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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울림속에 묻힌 그 할매의 고된 삶....펌

by 정령시인 2009. 3. 18.

“소 팔면 내 팔자가 필끼다” 단순한 恨풀이로만 여겨…

집안일 도맡아 하며 농사까지 거들던 할매의 ‘고귀한 희생’ 에도 찬사를




지난 두 달간 국내 극장가에는 할아버지의 ‘워낭소리’와 이름 없는 소 한 마리의 ‘워낭소리’가 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죽음을 목전에 둔 소와 팔십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할아버지가 엮어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는 한국 영화에 새로운 빛을 던졌다. 하지만 속도와 경쟁의 시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이 과연 아버지와 고향의 이야기뿐이었을까. 여기에서마저 망각된 것이 또 있지 않을까. “영감 잘못 만나서 그 모양 그 꼴로 산다”는 할머니의 타박과 “소를 팔면 내 팔자가 필 것”이라는 한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웃으며 지나쳐버린 것은 아닐까.

15일까지 300만명 가까운 관객이 ‘워낭소리’를 봤다. 이제는 할머니의 ‘워낭소리’ 얘기를 한 번쯤은 꺼내야 될 때가 아닐까.



▶그녀의 삶을 잊는 방식… 할머니는 ‘입’, 할아버지는 ‘다리’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영화 속에서 할머니는 사실상의 내레이터(해설자) 역할을 한다”며 “악다구니와 지청구를 늘어놓는 캐릭터로 묘사되면서 할머니의 삶은 배제되는 한편 희화된다”고 분석했다. 김헌식 씨는 “할아버지는 장애인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농경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자식을 키워내고 가사까지 함께 돌봤을 것”이라며, “하지만 영화를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의 시각에서 조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극 중 할아버지와 소는 (고된 노동으로 비틀거리는) ‘다리’로 상징되는 반면, 할머니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입’만 강조된다”며 “할머니의 삶과 한(恨)은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로부터 소외됐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심씨는 “할머니가 소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며 “할머니는 무뚝뚝한 남편에게 소외받는 존재이지만 자식들과도 애틋하고 밀착된 관계를 맺지 못한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할머니는 분노와 연민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질 텐데 영화 속에서는 우스개처럼 다뤄진다”고 말했다. 김헌식 씨 역시 “할머니는 이중 삼중의 노동에 헌신했을 텐데도 영화상으로는 단순한 한풀이를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끝까지 울리지 않은 소리


심영섭 씨는 ‘워낭소리’를 ‘남성주의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와 소의 ‘노동’을 전면에서 다루지만 할머니의 노동은 잊혀진다. 관객은 다만 할머니가 겪었을 과거를 상상만 할 뿐이다. 아마도 아침 점심 저녁식사에, 참은 물론이고 소꼴 먹이는 일까지 다 해내면서도 밭 매고 김매는 일까지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뿐이랴, 아홉 남매를 학교에 보내고 졸업시키기 위해 전쟁같이 뒤치다꺼리를 해왔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는 늙은 소를 팔라는 할머니와 자식들의 청을 듣지 않는다. 또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농약을 쓰는 농법을 거부한다. 경운기를 사지 않고 소를 부리는 농사를 고집한다. 이 같은 할아버지의 선택은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인생의 동반자가 돼버린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이 빛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입장에서 이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할머니의 희생은 강요된 것이 아니었을까. 할머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는 너무 압도적인 감동으로 이런 질문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심영섭 씨는 “소의 희생이 부각되면서 할머니의 희생은 잊히거나 평가절하된다”며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할머니의 ‘워낭소리’는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할머니의 ‘워낭소리’를 듣고 싶다

지난겨울 한국 영화 관객은 ‘워낭소리’가 있어 행복했다. ‘워낭소리’는 잠시나마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속으로 불러왔고, 잊혔던 아버지를 그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웠다. 늙은 소의 죽음을 빌려 아버지의 삶, 고되기만 했던 이름 없는 노동을 축복했다. 그 세계는 거짓이나 사기, 잔꾀도, 과욕도 없는 정직하지만 가난한 노동의 세계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소가 할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존재를 위한 이름 없는 헌신의 세계이기도 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워낭소리’는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돼줬다. 여기에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여기지 않았던 독립영화의 기적을 일궈냈다. 단숨에 독립영화를 한국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워낭소리’의 미덕은 누구도 폄하할 수 없다.

하지만 속도와 효율, 경쟁의 시대가 아버지와 고향을 잊게 했던 것처럼 ‘워낭소리’는 또 다른 존재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지 모른다. 이제 할머니의 ‘워낭소리’가 울려 퍼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열 몇 살에 ‘시집’오면서 남편의 이름과 맞바꿨던 자신의 삶을,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마땅히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닐까.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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