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영화)
영화[라라랜드]와 시<방문객> 이야기
정령
햇살이 좋은 봄날에 책을 펼치고 시를 읊는다. 봄은 생명에너지다. 생명에너지의 기본은 성이며, 생명이라는 것은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 것들의 만남과 결합을 의미하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들의 사랑을 의미한다. 계절이 바뀌고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싱싱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혹하는 것들의 생동감을 마음껏 느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집『광휘의 속삭임』중, <방문객>전문
그런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만난 영화가 방문객처럼 눈에 들어온다. 바로 데미언 채즐 감독의 『라라랜드』이다. 2016년 12월에 개봉하여 2017년 초를 뜨겁게 달군 영화이며, 라이언 고슬링(세바스찬역)과 엠마 스톤(미아역)이 주연을 한 영화이다. 『라라랜드』는 할리우드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별칭이기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허구의 세계, 할리우드가 가지는 잡을 수 없는 꿈같은 이미지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려는 젊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꼭 정현종의 시의 구절-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처럼, LA로 들어가는 막힌 도로에서 ‘나를 빛내줄 누군가가 알아볼 거야 내가 준비만 되어있다면‘하고 뮤지컬로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이 대조를 이룬다.
공교롭게도 이 시와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맥락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흥미를 유발한다. 특히 이 영화『라라랜드』는 전형적인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며 설레는 사랑과 서로에게 꿈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하여 잠시 전문적인 해설을 빌리자면, 유명한 드럼의 빠른 템포가 돋보였던 영화 『위플래시』의 감독답게 『라라랜드』에서도 데미언 채즐의 음악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 감독을 한마디로 말하면 조금 음침하고 음울한데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천재스타일이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좌절하고 상처를 보듬는 도시인의 삶이 녹아있는,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강하게 강조되어 다소 쳐지는 영화의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영화『라라랜드』는 색을 의미하는 대조성이 강하다. 영국의 저명한 상징 전문가인 T.A. 켄너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전면에 흐르는 파란색은 빨강 다음으로 우리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색이며 빨강의 맞수로서 활력과 위협대신 위안과 휴식을 주는 색이기도 하며 고요하고 안정적이며 믿음직한 느낌을 주기도한다고 한다. 또한 파란색은 이 영화를 이끄는 중심 색이기도 하다. 둘이 처음 만나는 재즈바에서도 미아는 파란색 원피스를, 세바스찬은 파란색정장을 입었고 둘을 비추는 밤하늘도, 조명도 파란색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파란색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색이기도 하는데 파란색이 나타나는 멍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상징은 차갑고 불안한 감정을 나타내는 외로운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파란색은 두 사람이 사랑을 꽃피우는 여름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가을로 넘어갈 때와 마지막 장면에서 파란색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 주인공의 테마색은 파란색이다. 이러한 파란색이 두 사람의 외로움과 사랑에 관한 색이라면 빨간색은 꿈에 관한 색이다. 미아가 샤워하며 거울을 보는 장면과 파티에서 많은 사람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싶다는 염원의 노래를 부르며 거울을 보는 장면은 구도뿐만 아니라 사용한 빛의 색도 빨간색이다. 두 사람이 함께 누워있는 방에서도 꿈에 관해 얘기할 때 불빛은 굉장히 빨갛다. 또한, 미아가 1인극 직전에 무대에 나서기 전, 세바스찬이 밴드에서 처음 공연할 때의 불빛 또한 빨간색으로 꿈을 향해 나아 갈 때는 유독 붉은 화면을 띄고 있다는 것이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 빨간색과 파란색을 활용하는 방식이 셉스를 들어가고 나가는 미아의 얼굴은 분명한 파란색을 비추고 있고 세바스찬에게는 파란색과 붉은색 조명을 동시에 비추고 있다.
이러한 조명의 활용만으로도 미아와 세바스찬이 각자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 어떤 사랑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미아는 세바스찬을 사랑의 의미로 보았던 것이고 세바스찬에게 미아는 사랑인 동시에 꿈의 존재로 본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한 것만큼 꿈에 다가가기가 힘이 들수록 영화에서의 색감은 원색적이지만 실상은 두 주인공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을 재즈라는 장르를 통하여 달래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만큼 오래된 재즈클럽, 레돈도 해변의 라이트하우스 카페 등 전설적인 재즈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별 컨셉으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어두운 단면이 잘 드러났으며, 성공이라는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그 순간의 행복을 잠시 미뤄둔다는 말로 포기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공부도, 사랑도, 성공도. 매 순간 치열하게 싸우고 쫓는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의 의미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너무나도 현실적인 『라라랜드』의 구성과 결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잠시 꿈을 꾸다 깨어나듯 사랑에서 성공으로, 이상에서 현실로 되돌려지는 삶의 단면을 그려내어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똑같아 더욱 공감하게 만든다.
장면마다 계절이 변화하면서 남녀의 사랑은 변하지만 꿈꾸어 오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시간이 지나고 삶의 질도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래도 꿈꾸어야 한다고 이 영화『라라랜드』는 말하고 있다. 봄은 주인공 세바스찬을 만나면서 매번 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에서처럼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정현종의 시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우리도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기쁘게 맞이할 일이다. 찬란한 봄을.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저절로 박자를 따라하게 되는 단다라단 단다다다~우린 누군가의 사랑을 찾고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어디로 갈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깊은 사랑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계절,‘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필경 환대가 올 것이다’하고 노래한 것처럼, 영화에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잠긴 문 너머는 미지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번 더 시를 읊는다. 필경 환대가 올 것이다. 이 봄에는 그러므로 방문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꿈을 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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