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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령이랑놀기♬/[♡] 꺼리랑

한국인의 성 풍속도 ...1

by 정령시인 2010. 3. 18.

엉덩이를 데어놓은 값
 

 옛날에 오성대감의 집 부근에  대장간이 하나 있었는데 걸핏하면 내외간이 다
투기가 일쑤였다. "이거 상투는 놓고 말해!"  "오늘은 창피를 좀 당해 보라구. 맛
을 좀 보란 말이야. 계집을 두었으면 돈을  내놓아 먹여 살려야 할 게 아냐?" 어
느 날인가 오성이  집 근처에 있는 대장간을  지나다 보니 대장장이의 마누라가
대장장이의 상투 끝을  붙잡고 늘어져 혼을 내주고 있었다. 글방에서  집으로 돌
아가자면 대장간 앞을 지나치기 마련이었는데 말을 네 기둥에 붙들어 매어 놓고
그 발굽에 뜨거운 징을 박아주는 것은 퍽 볼만한 구경거리였으므로 오성은 집에
갈 때엔 으레껏 한 번씩 이곳을 기웃거리곤  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색다른 장면
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음 좋은 대장장이 영감이  십 년은 연하일 듯한 여자에게
상투를 붙잡힌 채 쩔쩔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지 말고 상투 좀 놔, 머리가 다
빠지겠어" "그래도 아픈 줄은  아는 모양이지? 오늘은 어림도 없어. 에잇!"  여자
는 한술 더  떠서 상투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세차게 잡아채었다.  "아얏! 아얏!"
대장장이는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면서 종래 빠져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남자의
머리에 여자는 손도 못대는 법인데 거기에 더하여 상투를 잡고 늘어지고 있으니
정말 해괴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야,  이것 좀 놓고 얘기해!" 대장장이는 진
짜 무슨 죄를 짓기라도 했는지  여자를 뿌리치지 못하고 풀 죽은 소리만 내뱉었
다. "놓을 테니까  돈을 내놓겠어요?" "지금은 없단  말이오" "아이구 정말 사람
죽겠네. 빚장이가 와서 지금 방 안에 턱 버티고 드러 누워 있단 말예요. 나 혼자
성화를 받으란 거예요?" 보아하니  빚장이한테 시달린 아내가 남편에게 돈을 내
라고 조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빚이 있으면 며칠 전에 얘길 했어야지. 아닌 밤
중에 홍두깨격으로 불쑥 뛰어나와 그런 소릴하면 낸들 어쩌겠소?"  "그러니까 내
가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돈을 여축해 두라고 몇번이나  그랬냔 말예요." "여축이
라니? 돈이란 돈은 모두 당신한테  갖다 주는데 내가 어디다 돈을 여축할 수 있
겠소?" "아이구, 이런 사람  잡을 영감 좀 보게. 그따위 수단에 넘어갈 줄  알고?
절반만 주고  절반은 딴데 숨겨 놓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  "그것도 말이라구
해!" "말이 아니면 뭐예요!?  에잇!" 여자는 사뭇 분이 복받친다는 듯이  다시 영
감의 머리채를 잡아  채었다. "아이구 이년아! 상투 놓아라!"  대장장이는 여전히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오성은 보기만 해도 안타깝고  끔찍스럽기만 했다. '아이
구 여자란 것이 어떻게  저렇게 흉악할 수가 있을까? 정말 겁나는 일이다.' 이렇
게 생각하고는 아무리 보아도 똑같은 말이 오가므로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
다. 그런데 이튿날이었다. 오성은 새벽녘에 글방으로 가다가 골목 모퉁이에서 귀
에 익은 음성이  들려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힐끗보니 어제 본  대장장이의 아내
가 웬 놈팽이와 바짝붙어 서서 수작을 하고 있었다. "이따가 남편이 나간 다음에
다시 와요.  지루해도 좀 참아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놓고 기다릴께요."  "아,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한단 말인가?" 사내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니 여자는 더욱 상냥한 음성으로 "이제 두어 달만 참으면 돈이 장만돼요. 그래
서 요새 영감을  얼마나 들볶는지 모른다우. 어제도 한길 바닥에서  영감의 상투
를 붙잡고 늘어졌어요. 그래서 끝내 저녁에 또 20냔을 후려 냈어요. "  "응? 그럼
그 20냥은 날 주구려." "아니 어제도 드렸잖아요? 벌써 다 쓰셨나요?" "이보라구
이렇게 숨어 살자니 내가 무슨 낙이 있겠어?  돈을 안쓸데다 쓰는 건 아니야. 날
어떻게 보는 거야?" "어떻게 보긴요.  자꾸 돈이 축나니까 그렇잖아요? 이러다간
두어 달은 제쳐 놓고 일년은 커녕 반 년이 지나도 우리둘이서 달아날 돈은 모이
질 않겠어요." "히히히...  나는 임자만 믿는다구. 그리....." 사내는  비굴하게 웃고
있었다. 오성은 곁에서 이 말을  다 듣고 말았다. 어린 마음에도 구역질이 날 만
큼 그들이 더러워  보였다. 그러나 저러나 대장장이가  불쌍하게 되었다. '마음씨
좋은 그 영감을  도와 줄 방법은 없을까?' 글방으로 가면서  오성은 종내 골똘히
궁리에 잠겼다. 그날부터 오성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글방에서 돌아올
때 언제나 대장간에 들러서 말굽에 박을 징을 넣어 놓은 멍석에 앉아 한참 동안
씩 놀다가 오곤하는  것이었다. "도련님 징에 엉덩이를  찔리면 어떻게 하시려구
그러십니까? 위험합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이 징은 한 개에 얼마씩 하죠?  비
싼가요?" "비싸구 말굽쇼. 징이 오백개만  있어도 이 대장간 전체하고도 바꿀 수
있답니다." "그렇구나" 오성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는
동안 대장장이는 오성의 거동에 수상스러운 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늘어놓은 멍
석에 앉았다가 일어서기만 하면 흡사  똥 누고 밑 안 닦은 아이처럼 어기적거리
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웬일로  저럴까? 올 때는 걸음이 저렇지 않았는데.....' 대
장장이는 오성이  가고 난 뒤에 멍석  위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주저 앉았다 갈 때마다 한두개식  엉덩이 사이에
끼고 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전번에 징 하나에 얼마씩이냐고  묻던 것
도 수상했다. 그러나  돈깨나 있는 양반집 자손이 군것질할 용돈이  아쉬워서 그
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서일까?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다?' 양반집 자제더러  멍석에 앉지 말라고  타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부친에게 일러 바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장장이는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다음날은 오성이 올 시간쯤 해서 멍석에 널린
