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움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아니 계십니다.
물감상자 속의 물감들이 놓아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나에게는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운
색깔들만 가슴에 물들이라고
물감상자 하나만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출처]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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