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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이詩발표♬/[♡] 부천~문학회

부천문학81호(2024봄호)

by 정령시인 2024. 5. 10.

내 네 번째 시집에 실린 시
괭이밥,
사는 건 다 같다,
꽃의 비밀
세 편을 실었다.




팽이밥


화난 얼굴로 돌 던지지 마세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답니다.
고운 얼굴로 질투하지 마세요.
연약한 가슴 녹아내린답니다.
친한 척 건드리지 마세요
아물지 않은 마음이 썩는답니다.
예쁜 말로 다독거려 주세요.
활짝 웃음 퍼트려 줄게요.
빛나는 마음에 새겨두세요.
고운 얼굴로 찾아넬게요.



사는 건 다 같다


새들이 전깃줄 위에 앉아
맘대로들 떠들어 댑니다.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속살거리며 늘어나는 중입니다.

어머니가 시집갈 딸을
챙기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말쑥한 아가씨와 맵자한 사내의
혼담이 오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와 군대 갈아들의
덤덤한 송별일지도 모름니다.
손주와 죽음이 임박한 할머니의
구슬픈 이별일지도 모릅니다.

한낯에도 저리 무수한 말로
새살굿게 지껄이는 중입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새들 세상에서도
많은 일이 생긴 겁니다.

전깃줄 위에 앉은 새들도
고개를 까딱이며
사람들 떠드는 말 듣고는
사는 건 똑같다 할 겁니다.



꽃의 비밀


너가 자란 곳은 장독대 옆 우물가였어.
뒷마루에 앉아있던 정가네 막내가
옆집 누나의 신발 속에 넣어둔 꽃잎을
책상 서랍에 봉어둔 편지처럼 여기면서
가슴이 뛰었지.

너가 자라던 그곳에 우물이 묻히고
수도가 생기던 날은 잊을 수 없지.
담장 너머 골목길에 리어카를 끌던 최씨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 가는 아들을
뿌돗하게보던 것도.

희미하게 꺼져가는 삼십 촉 알전구처럼
너의 기억도 꺼져가던 날
정가네는 구석에 박힌 먼지까지 비추는
엘이디전등을 달았고
막내가 줄곧 허물어가는 판자촌을 바라보며
떠나간 옆집 누나를 떠올릴 때 넌 말했지.

가슴에 묻고 가만히 보다 보면
금방 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거거든.
해보나 마나 심장이 두근거리면
꽃도 꽃일 때가 한창인 것처럼
너도 청춘인 거야.

꽃도 꽃이 아닐 수도 있듯이
꽃이 꽃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꽃이 핀다고 질 것을 걱정하지 않듯
너도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면
알게 될 거라는 거지.

너가 자라던 그곳에서
밑동이 잘리는 순간에도
밤새도록 너는 말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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