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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오체불만족

by 정령시인 2008. 2. 24.
장애 딛고 아들 낳은 ‘오체불만족’의 오토타케 히로타다

‘오토타케 히로타다’라는 본명보다 ‘오체불만족’이라는 단어로 그를 알기 쉬울 것이다.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의 제목인 「오체불만족」. 그러나 그의 실제 생활은 ‘오체만족’에 가깝다면 믿겠는가? 그는 늘 하고 싶은 걸 해왔고 실패란 없었다고 말한다. 그가 결혼 7년 만에 아들을 얻었다.100% 오체 만족스러운 그의 요즘 생활을 엿본다.

결혼 7년 만에 득남

학창 시절, 권장 도서라든가 청소년 필독서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오르던 책, 「오체불만족」. 누구나 한 번쯤 책장을 넘긴 경험이 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매스컴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나 세 살 때부터 전동차에 몸을 의지해야 했던 오토타케 히로타다(31). 최근 그에게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이미 2001년 3월, 대학 1년 후배와 결혼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당시 신부는 “도박인 것 같아 재밌다”는 결혼 소감을 밝혔고 신랑은 “몇 십 년이 계속될 도박에 반드시 성공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사랑으로 장애의 벽을 넘은 두 사람의 얘기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에 그들이 말했던 ‘또 하나의 도박’이 성공한 것이다. 결혼한 지 7년 만인 2008년 1월, 드디어 그들이 부모가 됐다. 부인의 출산 순간까지 그도 함께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단다.

“1월 4일 우리 집에서 첫아이가 탄생했습니다. 3,106g의 건강한 사내아이입니다. 훌륭한 신년의 개막. 여러분에게도 좋은 한 해가 되도록 기원하겠습니다.”

그는 홈페이지에 비교적 담담하게 새 생명에 대한 소감을 남겼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그가 아이를 생산하는 능력이 있었구나’ 라는 새삼 아주 기본적인 궁금증부터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 TV 패널로 등장해 장애인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러브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좁아 장애인에게 불편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도 러브호텔 정도는 갑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어 곤란하지만요”라든가 “전 건강한 청년이기 때문에, 성욕도 당연히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책에서 밝혔듯이 그는 장애를 ‘신체적 특징’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던 것처럼 말이다.그동안 그는 방송인, 캐스터 그리고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다. 또 교육에도 관심이 깊었던 그는 지난 2007년 2월에 초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같은 해 4월, 스기나미 구립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득남의 소식을 접한 어린 학생들이 그에게 깜짝 축하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선생님, 잠깐 교실까지 와 주실래요?’라는 학생의 말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갔더니 칠판에 색색의 분필로 ‘축하합니다’라고 쓰여 있더군요.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어요. 감격했습니다.”


1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아사다 마오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 2 득남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손수 만든 박으로 그에게 깜짝 이벤트를 열어줬다. 3 인간의 다양성에 중점을 두고 몸소 실천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오토타케 히로타다. (사진 위부터)
장애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 않다

그의 나이는 이제 막 서른을 넘겼다. ‘그 사람이 그렇게 젊었던가?’라고 착각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그는 쉼 없이 달려왔고 그렇게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뤄낸 것도 참 많다.

‘장애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불행하지 않습니다’라는 신선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 그의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 이 책의 판매 순위는 현재까지(2007년도 조사) 일본의 일반서적 부문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어디 일본뿐인가. 아시아 전역에 「오체불만족」이 출간되면서 ‘오토타케 신드롬’을 불러오기도 했다. 책이 출간된 이듬해 그는 고액 납세자 순위 문화인 부문 4위에 랭크됐다.

오토타케 히로타다는 선천성사지절단이라는 병으로 세 살 때부터 전동차 위에서 생활해왔다. 하지만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강한 의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명문 도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 봉사활동에 참가했는데 이를 취재 온 NHK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계기로, 장애인으로서의 생활을 쓴 체험수기 「오체불만족」을 집필하게 된 것이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는 스포츠 기자가 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뛰어야 하는 기자의 일은 녹록지 않았다. 인기가 많았던 그에게 좀 더 편하고 쉬운 일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유명해지고 각종 프로그램의 패널 제의도 많이 들어온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두 거절했다.

“저는 책으로 인해 미디어의 힘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이라는 건 금세 뜨거워지기 쉽고 금세 식기 쉽습니다. 방송인이 평생직장은 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저를 주목해주시는 사이에 180도 다른 일을 해서 이미지를 바꾸고, 미래를 위한 기술을 익혀두고 싶었어요.”

그는 2005년에는 ‘아이 삶에 대한 태도 파트너’라는 활동을 하며 교육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초등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메이세이 대학에서 통신 교육과정으로 학사 입학해 교사로 가는 발판을 다졌다.

“예전부터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이의 인격 형성에 어른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을지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었죠.”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난 4월 교사 채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쉽게 받아들일 학교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가 교사가 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과연 교사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채용 면접을 보는데 제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 부딪칠 곤란한 일 100가지를 리스트로 정리해주셨습니다. 이걸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내놓지 않으면 채용할 수 없다고 했죠.”

‘기구를 다루는 과학실험은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아이들이 싸울 때 어떻게 중재할 것인가’, ‘체육 시간에는 어떤 지도가 가능한가’ 등등. 모든 것이 눈앞에서 극복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결국 함께할 보조교사를 한 명 두는 것으로 지금의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는 도덕과 사회를 가르치고 있으며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활동 수업도 맡고 있다. 체육 수업은 스포츠 기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론 교육을 한다. 그는 개학식 첫날 단상에서 “나는 손이 없다”며 아이들 앞에서 오른팔을 들어보였다. “그러나 칠판에 글씨도 쓸 수 있어요”라며 턱과 왼팔 사이에 분필을 끼워 글씨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교사의 꿈을 이뤘다. 귀여운 2세를 얻고 학생들에게 깜짝 축하 선물을 받았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산다는 것,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실현되고 있다. 앞으로 계속될 그의 도전, 그리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본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이유진(한류 전문 라이터 yeswawa@hotmail.com)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오토타케 히로타다 공식 홈페이지(http://sports.nifty.com/oto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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