징들을 모조리 불에 달구어 놓았다. '이젠  다시 못앉겠지' 하고 대장장이는 오성
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오성이 나타나서 아무  생각없이 멍
석에 주저 앉았다. "어이쿠  뜨거워!" 오성은 펄쩍 뛰어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비
명을 질렀다. "아니 왜 그러시우  도련님?" 대장장이가 시침을 뚝 떼고 능청스럽
게 물었다. "음......." 오성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아무  말도 않고 아픔을 참느
라고 죽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양반집 자제답게 더 이상  울고 불고 하는
꼴은 없었다. 얼마후에 오성은 아무 말없이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았다. 이렇
게 되고 보니 이제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은 대장장이였다. '부모를 모
시과 와서 따져 묻는다면 뭐라구 대꾸하지?' 그러나 이것은 기우였다. 오성은 집
에 가서도 아픔을 꾹 참고 "대장간에서 징 만드는 것을 구경하다가 내가 잘못해
서 그만 엉덩이를  데고 말았어요" 하고 울지도 않았다. 열  살짜리 치곤 놀라울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며칠 동안은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하느라고  글방에도 못
갔다. 오성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대장장이는 걱정도 되고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얼마만엔가 다시 오성이  나타났다. '설마 또 앉았다 가려구?'  이렇게 생각한 것
은 완전히 그의  오산이었다. 여전히 멍석에 주저 앉았다가 전과  다름없이 어기
적거리며 돌아갔다. "그거 참 어쩔 수가 없구나......" 이제는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가 엉덩이를 덴 일을 들어 추궁해  오면 답변할 말이 없지 않은
가? 아무튼 그럭저럭 일곱 달  동안이나 오성은 하루도 걸르지 않고 그 짓을 계
속했다. 대장장이는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중 대장장이는 드
디어 기막힌 꼴을  당하고야 말았다. 아내가 샛서방과 함께 달아났는데  그냥 달
아난 것이 아니라 가재 도구  일체를 몽땅 가지고 달아난 것이었다. "아이구! 이
젠 무일푼의 신세로구나. 대장간 하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내가 지워 놓고
간 빚을 갚으면  남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절망에 빠져  문을
닫아 걸고 자리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집
도련님이 자넬 데려오라시네" 나가 보니  오성의 집 하인이었다. "도련님께서 나
를 왜!" "글세 가 보세" 오성은 대장장이를 보더니  점잖게 물었다. "폭삭 망했다
죠? 대책은 있나요?" "................."  "대장간을 다시 할 수만 있으면 빚을 갚고 다
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렇습죠. 착실히  일해서 빚도 갚고 다 할 수 있습니
다요." "그럼 되었어요.  여봐라, 광에 가서 독을  내어오너라" 하인 둘이서 낑낑
거리며 들고 나온  독 속에는 놀랍게도 징이 가득 들어있었다.  대장장이는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랐다.  독 속에 가득히 징이 담겨 있으니  이것만 가지고도 넉
넉히 빚을 갚고 다시 대장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소
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소인은 그만 눈이 멀어......" 대장장
이는 땅에 엎드려  수없이 감사를 드렸다. 오성은  다시 점잖게 말하였다. "이제
엉덩이 데어 놓은 값은 내놓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이 정말 이런 고
마운 도련님을 몰라 뵙고......."  "그만 그만 그건 모두 농담이에요. 이젠  나도 대
장간에 갈 일이 없어졌어요.  그러니 징을 뜨겁게 해 놓는 일은  앞으로 절대 하
지 말아요."  "예, 예.........." 대장장이는 수없이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하인들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옛날 어느  부잣집엔 언제나 손님이 들끓었다.  돈 있겠다, 가문의  지체 높겠다,
찾는 사람마다 주인 영감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사랑에 손님이 가득했다. 그런데 주인 영감이 방귀를  뀌게 되었다. "엇험......" 주
인 영감은 무안해서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손님 하나가 기회를 만났
다는 듯이 아첨을  했다. "영감님의 방귀소리가 우렁차기도 하군요. 게다가  구린
냄새라곤 조금도 없는데요?"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 하나도 선수
를 빼앗긴 것이 아까운 듯 급히 덧붙였다. "구린 냄새가 안 나기만 한다면 또 모
르겠거니와 오히려 알 수  없는 향미마저 감도는 듯 합니다."   주인 영감은  두
사람이 아첨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짐짓 무슨 큰  걱정이라도 생긴
듯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내 듣기에 사람의  방귀가 구리지 않으면 오장이 썩어
서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오늘 내 방귀가  바로 그렇다면 그럼 나도  죽을 날이
가까워진 것인가?"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손님 하나가  허공을 쥐어 코
에도 갖다 대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 척 하더니, "아, 납니다. 이제야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군요." 하니 이어서 다른사람 하나가 역시 한참 동안 냄새를 맡는
척하더니 낯을 잔뜩 찌푸리면서 코를 움켜 쥐더니, "아이구, 이쪽에선  냄새가 아
주 지독하군요." 하는  것이었다. 주인 영감은 이들을 보면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옛날 함양땅에 볏섬이나 두고 살아가는 양사달  이란 사람
이 살고 있었다. 이  위인은 미련한 데다 욕심은 또 어찌나  많은지 모두들 고개
를 내두르는 터였다.  그리고 술은 말로 먹어도 시원치 않은  주량이라 만취하여
실수하는 것은 예사였다. 맏아들 혼인날을 정해놓고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의 동생이 찾아왔다. "형님, 이번엔  조카 장가가는 데 상객은 제가 따라가지요."
