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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아동문예당선작/바다로 간 허수아비(지은이/최형심)

by 정령시인 2010. 5. 13.

제목 : 바다로 간 허수아비

 

 

                                                                                                                          - 최형심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햇살은 논 구석에 혼자 처박혀 있는 허수아비에게 떨어졌습니다. 허수아비의 어깨에는 허연 얼룩이 져있었습니다. 저만치서 마스크를 쓴 농부아저씨가 농약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독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어이, 이씨!”

멀리서 누군가 농약을 뿌리고 있는 아저씨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기 구석에 박혀있는 허수아비, 혹시 필요하지 않으면 내가 좀 가져가도 될까?”

유난히 검게 그을린 아저씨 한 분이 물었습니다.

“아, 김씨!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했네. 허수아비라면 자네 마음대로 하게.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 아, 요새는 이렇게 강력한 살충제가 나오니까 벌레가 싹 죽어서 벌레를 잡아먹으러 오는 새들이 아무도 없어. 허허.”

이씨 아저씨는 잠시 일손을 놓고 김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 그래? 그런 내가 좀 가져다 쓰겠네. 바쁜데 방해해서 미안하이.”

김씨 아저씨는 성큼 성큼 다가와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허수아비를 쑥 뽑아들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허수아비는 당황했습니다.

김씨 아저씨가 자신을 바다 한가운데 꽂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발밑에서 몇몇 물고기들이 신기한지 자꾸 툭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이, 신기한 녀석은 다 뭐야?”

얼마 지나지 않아 물고기들이 우르르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호기심이 강한 녀석들은 물 위로 펄쩍 뛰어올라 허수아비의 얼굴을 보고 갔습니다. 곧 허수아비 주변은 물고기들로 시끌벅적 해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비명을 지르며 지느러미가 빠지도록 물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허수아비 주변은 곧 비명소리와 더 깊은 곳으로 숨으려는 물고기들이 서로 밀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큰 새는 허수아비와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 놀라더니 얼른 내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속 깊이 숨어 숨을 죽이고 있던 물고기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이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물위로 튀어 올랐습니다.

“이야, 정말 멋지다. 논에 잡아먹을 벌레가 없다고 양식장에 갇혀 사는 우리를 잡아먹더니, 흥. 항상 우리들을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는 녀석이 달아나는 꼴 좀 봐!”

물고기들은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바닷바람이 불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던 물이 허리춤에서 찰랑거리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바닷바람이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은 짠 내가 나기는 했지만 허수아비의 텅 빈 가슴을 훅훅 훑고 지나갔습니다. 어깨위에 얼룩덜룩 엉겨있던 농약 찌꺼기들이 조금씩 씻겨나갔습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던 가슴 속까지 바람이 밀고 들어간 날이면 허수아비는 조금씩 바뀌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새들은 멀리서 물고기들을 바라보다가 사라졌습니다. 허수아비가 온 후 물고기들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며 깊은 물속으로 숨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허수아비를 신기해하던 물고기들도 무서운 새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휴우!”

허수아비가 너무 크게 한숨을 쉬었는지 허수아비의 발치에서 단잠을 자던 물고기 한 마리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습니다.

“깜짝이야! 허수아비야, 무슨 고민이 있니?”

“잘 모르겠어. 바닷가에 온 이후로 가슴이 확 트인 것까지는 좋은데, 가슴속이 텅 빈 것 같아. 그동안은 독한 농약으로 매일 목욕을 하다시피해서 온몸이 늘 오그라들어 있어 몰랐거든. 내 가슴에는 무언가 있어야할 것이 없는 듯 해.”

허수아비는 힘이 쭉 빠져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런 문제라면 아마 고래가 잘 알거야.”

“고래?”

허수아비가 반가운 기색을 띠며 물었습니다.

“응. 먼 바다에 사는 배만큼 큰 물고기인데 모르는 것이 없다고 들었어.”

“진짜? 나는 움직일 수 없으니 너희들이 고래에게 가서 좀 물어봐 줄래?”

허수아비는 반가워서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고래는 워낙 큰 물고기라서 아주 아주 먼 바다에 살아. 우리는 저 울타리 밖을 나갈 수가 없어.”

물고기는 턱으로 그물이 쳐진 가두리 양식장 가장자리를 가리키며 조금은 미안한 듯 대답했습니다.

 

허수아비의 한숨소리는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때로는 한숨소리가 너무나 커서 작은 파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고기들은 덩달아 우울해졌습니다. 만약 허수아비가 크게 아파서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언제 새들이 들이닥쳐 잡아갈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멀리서 시커먼 구름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바다까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물밑에서 서서히 소용돌이가 일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람이 허수아비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너무 세게 치고 지나가서 아팠습니다.

