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차주일
혼잣말 중얼대는 사람이 꽃나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응달에서 양지쪽 꽃 한송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막에 걸려 있는 꽃잎을 제 눈 속으로 넣어야만 하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며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양손을 가슴에 대고
마음에서 어떤 신념이라도 빼내야만 하는 듯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가슴과 양손 사이에
성경만큼 두꺼운 무엇에 마음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내 각막에서도 그는 한없이 애쓰고 있었다
어찌 낱장의 꽃잎으로 마음을 밀어낼 수 있을까
자신을 술회하는 그의 말이 주문처럼 들려왔다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신도였다
한 항공회사 특수화물 배달원으로
한 종합병원 수술실에 누워있는 한 환자에게
한 나라의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의 각막을 배달한 뒤였다
수혈과 장기이식을 거부하는 교리에 따라
가족의 임종까지 지켜본 적 있는 그가
교리에 반하는 행위를 거들고 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제사장이 제단에 바칠 산 심장을 꺼내듯
그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몸서리칠 무렵
꽃나무 가지가 흔들렸고
그의 각막에 걸려 있던 꽃잎이 떨어져 내렸다
꽃잎은 잠에서 깬 아기의 눈동자처럼 사방을 살폈다
숲길을 걸을 때와 같은 가장 느린 속도로
흔들리며, 멈추기도 하며, 뒤돌아보듯 위로 솟기도 하며
금단의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죗값으로 모든 꽃은 져버리겠지
그가 혼잣말로 마음 빠져나온 자리를 봉인했다
꽃잎이 달라붙은 음지까지 양지가 끌려왔다
그가 양지에 첫걸음을 내딛자 내 각막이 움찔거렸다
그가 내마음을 밀어내며 낙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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