하고 동생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냐? 나이 오십에 처음으
로 며느리를 보는데 네가 상객을 가다니? 그해도 역시 내가 가야지 안 그렇냐?"
하고 그는 자못 못마땅한  듯이 눈을 흘겼다. "글세, 형님은 약주를 잡숫고 실수
하기가 일쑤니까  그렇지요." 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아들  까지 들고  일어서서,
"술 뿐인가요, 그 맑은 콧물은 어찌하구요?  공연히 망신만 당하실 테니 가지 마
세요." 하고  핏대를 올렸다. 그러자 양사달은  소리를 지르며, "듣기 싫어.  술은
자그만치 마시고  콧물은 자주 닦으면 될  게 아니냐?" 하고 화를  버럭 내었다.
이윽고 혼례날이 되었다.  "여보, 영감. 이 수건으로 콧물이나 자주  닦으시구려."
하고 그의 아내는 뻣뻣하게 풀을 먹인 삼베 수건을 고이 접어 그의 옷자락에 채
워 주었다. 아들도 못내 걱정이 되어,  "아버지, 절대로 오늘은 술을 잡숫지 마세
요." 하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했다. "오냐,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내 콧물이 나오
느냐?" 양사달은 콧물 나오는 것이 걱정이  되어 아들 앞으로 코를 내밀었다. 그
러나 오늘의 행사에 대비하기 위하여 가지 가지의 생각에 잠긴 아들은 아버지의
코는 볼 생각도 않고,  "네, 콧물이 나와요." 하고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
런 아들을 믿고 양사달은  서너 걸음 가기가 무섭게 연신 묻는다. "얘야, 콧물이
또 나오느냐?" "예." "또 나오느냐?"  "예." 이렇게 해서 신부집 동구밖까지 와서
야, "웬놈의 콧물이 이렇게 자꾸 나온담. 얘야, 보아라, 또  나오느냐?" 하고 양사
달은 아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안타깝게 물었다.  아버지의 코에 시선을 준 아들
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억센  삼배 수건에 긁혀서 코 밑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크,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하고 수건으로 닦으려 할 때는 벌써  신부집에서
마중을 나오는 참이었다. "아버지,  왜 술을 못 잡숫냐고 묻거든 코가 아파서 그
렇다고 변명하세요."  "오냐, 그러나 우선  보기가 싫어서  어떡한다?" "수건으로
가리고 계십시오."  "왜 수건으로 코를 가리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좋은 수가
있어요. 술 냄새를 맡으면 골치가 아프다고 하세요." "음 좋은 꾀로구나." 이렇게
부자가 말을 주고 받는데, 신부집 마중꾼이  도착했다.  "아이구, 새 사돈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고 갑자기 드신 모양이군요?" 하고 신부집 새 사돈은 코를 가리고
있는 양사달을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아, 아니올시다. 술 냄새를 조금만
맡으면 골치가 지끈거려서........" 하면서 아들은 힐끗 돌아보니, 아들은 너무 이르
다는 암시로 혀를 찼다. 이  바람에  놀란 것은 신부집 사돈이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새신랑이 벌써부터 혀를 차는  것일까?' 그러나 걱정스러운 대로 그럭
저럭 혼례식을 마치고 여러손님들과 두 사돈이  주안상을 놓고 둘러 앉았다. "사
돈  술을 잘 잡수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웬일로 술 냄새만 맡아도 골치가 아프
다고 하시오?" "예,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코가 아파서.........." 술을 보자 양사달
은 속이 뒤집히는 듯 싶어서  아들과의 약속도 잊고 시종일관 삼베 수건으로 가
리고 있던 코를 살짝  내보이는 것이었다. "아니, 사돈께선 코가 아파 약주를 못
잡숫는 것입니까, 아니면 머리가 아파서  못잡수슨 것입니까?" 하고 신부집 사돈
은 의아로운 듯이 물었다. "아차, 아, 아니올시다. 사실인 즉 코가 아파서가  아니
라 골치가 아파서......" "그것 참 안됐습니다. 사돈이  그렇게 술을 못잡숫다니, 그
러고 보면 무릇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되죠." 하고 신부집 사돈은 향내 나는 술을
한 잔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우리끼리만 이렇게 먹고 마시게 되어서 정말 죄
송스럽군요. 원......"  하고 그 때부터  모두들 신나게  퍼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양사달은 뱃속에서 주륵주륵 소리가 나는 판이었지만,  아무리 먹고 싶어도 이제
는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고약하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동생을 보낼 것을.......' 하고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나절은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망신을 면하고 밤이 되어 사돈과 나란히 이불 속에 누워 잠을 청
했다. 그러나 잠이 올 까닭이  없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눈과 코
로만 요기를 한터라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잠
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그는  마침내 살며시 이불 밖으로 빠져 나와 옷
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는  방문을 살짝 열었다. 하룻 동안 손님  접대에 지친 주
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온 집안에 코 고는 소리만이 드높았다. '에라, 몰
래 가서 술이나  실컷 퍼먹자. 그래야 내일 하루를 더  견뎌내지.' 이렇게 생각하
고 그는 염치 불구하고  낮에 보아 두었던 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 문을 살
며시 열었다.  초저녁에 켜 둔 촛불이  깜빡깜빡 졸고 있어 술  항아리를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오,  이것을 참느라고 하루 종일 얼마나 진땀을 흘렸던고?"  하
고 비맞은 중마냥 중얼거리면서 그는 큰 사발을 술 항아리에 푹 감가 노랗게 괸
술을 사발 가득히 떠서 단숨에 쭉 들이켰다.  주륵주륵 소리를 내며 쓰라리던 뱃
속이 단번에 확 풀리는 것만 같았다.  입이 체면을 알 리 없었다. 한 사발 한 사
발 퍼 마셨다. 이윽고 술동이 밑 바닥에서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을 때에야 비