“아얏!”

허수아비가 달아나는 바람의 꽁무니를 째려보니, 이런, 허수아비의 어깨에 묻은 농약을 걷어내던 그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험상궂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뒤돌아보는 바람의 얼굴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발밑이 술렁거렸습니다. 물고기들은 무언가 불안한지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둠이 허수아비가 서있는 바다의 물밑까지 이르렀습니다. 물고기들은 자신들을 덮쳐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움츠러들었습니다. 팔랑 팔랑 다정하게 물장구치며 허리를 감싸주던 파도는 잠시 어디로 갔는지 주변은 평상시보다 조용했습니다. 물고기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허수아비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모두들 절대 흩어지지 마. 지느러미를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깊이 땅 속에 박고 밖에서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고개를 들어서는 안 돼.”

수염이 하얀 물고기 하나가 어린 물고기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밤처럼 짙은 어둠이 바다를 뒤덮었습니다. 멀리서 우르르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물고기들은 벌써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땅에 깊이 박고 귀를 막았습니다. 어둠의 저편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소리와 더불어 바람도 점점 사나워졌습니다. 허수아비의 얇은 옷은 거의 바람에 찢길 듯 펄럭였습니다. 쭉 벌리고 선 두 팔을 세찬 바람이 할퀴고 갔습니다. 딸랑딸랑 목에 걸린 방울이 요란한 소리로 울어댔습니다. 곧이어 귀를 찢는 듯 한 무서운 소리가 허수아비와 물고기들을 덮쳤습니다. 집채보다 더 큰 파도였습니다.

 

허수아비는 눈을 떴습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셨습니다. 주변이 어쩐지 낯설었습니다. 몸이 붕 뜬 듯도 했습니다. 허리춤에서 찰랑대던 파도가 어깨에서 발바닥에서 머리에서도 찰랑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무언가 물위로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눈에 익은 녀석이었습니다.

“얘들아, 허수아비가 눈을 떴어!”

이어 사방에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정말? 다행이다. 허수아비 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조금 정신이 든 허수아비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낯익은 물고기들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허수아비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음, 폭풍이 왔던 거 기억나지? 큰 파도가 양어장을 덮쳤어. 너도 아마 그때 정신을 잃었었나봐. 우리는 그때 머리를 땅에 깊이 박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글쎄 그 파도가 너무나 커서 우리를 통째로 양어장 울타리 밖으로 팽개쳤지 뭐야.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양어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신을 잃은 친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 너도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하고 있었어. 우리가 힘을 모아 너를 밑에서 밀어 올렸지.”

그때서야 허수아비는 자신이 물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애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너는 지난 삼일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우리는 걱정이 많았어. 자, 이제 정신이 들었으니까 천천히 수영을 해봐. 그동안 우리가 번갈아가면서 너를 밑에서 받치고 헤엄치느라고 힘들었거든.”

그중에서 제일 몸집이 큰 녀석이 말했습니다. 허수아비는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이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습니다. 막대기로 된 몸이 뻣뻣했지만 물에 떠있기에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늘 서 있다가 누워있으니까 기분이 색다른데. 헤헤.”

허수아비가 기쁜 듯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허수아비는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바다뿐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던 모래사장도 작은 집들도 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 여기는 아주 먼 바다야. 태평양이라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바다 한가운데지. 거친 파도가 우리가 살던 양어장에서 우리를 멀리 떠밀고 왔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한줄기 물이 분수처럼 바다 한가운데에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참,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준비했어.”

몸집이 큰 물고기가 눈을 찡끗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바다중간으로 거대한 섬 하나가 생겼습니다.

“기억나? 너 고래를 꼭 만나보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우리가 지나가는 물고기들한테 수소문해서 고래에게 너를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어.”

허수아비는 그제서야 그 커다란 섬이 고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허수아비의 말을 가만가만 듣고 있던 고래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가슴이 텅 빈 느낌이라고? 뭔가 빠져있는 느낌이라고? 어디 옷을 좀 올려봐.”

주변에 있던 물고기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물에 젖은 허수아비의 옷을 위로 올렸습니다. 뼈만 앙상한 몸매를 들킨 허수아비는 좀 부끄러웠습니다. 고래는 수염을 하나 허수아비의 배에 대고 이리저리 진찰을 했습니다.

“이상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네. 아마 속이 텅 빈 나무로 만들었나보다. 혹시 슬픔이나 기쁨이나 그런 걸 느껴 본 적이 있니?”

고래는 커다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그게 뭔데?”

허수아비는 쑥스러워 하며 되물었습니다.

