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친 날 / 정령
졸고 있는 햇살 사이로 그림 하나 휘청거린다.
마른 장작 같은 허리 아래로 손가락 마디가 굵다.
소주병이 대롱대롱 목이 졸려 붕어똥처럼 따라온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급하다는 친구에게 빌려준 도장, 밥이 마르기 전에 붉은 딱지가 온 집안에 꽃 핀 날이었다. 아내는 낙엽처럼 아파트 화단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 붉은 봉숭아가 만발했다.
전봇대가 발길에 채인다.
허공을 바라보는 마른 눈에 잔이슬이 맺히고,
지대 낮은 골방 속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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