로소 양사달은 벽에 걸려 있는 돼지 다리에  손길을 돌렸다. 이제는 취기가 몽롱
하여 스스로가 자기 정신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돼지 다리를 집어든 그는 그것
을 새끼로 묶어서 등에다 지고는 문께로 다가갔다.  그러나 발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비척비척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취기에  그는 문턱을 넘어 서다가 비틀하
더니 결국 나가 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잃고 어디에 누웠는지 조
차 모른 채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잠에서 깬 주인 사돈
은 옆을 더듬어 보니 새 사돈이 보이지  않는지라 움찔 놀랐다. 변소에 갔겠거니
하고 잠시 기다렸으나 돌아오지를 않으므로 몸소 변소까지 가 보았으나 역시 거
기에도 없어 주인 사돈은  크게 당황했다. '대접이 소홀해서 노여워 집으로 돌아
갔나?' 하고 걱정을 하며 집안을 돌아볼까  하고 안뜰로 막 들어가려는데 마누라
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여보, 저기 웬놈이 돼지 고기를 훔쳐가려다가  말고 자빠
져서 자고 있는데, 아무래도  어제 낮에 뵈던 새사돈인 것만 같아요." 하고 말하
는 것이었다. "음, 조용히, 조용히!" 마누라의 입을 막으며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과연 돼지 다리를 등에  한 짐 진 채 새 사돈이 쿨쿨  자고 있었다. "사돈, 사돈,
이게 웬일이오?" 하고 잡아 깨우는데  그의 마누라는 옆에서, "웬일이긴 뭣이 웬
일, 정말 별놈의 사돈 다 보겠네." 하고 방정을 떨었다. 이윽고 양사달이 눈을 떴
다. 그러나 안사돈의 방정맞은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배도 크지, 그 많은
술을 어떻게 다 마셨담? 어제는 점잖은 척  술은 입에도 대지도 않더니. 훔쳐 먹
기는 무엇하러  훔쳐 먹었을까? 아무래도  자기 집으로 모두  가져 갈 음식들인
데." "허, 참....... 그러는 게 아니오. 제발 좁 조용히 하구려." 주인 사돈이 말렸으
나 소용이 없었다. "사돈 보니 사위 녀석 골도 짐작키 어렵잖군. 에그, 딸자식 하
나 신세 망쳤지,  망쳤어!" 이렇게 정신없이 수다를  늘어놓고는 어디론지 홱 가
버렸다. 양사달은 도무지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돈, 내가 노망을 했나
봅니다.  에, 그것  참........" 하고는  애꿎은 코를  가리키면서, "실은  코가 아파
서......... 안사돈  입이나 막아주시구려." 이렇게  말하고 벌떡 일어서더니  걸음아
날 살려가 하고 집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망신을 당했지
만 다행히도 이것을 아는 사람은  사돈 내외와 맏아들 내외의 네 사람 뿐이어서
그럭저럭 그대로 수습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었다.
양사달은 이번에도 고집을 피워 자기가 따라 나섰다. "아버지, 오늘만은 제발 술
을 잡숫지 마세요." 하고  둘째 아들은 거의 애원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맏아들이 말했다. "아니야,  아버님께선 지난 번 장가 가던 날 술을 참으시
다가 큰 망신을 당하셨어. 그러니 오늘은 주무시기  전에 적당히 한 잔만 잡숫도
록 해 드리는 것이 나을 게다." 그래서  결국 맏아들 말대로 하기로 결정을 보았
다. 혼례를 치르고 밤이 되었다. 그러나 낮 동안  참은 술이니 한 잔으로 갈증이
풀릴 리 없었다. 양사달은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 하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사돈
이 따라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가 결국 술  항아리를 다 비우고 말았다. 밤이 이
슥하도록 일배 일배 부일배로  술 항아리를 다 비우고, 또 음식  담은 쟁반을 비
우고 해서 몽롱한 가운데  불러오는 배를 움켜안고는 사돈에게 취침하기를 간청
하여 잠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무사해진  것은 아니었
다. 잠이 막  들려 했을 때였다. 뱃속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나더니 설사가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미처 문을  박차고 나올 여가도 없었다. 바짓가랭이에 진탕 묻
어 나온 오물을 어찌할 수 없어 그는 옷을 벗어 들고 어슬렁어슬렁 앞뜰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나직이, "워리, 워리......!"  하고 개들을 불렀다. 개들을 시켜 바짓
가랭이를 청소시킬 속셈이었다.  사돈집 개와 이웃집 개가  달려와서 으르렁거리
며 서로 핥으려고 싸움을 했다. "조용,  조용히 핥아라!" 하고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으나, 그가 취기를 못이겨 꾸벅 조는 사이에  두 마리의 개는 제각기 바짓가랭
이를 물로 잡아당겨 바지를 두  조각 내더니 하나씩 물고 울타리 사이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저 놈의 개, 저 놈의 개!" 하고 혼자 씨근거려 보았으나 두 조각이
난 바지는 이미 울타리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양사달은 바지를 빼앗긴 채 하
는 수 없이 자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느 방이 자기가  자던 방인지 좀처
럼 분간이  안 되어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까운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뺨을 쳐도  모를 만큼 어두운 방이었다.  되는 대로 손을 더듬어 만져
보니 마침 바지가 하나 쥐어 졌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우선의 망신이나 면할 양
으로 그는 그 바지를 주워 입었다.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서 사람 사이에
끼어 누우려고 할 때 자는 줄 알았던 옆의 사람이, "영감도 참 주착이 없으시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원......" 하고 여자가 몸을 도사리는데  그것은 틀림없
는 안사돈의 목소리였다. '이크, 이거 야단났구나. 안방엘 들어온 모양이다.'  하고
생각하자, 양사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사방을 헤매어
간신히 제 방을 찾은 것은 날이 훤히 밝아올  무렵이었다. 눈을 붙이고 한 숨 잘
겨를도 없이 양사달은  일어나야만 했다. '아니, 이거? 이건 또  무슨 꼴이람.' 댓
님을 매려고 했을 때 그는 비로소 입고  있는 바지가 여자의 단속곳임을 알았다.