“쯧쯧… 농약만 들이 마셔댔으니 따뜻한 심장이 살아 있을 리 없지. 농약이 벌레만 죽인 게 아니라 네 가슴속에 있던 심장까지 죽였군. 심장이 없으니 가슴이 텅 빈 느낌이 나는 것이고.”

고래는 딱하다는 듯 허수아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심장을 가질 수 있을까? 나도 따뜻한 심장을 가져보고 싶어. 슬픔이 뭔지 기쁨이 뭔지 나도 한번만 느껴보고 싶어.”

고래는 약간 망설였습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그런데 아마 저 용궁에 사시는 용왕님은 아마 아시지 않을까 싶은데…”

 

고래는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바다 위는 밝고 환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졌습니다. 바쁘게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고래를 위해서 지나가던 초록 물고기 떼가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고래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바다 속을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어느덧 밖에서 더 이상 지나가던 초록 물고기 떼들이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멀었어?”

기다림에 지친 허수아비가 고래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해. 조금만 더 참아.”

고래가 대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래는 계속 바다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허수아비는 너무 심심해서 고래뱃속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고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저기 용궁이 보인다. 어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구.”

허수아비는 눈을 비볐습니다. 허수아비는 물고기들에게 들은 동화책에 나온다는 용궁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화려한 용궁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갔습니다.

 

고래가 무언가에 부딪쳤는지 커다란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숨을 고르는 고래의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도착했어. 어서 나와!”

고래가 이렇게 말하면서 입을 벌렸습니다.

허수아비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용궁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기대에 가득 차서 얼른 고래입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허수아비와 물고기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용궁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화 속에서 그렇게 화려하다고 말했던 대문도 건물도 모두 너무나 낡고 더러워져있었습니다. 덩치만 커다란 건물 곳곳은 허물어져 있었고 보석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금칠은 여기저기 벗겨져 보기 흉했습니다. 거기다가 아무도 살지 않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동화 속 아름다운 열대어들의 무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모두 어딘가로 떠나서 낡고 허물어진 것 같은데, 여기에 과연 아직도 용왕님께서 살고 계실까?”

고래는 약간 겸연쩍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용왕님은 이곳을 떠나지 않으셨어…” 고래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허수아비가 물었습니다.

“그건, 아직 용궁이 여기 있다는 걸로 알 수 있어. 용왕님께서 돌아가시거나 이곳을 떠나시면 용궁도 같이 사라지거든.”

고래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허물어진 용궁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용왕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용왕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용왕님!”

모두 소리 높여 용왕님을 부르고 다녔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부르고 다니다보니 어느새 용궁 끝에 닿았습니다. 허수아비는 다리가 아파왔습니다. 고래는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거야?”

물고기 한마리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래도 한번만 더 불러보자.”

허수아비는 기운을 내며 말했습니다.

“용왕님!”

모두 기운을 내어 아주 아주 큰 목소리로 용왕님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용궁 끝 아주 허름한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습니다. 병든 것처럼 힘이 없어 보이는 작은 멸치만한 물고기 한마리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이요?”

그 멸치만한 물고기가 물었습니다.

“우리는 용왕님을 찾고 있어요.”

고래가 말했습니다.

“내가 용왕이요.”

그 멸치만한 물고기가 말했습니다. 물고기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키득 키득 웃었습니다.

“장난하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는 허수아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답니다. 용왕님은 바다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아시니까 분명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고래가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자신을 용왕님이라고 한 멸치만한 물고기가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옛날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읽고 모두 많은 꿈을 품고 모험을 즐겼었지. 이제 세상이 변해서 모두 꿈을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따라다니게 되었지. 그러니 더 이상 용궁을 찾는 이들도 없고 아예 용궁이 있다고 믿지 조차 않으니 용궁안의 모든 것들이 빛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단다. 용궁을 믿지 않는데 누가 용왕이 있다는 것을 믿어주겠니?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볼품없는 물고기로 변하고 말았지. 그나마 요 며칠 동안 누군가 용왕을 생각해주니 이 정도라도 몸집이 커진 것이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점보다 작았단다. 아마 언젠가는 아주 작아져서 이 용궁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겠지.”

이 말을 듣고 물고기들은 그 멸치처럼 보이는 물고기가 그들이 찾아 헤맨 용왕님이란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허수아비는 용왕님 앞으로 가 옷을 들어 올려 가슴을 보였습니다.

“저는 기쁨도 슬픔도 느낄 수 없는 허수아비예요. 저도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싶어요.”

용왕님께서는 안경을 꺼내어 허수아비의 가슴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음, 섬을 찾아가야 해. 꿈을 잃은 자들의 꿈을 찾아주는 산호섬이 있지. 가슴을 꿈으로 가득 채우면 거기에서 심장이 싹터올 거야. 보름달이 뜨는 밤에 거기 가서 달을 마셔.”

