다. 삶을 하나로 일치시킴으로써 자연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런 소통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감명으로 다가오는 시이다. 선생님은 그래도 슬퍼하라고 하셨다. 그렇다. 임종을 지켜보는 이는 누구든 슬프다. 시적인 기술이 아니다. 잘 꾸며지고 다져진 문자들의 조합도 아니다. 그저 시어로서 선생님의 시적인 언어로 자극하는 감성은 끝내는 감동을 일으킨다. 그렇게 시 하나로 일치시키는 감동의 끈으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선생님의 시는 술술 감동의 끈을 풀어놓아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하나로 일치된 감정은 감동을 일으켜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읽으면 가슴 속에 멍울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마음을 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시라는 증거다.
1
내 유전에는 모하비사막의 떡갈나무 같은
1만 년 수명의 사랑이 내장되어 있다.
2
사랑이여, 어디든 티내지 말고 가서
강물에 눈 내리듯 녹아라.
그에게 가서 고요히 스미어 들어라.
3
사랑이 내게 싹튼 것은
한 여자가 좋아서라기보다
무엇보다 내가 외로워서였다.
그 외로움이 가을하늘에
청초히 핀 코스모스 잎처럼
파르르 가슴 떨리게
여자에게 사랑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사랑」부분
사랑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행복한 감정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도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유전에 내장되어있는 사랑은 ‘1만 년 수명’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1만 년 수명을 가진 사랑이 선생님의 마음에 싹트는 이유는 외로운 시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게 시적 상상력으로 우리의 기억과 생각을 열어주는 도구가 되게 한다. ‘청초히 핀 코스모스 잎처럼/파르르 가슴 떨리게/여자에게 사랑으로 옮겨갔을 뿐’이라고 감정의 실체를 드러내며 탈바꿈 시킨다. 그러한 감정의 실체는 쓴다고 써도 모르는 것이고, 써놓고 봐도 난해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사랑은 외로운 것이어서 유독 정이 간다. 선생님은 사랑을 가지고 시를 말씀하신다. 그래서 선생님의 시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돋보인다.
내 곁에 당연히 있어야 될 여자가
어느 날 이상하게 사라졌다.
왜 외로운가 생각해 봤더니
그녀가 곁에 없어서였다.
참 어리석게도 이제까지 아내가
실종되었어도 잠시 외출했겠거니
없어도 있는 체하며 티 안 내려고
너무 무덤덤하게 살았다.
그러려니 그 세월이 오죽했겠냐마는…
―「아내」전문
1
물이 그리움으로 솟구쳐 서서 섬이다.
2
외로운 것들 다 자작자작 자는 물의 여인숙이다.
3
틀에 갇힌 사람들은 섬처럼 산다.
그 틀에 벗어나도 섬이다.
4
가슴에 숨어 있는 섬 하나가
먼 바다의 섬 하나와 맞닿았다.
왜 외로운지 알겠다.
외로운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끼리
물결처럼 스며들어 모여 산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전문
시인의 상상력은 무한으로 일어나 시의 구체성을 획득하고, 시의 힘인 이 구체성은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상상력을 통과한 시어들이 시인의 달관한 인생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일련의 감정의 자극 같은 것이어서 그것은「아내 」라는 시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 곁에 당연히 있어야할’ 사람을 회고하는 시인은 ‘너무 무덤덤하게 살’아온 자신의 심상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였다. 세련된 표현이다. 다른 어떤 심오한 미사여구보다 오히려 가슴이 절절하도록 와 닿는 이유가 있다.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짙게 깔린「섬」에는 선생님의 고독한 심상이 그대로 비쳐지는 시어들로 가득하다. ‘물이 그리움으로 솟구쳐 서서 섬이다’ 그리움을 이끌어내는 시인자신의 정서를 객관화하고 자아를 대상화하여 절제된 심상을 드러내었다. 그리움이 힘의 원천이 되는 강력한 시어다.
누구나 사랑은 할 수 있다. 누구나 외로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깊이를 시로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또한 외로움의 깊이를 시로 노래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일 것이다. 선생님은 남다른 시어로 쉬우면서도 금방 읽혀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였다. 사실적인 외로움을 그리고 그리운 사람에 대한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감정을 진솔하게 시로 풀어놓았다. 개인적인 성찰에 가까운 그 마음에 외로움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없어도 있는 체하며 티 안 내려고/너무 무덤덤하게 살았다’고 자책하고 있다. 선생님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또한 시 없이는 선생님의 생명도 끝인 게 분명하다. 이처럼 선생님은 시로 시작하여 시로 인생을 달관하고 있다. 마치 도에 통달한 도인처럼.
이처럼 선생님의 시에는 많은 삶의 애환과 인생에 대한 능통한 도인의 자세와 지적인 삶의 지혜가 여기저기 고스란히 묻어 있다. 다양한 소재들을 개성적이고 감성적인 시인의 독특한 감각으로 담아내어 원형적인 정서를 유발시켰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비유와 은유적인 표현으로 심미적인 시적탐구를 하게 만들었다. 특히 시를 배우고 공부하려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시작품 어느 것이든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깜냥깜냥 선생님의 시집『가을인생』을 보면서, 현대적 감수성과 언어절제의 미와 압축된 객관적 언어발현의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하였다. 시를 읽고 평할 깜냥이 되지도 못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쯤에서, 선생님의「여적」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마무리한다.
이 짧은 시에 대한 내 작업은 문자나 기호로 시를 표현한 극도의 실험적인 것이 아닌 최소한 시의 규격을 살린 면에 신경을 쓴 보수적인 시 창작 과정이다. 그러면서도 여기 실은 짧은 시들은 좀 씀바귀 냄새를 풍길지 몰라도 경쾌한 페이소스다. 부담이 없다. 마치 조깅으로 공원을 두루 한 바퀴 돈 것 같다. 이제 그 한 바퀴 인생도 거의 다 돌았다. 한평생 세월도 지나고 보니 찰나다. 하지만 길게 사설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말이 길면 시가 아니다. 특히 늙은이의 긴 소리는 잔소리가 된다. 인생도 내 시처럼 간결하게 살다 가려 했는데 여기까지 온 길은 그저 부끄럽다. 바람이 분다. 쓸쓸하다. 한 잎 낙엽 지는 가을 인생을 홀홀히 떠나야겠다.
―「여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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