그는 황급히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 "사돈, 식전 아침부터 거추장스럽게  두루
마기는 왜 입고 야단이시오? 자, 빨리  벗으시구려." 하겨 달겨들어 벗기려 했다.
물론 양사달을 위한 인정에서  우러난 말이었지만 양사달에게는 진정 고맙지 않
은 일이었다. 양사달은 자못  점잖은 채 꼼짝 않고 조아리고 앉아서,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동방예의지국에서  식전 아침의기로서니 두루마기를  벗을 수가 있
소? 그래도 명색이 새 사돈인데......." 하고 화를 버럭 내면서 최후 수단으로 겨우
위태로운 사태를  수습했다. 두루마기를 입은  채 조심스럽게 세수를  하고 나니
아침밥상이 들어왔다. 단속곳이 보일까 봐 그는  두루마기 자락으로 겨우 가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밥상을   받았다. "사돈, 왜 그리 안절부절 못하고  쩔쩔매시오?
편히 앉아서 천천히 잡숫고 오늘 하루 더  쉬어 가시오." 그러나 한시가 바쁜 양
사달이었다. "나는 속병이 있어서  쪼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뒤탈이 없다오." "원,
저런! 속병이 오래 됐습니까?" "예, 그레 자그마치 십  년째랍니다." "아, 그거 좋
지 않군요. 될 수록  빨리 병을 고쳐야겠습니다. 자, 술이나 한 잔 듭시다."  하고
술을 권하는지라, 양사달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어떠랴  싶어서 한 잔 두 잔
취할 때 까지 받아 마셨다. 밥 숟가락을 놓자 사돈은 바로 변소로 가 버렸다. 취
기가 몽롱한 양사달의  눈에 웬일인지 밥상에 놓인  놋식기가 무척 값진 것으로
보였다. 좌우를 돌아보니  아무도 자기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냉큼  그 놋
식기를 집어 머리 위에 얹고 그 위에 갓을  덮어 썼다. 그리고 상보로 상을 덮어
버렸다. 아침부터 주이  마님의  단속곳으로 말미암아 소동을 일으키고  있던 내
실에서는 밥상이 물려 나오자 소동이 한층 더  커졌다. 밥상 위의 놋그릇까지 없
어졌으니 의심은 갈데 없이 하녀들에게로 쏠리고 말았다. "이년들, 어느 년의 짓
이냐? 단속곳을 집어가질 않나, 놋식기를 빼돌리지  않나? 정말 형편없는 소행머
리들이로구나." "어머나, 마님도.  너무 억울해요." 이렇게 옥신각신  하고 있자니
까 바깥주인이 들어와서  점잖게 타이른다. "왜들 이렇게  소란스러운고? 없으면
없는대로 오늘은 조용히 해라. 새 사돈 보기에 부끄럽구나." 이렇게 내심 공기를
조용히 해 놓고 그 곳으로 새 사돈을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양사달은 얼굴이 푸
르락 붉그락인 채로 두루마기를 모아 쥐고 아기작 걸음으로 며느리의 절을 받으
러 거실로 갔다. 대청 마루에는 여자 손님들이  새 사돈의 인물을 구경하려고 모
여 서 있었다. 양사달은 동짓달 추위에 땀까지  뻘뻘 흘리며 두루마기 자락을 모
아쥐고 단속곳이 안보이도록  앉아 며느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며느
리가 들어와서  옥인 양 고운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살포시 절을  했다. 며느리의
거동이 하도 아름답고 깜찍해서 양사달은 갓안의 놋식기를 깜빡 잊어 버리고 답
례를 하느라고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가 커서....." 하는 말을 잇기도  전에 쨍그
랑! 하고 머리  위의 놋식기가 방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어머나,  놋식기가 저
기 있네." 하녀 하나가 기뻐서 이렇게 소리쳤다. 양사달은 당황한 나머지 말없이
내실 문을 박차고 나와  안뜰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하면
서 안사돈이 단속곳이  드러났다. "에그머니, 마님의 단속곳이 저기 있네?"  하녀
들은 입을 모아 소리쳤다.  양사달은 뒷일이야 어찌되었든 우선 걸음아, 날 살려
라 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하느님 맙소사!" 새신랑은 이렇게
외치고 기절해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는 식음을  전폐하고 신부의 애타는 간호
도 소용이  없이 신음소리만 날로 높아갈  따름이었다.  옛날 어느  고을에 아주
어리석고 미련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얼마나 멍텅구인고 하면  손님을 맞아도
그 인사 차리는  절차를 도무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그저 멀뚱거리고  앉아 있기
만 하니 그 아내가 답답하게 여기어 남편에게 일렀다. "인간의 탈을 썼으면 우선
사람 접대하는 도리쯤은 알아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접
대하는지 그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평안하시냐고 묻고,  다음에는 담배
를 권하고, 다음에는 술  마실 줄을 아시느냐고 묻지요. 그리고 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계집 종을  불러서 술상을 차려 오라고 분부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렇
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남편은 난색을 표명했다. "그걸 어떻게 다  외
운담?" 그러자 잠깐 생각에 잠겼던 아내는 눈에 빛을 담고,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우리 이렇게 해요. 우선 노끈을 당신 거기에  맨 후, 그 한 끝을 벽 틈으
로 내보내어 손님이 오면  내가 잡아 당겨 신호를 하도록 하지요.  한 번 당기면
평안하시냐고 묻고, 두  번 당기면 앉기를 청하고, 세 번  당기면 담배를 권하고,
네 번 당기면 술  마시기를 청하고, 다섯 번 당기면 술상을 들이라 하세요."  "그
거 괜찮은 것 같군." 멍텅구리 사나이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익히고 익히어 마침
내는 길이 잘 든 개처럼 노끈에 대해서 실수 없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끔 되었