용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저도 나을 수 있는 건가요?”

허수아비가 물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네가 달을 마시고 그 달을 가슴에 품고 잃어버렸던 꿈을 찾는다면 곧 병이 나을 수 있지.”

용왕님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용왕님은 그 섬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허수아비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그 섬은 항상 움직인단다. 항상 같은 곳에 있는 섬이 아니지.”

용왕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허수아비와 고래 그리고 물고기들은 모두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용왕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그 섬은 연어들이 먼 바다에 나갔다가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곳에 있단다. 그 장소는 해마다 변하지만 그 섬은 연어들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면 항상 나타난단다.”

허수아비 일행은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은 희망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허수아비 일행은 서둘러 떠나기로 했습니다. 연어 떼가 멀리 가기 전에 따라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용왕님께서는 허수아비 일행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몸집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허수아비는 허물어져가는 용궁에 안녕을 고하고 다시 고래의 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연어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게 좋겠어.”

고래는 그렇게 말하고는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휘파람소리는 마치 피리소리 같았습니다. 그 소리는 작은 물결을 일으키면서 멀리 멀리 떠났습니다.

“빨리 가자. 연어 떼가 우리를 기다려.”

고래는 힘차게 꼬리를 치며 물위로 올라갔습니다.

 

연어 떼는 허수아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어 떼는 가끔씩 덩치가 큰 고래의 등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산호섬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제 곧 보일거야. 산호섬은 우리 모두가 간절하게 원하면 어느 날 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연어가 고래에게 말했습니다. 연어들은 가다가 가끔씩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우리의 가슴속에는 꿈이 자라나고 있어. 우리는 그 꿈들을 따라가야 하는 거야.”

늙은 연어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연어들과 여행을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긴 여행 때문에 모두 지쳤습니다. 허수아비는 고래 뱃속에서 잠들어있었습니다. 연어들도 지쳐서 모두 잠들었습니다. 모두 잠든 머리위로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보름달은 점점 바다가까이로 다가왔습니다. 고래는 또 꿈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느러미로 귀를 막으려다가 옆에서 자고 있던 연어를 치고 말았습니다.

“아야!”

연어는 몹시 아팠는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서 고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고래마저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앗!”

갑작스런 고래의 비명에 잠들어 있던 허수아비가 깨어났습니다.

“무슨 일 이야?”

허수아비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기! 저기 섬이 있어! 섬!”

이 소리에 주변에 잠들어있던 연어들도 모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연어들은 산호섬이 사라지기 전에 그 섬을 돌아서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연어들은 서둘러 허수아비 일행에게 안녕을 고했습니다. 허수아비도 서둘러야 했습니다. 달이 바로 머리위에 와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래는 산호섬 가에 다다라서 입을 열었습니다. 허수아비는 오랜만에 밟아보는 땅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섬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작 3평정도 되는 아주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산호로 이루어진 섬은 너무 하얗고 아름다웠습니다. 허수아비는 섬의 중앙으로 다가갔습니다. 섬의 중앙에는 아주 작은 연못이 있었습니다. 허수아비가 조심스럽게 연못에 다가갔습니다. 곧이어 기쁨에 넘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연못 속에 달이 있어!”

그 소리를 듣고 물고기들이 섬 주변으로 달려왔습니다. 고래도 물속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습니다. 허수아비는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쟁반만한 연못에는 하늘에 있는 달과 똑같은 크기의 달이 떠있었습니다. 모두들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허수아비는 손 하나 가득 달을 퍼 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달은 허수아비의 손 위에도 떴습니다. 허수아비는 조심스럽게 달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시원한 달이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에 걸렸습니다. 허수아비는 자기 가슴을 보았습니다. 텅 비었던 곳이 점점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아름다운 달빛이 허수아비의 가슴에서 반짝였습니다. 허수아비는 너무나 좋아서 커다란 고래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고래도 미끄러운 지느러미로 허수아비를 안아주었습니다.

“아, 이제 기쁨이 뭔지 알겠어.”

허수아비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두 행복해서 웃었습니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달빛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갔습니다.

 

한편 낡은 용궁 구석에서 잠들었던 용왕님도 갑자기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깨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아주 커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라서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허물어져 가던 벽들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누군가 피리 소리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예전에 어디론가 떠났던 아름다운 열대어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 허수아비도 따뜻한 심장을 얻은 게로군.”

용왕님은 크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달빛이 용궁에도 살며시 내려왔습니다.

 

 

 

<아동문예> 2009년 9/10월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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