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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기>낙화 / 차주일시집[냄새의소유권중에서]

by 정령시인 2011. 4. 27.

낙화/차주일

 

혼잣말 중얼대는 사람이 꽃나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응달에서 양지쪽 꽃 한송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막에 걸려 있는 꽃잎을 제 눈 속으로 넣어야만 하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며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양손을 가슴에 대고

마음에서 어떤 신념이라도 빼내야만 하는 듯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가슴과 양손 사이에

성경만큼 두꺼운 무엇에 마음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내 각막에서도 그는 한없이 애쓰고 있었다

어찌 낱장의 꽃잎으로 마음을 밀어낼 수 있을까

자신을 술회하는 그의 말이 주문처럼 들려왔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신도였다

한 항공회사 특수화물 배달원으로

한 종합병원 수술실에 누워있는 한 환자에게

한 나라의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의 각막을 배달한 뒤였다

수혈과 장기이식을 거부하는 교리에 따라

가족의 임종까지 지켜본 적 있는 그가

교리에 반하는 행위를 거들고 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제사장이 제단에 바칠 산 심장을 꺼내듯

그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몸서리칠 무렵

꽃나무 가지가 흔들렸고

그의 각막에 걸려 있던 꽃잎이 떨어져 내렸다

꽃잎은 잠에서 깬 아기의 눈동자처럼 사방을 살폈다

숲길을 걸을 때와 같은 가장 느린 속도로

흔들리며, 멈추기도 하며, 뒤돌아보듯 위로 솟기도 하며

금단의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죗값으로 모든 꽃은 져버리겠지

그가 혼잣말로 마음 빠져나온 자리를 봉인했다

꽃잎이 달라붙은 음지까지 양지가 끌려왔다

그가 양지에 첫걸음을 내딛자 내 각막이 움찔거렸다

그가 내마음을 밀어내며 낙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