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엔 이들 내외가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았던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옳거니!" 아내가 노끈을 한  번 잡아 당기자 사나이는, "안
녕하시오?" 또 한 번 잡아당기니, "담배 피우시죠." 또 한 번 잡아당기니, "술 마
시겠습니까?" 또 한 번  잡아 당기니, "술 가져 오게!" 친구는 이 멍텅구리  사나
이의 장족의 진보에 혀를 내두르며, 자네, 전엔 통 인사하는 법이라곤 없던 사람
인데 언제 이렇게  싹싹하게 변해 버렸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
련퉁이는 뽐내면서, "그까짓 거,  안해서 그렇지 하려면 아주 잘한다오." "아무튼
퍽 다행한 일일세." "그 인사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거기에 신
경을 쓴단 말야?"  아내는 이제 술상을 보려고   잡고 있던 노끈을 소 뼈다귀에
매어 문틈에 끼어 두었다. 아내는 남편이 인사절차를  잊지 않고 잘해 준 것만이
기뻐서 부지런히 상을 보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노끈을 매어 놓은 뼈를 탐내어
입으로 물었다. 그러자 노끈이 저절로 움직였다. 친구와 대좌하고 앉았던 멍텅구
리는 거기를 잡아맨 끈이 한 번 흔들리자, "안녕하세요?"  또 노끈이 움직이니, "
앉으시게."  또 움직이니, "담배 피우시오."  자주자주 끈이 움직이자, "술 마시겠
소? 술 가져오게, 안녕하시오?......." 친구는 너무 웃음이 나와서 술상을  마다하고
그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그러나 개는 아직두 뼈다귀를 깨무느라  열심이니 멍
텅구리 사나이는 친구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앉아서, "안녕하시오? 앉으시오,  담
배 피우시오, 술 마시겠는가? 술 가져오게........" 끊임없이, 끊임없이  혼자서 중얼
대는 것이었다.  이태조 때 판중추 부사를  지낸 박순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태조
가 만년에 그  아들인 태종과 사이가 나빠져서  함흥으로 내려가서 오지 않으니
태종이 문안하는 사자를  보내면 태조가 죽여 없애버리곤 했다. 또  문안사를 보
내야겠는데 가고자 하는 자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때 박순이 나서면서,
"갈 사람이 없으면 신이 가지요." 하고 자원을 했다. 함흥을  가는데 사자의 수레
를 타지 않고 새끼 달린  말을 타고 가서 형재소가 보이는 곳에서 새끼 말을 길
가에 잡아 매어놓고 그 어미 말만 타고 가니 어미와 새끼가 서로 돌아다보며 부
르고 소리 질렀다. 태조께  문안을 드리니 태조가 이상히 생각하여, "그 말이 왜
그러느냐?" 하였다. 박순은 얼른, "이곳을 들어오는데 새끼 말이  있어 방해가 되
기로 새끼를 길가에 잡아 매었더니 미물이지만 정이 지극하여 그런 모양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태조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덜 좋았다. 다른 사람과 다른지라
박순을 묵게 하고  보내지 않더니 하루는 박순이 태조를 모시고  바둑을 두었다.
마침 쥐란 놈이 새끼를 몰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끝까지 새끼를 놓지 않았다. 박
순이 바둑판을 밀어 놓고 엎드려 울며,  "미물도 저렇거든 전하께서는 어찌 부자
분 사이에 서로  떨어져 살수 있겠습니까?"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결국 태조는
마음이 돌아서서 서울로  환어할 것을 허락하였다. 박순은 그 허락을  받고 성공
하였으므로 태조께 하직하고 회경하였다. 박순이 떠난  다음에 태조를 모시고 있
던 제신들이 지금까지 다른 문안사는 다 죽이셨는데 박순만은 왜 아니 죽이느냐
고 청하였다.  태조가 내심으로는 죽이고 싶지  않으나 중신들이 태조와 박순 사
이에 무슨 밀약이  있는 것을 모르고 그러는지라, 태조는 박순이  용황강을 이미
건너갔을 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칼을  사자에게 주며, "쫓아가 보아서 강을
건넜거든 그냥 돌아오고 만일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으면 죽여라." 했따. 그런데
박군은 가다가 병이 생겨 천천히  갔으므로 강 언덕에 이르러 나룻배를 타고 막
건너려 할 즈음에  사자가 당도하였다. 사자는 그 자리에서 박순의  허리를 베었
다. 박순은 죽으면서,  반재강상 반재선 절반은 강  위에 있고 절반은 배에 있도
다. 라는 시조를  읊고 죽었다. 태조는 그가  죽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깜짝 놀라
통곡을 하며, "박순은  나의 좋은 친구였는데 죽었구나.  내가 저하고 언약을 한
것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하고 회경하기를 결심하였다. 태종은 나중에 그  이야
기를 듣고 화공을 시켜 끊어진 반신을 그림으로 그려서 박순의 아내인 임씨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옛날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씨 가문에 한
꼽추가 지독한 노랭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노랭이였는지 장가든
후인 데도 사람들은  정노랭이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곳간마다  쌀섬이 가득했
으나 어쩌다 밥상에 새우젓이라도 놓일라치면, "날 병자 취급하지 마라! 나는 아
직 생생해! 이렇게 성한  몸인데 생선을 먹으라구?" 하면서 호통이 대단했다. 밥
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장인이 하루는 북어 한  마리를 보내왔다. 그
것을 그대로 아내에게 먹일 정노랭이라면 아마도 그리 놀림은 받지 않았을 것이
다. 그는 북어를 벽에 걸어 놓고 밥 한 술 떠먹고 그것 한 번 쳐다보곤 했다. 어
쩌다 아이들이 두  번이라고 쳐다보면 머리를 때리며 헤프다고 야단을  쳤다. 게
다가 해가 저물면 기름을 아낀답시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면서 부부
