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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령의시인바람♬/[♡] 연꽃홍수

고추/정령시집[연꽃홍수]중에서

by 정령시인 2017. 8. 29.

 

 

고추/정령

 

실한 그놈 만져보려다 면박 들은 날,

주제에 아들탐은 되든감.

자고로 밭이 좋아야 한다잔여.

저렇게 밭이 약해 어쩌려구.

쯧쯧 혀차는 소리가 가슴팍에 대못을 박는다.

밭만 좋으면 단줄 아냐.

씨만 튼실하니 좋아봐.

뭐든 조응께 심어만 줘보드라고.

밭만 조으믄 뭐하것냐.

씨가 없으믄 아무짝에도 못쓰고 헛것인디.

또 씨만 있음 뭣하겄어.

밭뛔기가 없음 썩어문드러지기밖에 도리없당게.

숱한 씨얘기 듣던 순이어매가 고추를 넌다. 굵직한 놈은 따로 실에 꿰어 양지바른 담벼락에 금줄 걸듯 줄줄이 매단다. 손 귀한집 장손을 어루만지듯이 볕을 따라 고이 누여가며 뒤짚는다. 고추, 그놈을 만지려고 순이어매는 반평생이 배불뚝이였다. 네깟것이 뭐길래.

볼우물이 들어간 여자아이가 제 손보다 큰 그 놈을 순이어매를 따라 가지런하게

놓으며 햇살처럼 웃는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그놈들 빨간 코를 맞대고 살가운 바람에 고추를 살랑살랑 흔들어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