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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시 모음

by 정령시인 2009. 3. 18.

어머니 아버지 시 모음


어머니/황지우

어머니&

저를 이, 시간 속으로 들여넣어주시고
당신을 생각하면 늘, 시간이 없던 분

틀니를 하시느라
치과에 다녀오신 직후의,
이를 몽땅 뺀
시간의 끔찍한 모습
당신은 그 모습이 미안하시었던지
자꾸 나를 피하시었으나
아니, 우리 어머니가 저리 되시다니!
목구멍에까지 차오른 술처럼
넘치려는 시간이 컥, 눈물 되네

안방에서 당신은 거울을 피하시고
나는 눈물을 안 보이려고 등을 돌리고

흑백 텔레비전 시절 어느 연속극에서
최불암씨가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어머니, 왜 이리 가벼워지셨어요?” 하고
역정내듯 말할 때도 바보같이
막 울어버린 적 있지

저에게 이, 시간을 주시었으되
저와 함께 어느덧
시간이 있는 분
아직은 저와 당신, 은밀한 것이 있어
아내 몰래 더 드리는 용돈에 대하여
당신 스스로 제 앞에서 애써 기뻐하시지만
그러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있을까

연립주택 붉은 벽돌벽에 그늘을 옮기는 흰 목련,
그 테두리를 저는 오래오래 보고 있어요

현대문학, 1991.5



어머니 목소리 박주관

어머니 목소리

당신께선 64년만에 제편에서는 32년만에 당신의 육성을 서울에서 들었읍니다. 살아 생전에
처음으로 칼라 텔리비젼 한 대 값 정도 되는 전화를 가지신 당신 앞에 저는 할 말이 없었읍
니다. 적금 부어서 만기 되면 늘이기 위해서 뛰어 다니는 몸짓 앞에 사람은 꼭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 건가요. 텅 빈 가슴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매달려 흔들거리기 시
작한지도 고향 떠나서 몇 십년 된 것같이 느껴집니다. 어느 뉘 가슴 있어 전화번호도 못대
는걸 부끄러움이라 여기던가요. 어찌보면 원적없이 떠도는 38따라지 원혼처럼 대낮에도 죽
어 있는 수렁 같은 세월속에 당신은 살아왔읍니다. 목소리는 다이알 돌리지 않아도 국번 없
이 언제든 자식들 가슴 앞에 윙윙거리고 있읍니다. 아예 전화란 무용지물입니다. 당신의 육
성이 기계를 통해서 나오고 난 뒤 부터는 저는 도망가고 싶어 졌읍니다. 도망갈 수 없는 영
원한 목소리 앞에 우리들은 언제나 죄인임을 안다면 못할 것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요. 어머
니의 목소리는 나를 욱죄는 자유로운 긴급조치임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읍니다.

남광주, 청사, 1985



어머니/정호승

어머니&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다라이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
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쓰러져 세상을 버리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일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이
남의 집 배추밭도 잘도 잘 매시더니
배추 가시에 손 찔리며 뜨거운 뙤약볕에
포기마다 짚으로 잘도 싸매시더니
그 배추밭 너머 마을산 공동묘지
눈물도 없이 어머니 산 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누워서 흙속에 묻히셨다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 말씀
얘야, 돌과 쥐똥 아니면
곡식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말아라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어머니 1/김초혜

어머니 1

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한국문학, 1988







아버지 신달자

아버지&

아버지는
바둑판 위에서도
언제나 집이 허물어지곤 하셨다.

고대광실 물리고
막차 타고 떠난 고향
서울변두리 어둡고 작은 방에서
허물고 또 지어 올리는


어깨넘어 일흔
등 굽으신 채로
핏발선 남쪽하늘
몇 번이고 꺾으시고
그래도 다시 마음 기우는
고향 산자락
골목길 누비시는
안경너머에
노을이 걸쳐졌는지
걸음을 멈출 때마다
붉은 것을 닦아내시는
아버지
아버지.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아버지/허형만

아버지&

신문에 난 이름 석자 때문에
아버지 셔츠바람으로 신새벽을 달려오셨다
무사하구나 이놈아
고래 심줄 같은 핏줄기로 와락
껴안으시는 아버지
간밤엔 뜬눈으로 지새우셨다는
한결 더 패이신
칠순 가까운 눈자위에
새벽 이슬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萍? 문학세계사, 1988





아버지/윤석산2

아버지&

열 서너 살 빈 주먹만으로 고향을 떠나 아버지는 서울 사람이 되셨다. 도시의 바람과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객지인 서울을 고향으로 삼았다.

냉기 썰렁한 세상을 등뒤에 두고, 담배나 한 대, 그렇게 산 서울은 아버지의 고향이 되질 못
했다.

배갯모로 스미는 물소리에 젖으며, 잠이 드는 아버지의 꿈. 빌딩 사이로 헤쳐나가는 지연(紙
鳶)마냥 그렇게 늘 우울했지만, 우리는 조금도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생애의 뜨락으로, 짧은 각도(角度)로 떨어져 쌓이는 햇살. 저녁녘이면, 때때로 만나게 되는,
길이 잘든 지팡이에 와 부딪는 맨땅의 살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무림리, 양지(陽地)쪽 산모롱이, 흙들이 하얗게 햇살 속에 그 정결한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온달의 꿈, 정음사, 1986







아버지/박남철

아버지

□ 1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아

아버지 돈 좀 주세요 머라꼬
돈 좀 주 니 집에 와서 슨 돈이 벌쎄 얼맨 줄 아나
8마넌 돈이다 8마넌 돈 돈 좋아요
저도 78년도부텀은 자립하겠음다
자립 니 좋을 대로 이젠 우리도
힘없다 없다 머 팔께 있어야제
자립 78년부텀 흥 니 좋을 대로
근데 아버님 당장 만 원은
필요한데요 아버님 78년도부터

당장 자립하그라

□ 2

뭐요 니기미이 머 어째 애비 보고
니기미라꼬 니기미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야아 이

자알 배왔다 논
팔아 올레서 돈 들에 시긴
공부가 게우 그 모양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예끼 이 천하에

소새끼 같은

아버지 천하에
소새끼 같은 아버지
고정하십시요 야아 이 놈아

아버지

□ 3

어젯밤에도 또 아버지 꿈을 꾸었다 아버지는
찬물에 밥을 뚜욱뚝 말아 드시면서 시커멓고 야윈
잔기침을 쿨럭쿨럭 하시면서 마디마디 닳고 망가진
아버지도 젊었을 적에는 굉장한 난봉꾼이셨다는데

꿈속에 또 꿈을 꾸었는데 아 젊은 아버지와
양장을 한 어머니가 참 보기에 좋았다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한창 애교를 떨고 있었고
아 참 보기에 좋았다 영화처럼 사이좋게

나는 전에 그런 광경을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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