간의 그것마저도 싫어하는 그였다. 왜 아까운 밥  먹고 그런 짓을하여 힘을 빼내
느냐는 것이었다.   이쯤의 위인이니 어느 얌전한 부인이라도  견뎌내겠는가? 참
고 참았던 부인은 어느 봇짐 장사와 눈이  맞아 한밤중에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정노랭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침까지 뱉었다. 그후  어느 핸가
홍수가 져서 온  마을을 휩쓴 불상사가 일어났다. 정노랭이의 집도  예외는 아니
어서 다를 식구들은 제 발로 뛰쳐나와 재앙을 면했으나 정노랭이의 아버지는 미
처 물결을 헤어나지  못하고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자식된  도리는 아
는 모양인지, 정꼽추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여러분,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시오.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돈을 드리겠소." 그런데 그의 아버지도 아들
못지 않게 구두쇠였던가 보았다. 둥둥 떠내려가면서 이 소리를 듣고, "이놈아, 얼
마든지 주겠다니 돈은 어디서 거저 생기느냐? 닷  냥만 걸어라. 닷 냥에 날 건지
겠다면 허락하고 그렇지  않거든 그만 두어라." 하는 것이었다. 정노랭이는  코웃
음치는 동네 사람들에게 닷 냥으로 흥정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자맥질을 치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곳 저곳 자연을 음미하며 유람하던  정만서가 우연
히 이곳을 지나게 되었을 때는 마침 이런일이  있은 직후여서, 마을 사람들이 일
어나 이 아비  죽인 노랭이를 치죄하고자 하는 참이었다. 마을이  떠들썩하니 호
기심 많은 정만서가 어찌 그 곳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듣고 보니 과연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혼벼락을 내주고자 작정했다. 우선 그는 정노랭이의  집 골목
어귀에 서성거리고 있다가 정노랭이를 보자 머리를  주억거리며 혀를 찼다. 이런
정만서의 속셈을 알 리 없는  정노랭이는 낯선 사람이 지나가다 말고 자기를 유
심히 쳐다보며 안됐다는 듯 혀를 차는 걸  보고 심히 의아했다. 그리고 불쾌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시비도 걸수 없고 해서  그냥 지나가려는 참에 정만서가 그
를 불러 세웠다. "남의 일이긴 하오나 하도  딱하고 아까운 생각이 들어 차마 그
냥 가지  못하겠구려. 댁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라 천하를  호령할 기상입니다
만......." 정노랭이는  귀가 번쩍 뜨였으나 그  끝말이 어쩐지 미진했다.  보아하니
행색도 괜찮고, 또 실없는 농담을  할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 말이 미덥기는 했
으나, '만........'이라는  끝말에 신경이  거슬린 것이다.  "어디 사시는  누구시오니
까?" 정노랭이는 아주 공손하게 절을  하며 물었다. "한양 북촌에 사는 정이라는
의원이외다. 이 산중에  희귀 약초가 있다기에 듣고 찾아오는 길입니다."  사방을
둘러보며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한양  북촌이라면 장안에서도 쩡쩡 울리는
재상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쯤은 정노랭이도 알고 있었다. 그의 속셈을  훤히 헤
아리기라도 했는지 정만서는 한 술 더 떴다.  "내 이미 오래 전부터 영의정 이대
감. 우의정 김대감, 이조판서  송대감 등등 여러 댁을 드나들며 치료해 드렸으나
댁처럼 비범한 인물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약간이나마 관상을 볼 줄 아
온데 댁은 재상의  지위를 타고 나셨습니다. 허나 다만......"  정신을 홀랑 빼앗긴
정노랭이가 말했다. "다만 이 등뼈가.......?" 하고는 정만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소이다." 그는 말끝을 흐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이날 밤, 정노랭이는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다가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재상이 되어 고대광실 높은 집
에서 팔선녀를 데리고  노니는 꿈을 꾸었다. 잠이 깬 정노랭이는  생각할수록 자
기가 등이 툭 불거진 꼽추가 된 것이  미웠다. 그렇게 고분고분하던 아내가 도망
쳐 버린 것도 다 등 탓이려니 생각하니 자기 팔자가 한없이 원통스러웠다. '꼽추
만 고칠수 있다면?'  이렇게 결심을 한 그는 어저께 만난  사람이 명의임에 틀림
없으나 자기의 몸도 고쳐 줄  좋은 방도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정만서가 묵고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그의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있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정만서는 회심의 미소를  띄운채, 이제 곧 목욕한후
약초를 캐러 가야  한다고 점잖게 거절했다. 그러나 영의정을 눈앞에  보는 듯한
정노랭이가 이만한일에 물러설까?  "제발 사람 한 목숨 살려  주십시오. 부디 제
집으로 가셔서 저를 고쳐 주십시오." 못이기는 척하며 정만서는 정노랭이의 집으
로 처소를 옮겼다. 그리고는 매일  소다, 닭이다 하고 모두 잡아 그 피를 꼽추에
게 먹으라고 한  다음 살코기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노랭이는 아
깝고 분하기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영의정의 꿈에 참고 버텼
다.  잘 먹어서 부옇게 살이 오른 정노랭이는 슬그머니 의아심이 일었다. 참으라
고는 한 대도 놔주질 않고 자꾸만 세월만 보내고 있으므로 초조해진 정노랭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원님, 몸에 기름기가  많으면 치료하기에 나쁘지 않을까
요?" 그때서야 정만서는, "이게 그쯤하면  몸은 충분히 보했으니 어디 치료를 해
봅시다." 하고는 떡판과  떡메를 가져오락고 일렀다.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정노랭이, 별 이상스런  치료법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시키는대로  그것들을 가져
왔다. 정만서는 떡판위에 그를 눕게 한 다음 떡메를 높이 쳐들었다. "아니, 이 떡
메로 무얼  하시려구요?"  "치라는 떡멘데 치지 않고 뭘 하겠나?" 깜짝 놀란  정
노랭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것으로 쳐서 병을 고치다니, 도대체 몇 명이나 치셨
습니까?" "한 열명은 쳐  봤지." "병들은 다 나았나요?" "아홉은 죽고 하나는 살
지 못했네." 얼이 빠진 정노랭이,  "그럼, 나는 살 수 있을 까요?" "두고 봐야 알
지, 죽지 않으면 살지 못하겠지, 자아,  시작 할까? 이 노랭이 녀석아?" 그러면서
정만서는 떡메를 이러저리 휘둘러 대니 정노랭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온 몸
을 사시나무 떨 듯 움츠리며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였다.  옛날 한 신
부가 신혼의 날을  당하여 폐백을 시어머니에게 드리는데, 절할 때에  문득 산기
가 있어 그 자리에서 아이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여럿이 모인 가운데 어찌할 바
를 몰라 하며 급히 신부 앞을 향하여 아이를 받아서 치마에 싸 안방으로 달려가
눕혀 둔 후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오니 신부가 시어머니를 향하여 말하기를, "시
어머니께서 이렇게 손주를 사랑하실  줄 알았더라면 작년에 난 아이도 데려다가
뵙게 하지 못하였음이 한이 되옵니다." 하거늘  이것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입
을 다물고, 시어머니가 부끄러워 할말을 잃었다.  옛날에 영남의 한 고을이 흉읍
으로 변하여 새 사또가 도임하면 그날 밤으로 급사하곤하여 연이어 다섯 사또가
허무하게 죽어갔다.  이리하여 그 고을이  비록 상당한 고을이었지만  한 사람도
이에 응하여 부임하는 이가  없어 한동안 사또 없이 지내었다. 그러던  중 한 선
비가 여러 해를 등제치 못하여  곤궁하기 그지 없고 하루에 한 끼도 먹을 수 없
는 처참한 형편이라. 이에 이조의 전장을 찾아보고, "소인이 그 흉읍에 도임하여
한 번 죽기로써 다짐두옵고 나아가고자 하오니 대감의 의향이 어떠하시온지요?"
"그렇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을 가고자 하는 그 뜻이 가상하도다. 어서 가서 잘
해 보라."하여 불일간에 치행하여 내려가서 도임하였는데 과연 대읍이었다.  밤이
되자 하리배들을 일찍 내보내고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서 칼을 빼어 책상 위
에 놓고 낭랑한 음성으로 주역을 읽었다. 때가  사경에 이르러 자인도 또한 깊은
잠에 빠져 사방을 돌아보아도 인적이 없고 만뢰가 함께 고요한데 문득 뜰 한 가
운데서 여인의 슬피우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며 동헌으로 올라  방문을 열고
들어오거늘, 사또가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주역만 읽고 있었다. 여인의
안색이 아름답기 한이 없고 녹의홍상으로 머리는 풀어 헤쳤는데 그 머리에 하나
의 짧은 칼이 꽂혀있었다. 그 여인은 흐느껴  울면서 천천히 걸어들어와 책상 머
리에 앉아서 사또를 쳐다 보거늘  사또가 모른 척하며 책만 읽다가 얼마쯤 지난
후에 책을 덮고 소리를 가다듬어,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하고 물으니 귀신
이 말했다. "소녀는 본읍 기생 아무개였는데 아무  해 아무 날 아무 시에 사또의
수청 기생으로 동방에 있었습니다. 그때 통인  아무개가 가만히 들어와 간통코자
하길래 소녀가 지금 안전을 모시는  처지에 이럴 법이 있느냐고 하며 이렇게 하
면 너와 내가 함께 죽을 죄를 범하게 된다, 빨리  나가라! 하고 꾸짖은 즉, 그 놈
이 몹시 화가나 저를 칼로 찔러 죽인후 자취를 없애기 위해 소녀의 시체를 폐문
루의 큰 북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소녀의 부모 형제가 소녀의 거처를
알지 못하여 시신이 아직도 큰 북 가운데  있어서 아직 장례도 지내지 못하였고,
또한 복수치 못하여 매양 사또께서  도임한 후 이 원한을 풀고자하여 이와 같이
들어오면 전후 등내가 다 이 밥통과 똥요강들이라 문득 다 놀라 숨이 막혀 죽어
버리니 수년 사이에 이 원한을 풀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행히 안전과 같으신
분을 만나 엎드려 원한을 호소 하오니  바라건대 이 깊은 한을 풀어주소서." "통
인의 성명은 무엇이냐?" "성명은 아무개이온데 지금 형방 거행을  하고 있사옵니
다." "내 잘 알았다. 밝은 날 마땅히 처분할 터이니 너는 곧  안심하고 물러 가거
라." 기생이 울면서 사례하고 일어나 문을 나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사또
가 이튿날 아침에 세수하고 동헌에 앉았는데 하인배들이, '새사또도 반드시 송장
으로 변해 있으리라.' 생각하고 함께 모여 들어오다가 사또의 의젓한 모습을  보
고 크게 놀랐다. 예에 의하여 아침 조사를 보는데 사또가 이방을 불러, "형방 아
무개가 들어왔느냐?" 한 즉  이방이 고하여 대령케 한다 하거늘 곧 잡아 들이라
하여 무릎을 꿇게 한 뒤에, "네 죄는  스스로 알지니 엄형으로 다스리기 전에 이
실직고 함이 옳으리라." 하고 일면 하령하며, "폐문루의 큰 북속을 열어보라." 한
즉, 과연 한 여인의  시체가 있고 면모와 복색이 한결같이 지난  밤에 본 바대로
머리에 한 개의 칼을  꽂고 구부린 몸에 얼굴이 자는 것  같거늘, 형방이 도무지
발뺌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낱낱이 고하였다. 이에 형방을  즉각 처형하
고 죽은 기생의 부모를  불러 돈과 필육을 후히 주어 안장케  하니, 이로부터 이
읍이 안연무사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특히  여겨 만고에
까지 오르고 수와 복을 함께 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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