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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읽기/이외현/생명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성性의 노래-정령의 시 살구꽃외4편

by 정령시인 2015. 10. 21.

제 8호(2015 여름)

 

근작읽기/이외현/생명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성性의 노래

 

이외현

생명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성의 노래

 

 

 

 

정령 시인은 일상의 대화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맛깔 나는 입담을 가졌다. 특히,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성적인 우스갯소리를 이끌어갈 때는 듣는 이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킨다. 헤브록 엘리스Havelock Ellis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근본적인 뿌리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것과 배고픔, 사랑 그리고 성이다라고 하였다. 정령 시인의 시 곳곳에는 특유의 관능적 요소나 장치, 성의 뿌리가 들어있다. 때로는 꽃에 비유하여, 때로는 전설이나 이야기의 형태로, 우주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 생명과 성을 노래한다. 그런 면에서, 정령 시인은 겹겹이 싸인 우주의 원리를 한 올 한 올 풀어 벗겨낼 줄 아는 시인이다. 한편으로는, 옛날 민화나 만담을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정령 시인은 살아온 삶의 질곡이나 애환을 긍정적으로 풀어내는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쳐 우주의 원리, 생명, 성을 따뜻하게 벗겨내는 시선, 풍자와 해학의 시선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그랑가그랑 기침 소리 문풍지를 흔들면요

대롱대롱 고드름이 놀라 엉겁결에 툭 떨어지고요

댓돌에 누워 있던 누렁이 벌떡 일어나서는요,

고드름 물다가 소스라쳐 부엌으로 달려가서는요.

부뚜막 고무신짝 물고 와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대는데요

방문이 열리고 서리 앉은 머리는요,

옥색대님 여물게 묶은 발목, 문지방 넘어와 고무신 신고요

오동나무 반지르르한 지팡이 땅을 탁탁 짚으면요

누렁이 꼬리 흔들며 아지랑이 피는 들길 먼저 달려가고요

누렁이 달려가는 길목마다 지팡이 콕콕 찍으면요

메마른 골짜기 얼었던 물이 졸졸졸 흐르고요

겉껍질 푸석거리던 앙상한 가지도 빠꼼히 잎을 피우고요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면 봄바람 살랑살랑 봉긋한 꽃망울,

살살 살구꽃이 저렇게 벙글어지는데요.

사뿐사뿐 살랑대는 치맛자락 지팡이로 톡톡 건들면요

귓불 달아오른 연분홍 잎사귀 살짝 놀라 떠는 데요

이봐, 처녀! 같이 가!

-살구꽃전문

 

 

살구꽃, 호박꽃, 밤꽃, 풀꽃, 별꽃, 배꽃, 복숭아꽃 등, 유독 꽃이 많이 등장한다. 집 주변에서 보았던 꽃이나, 들이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소재가 되고 있다. “기침 소리고드름이 놀라떨어지고 누렁이가 일어나 고드름 물다가다시 부엌으로 달려가서부뚜막에 있는 고무신짝 물고 와주인을 기다리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모습이 연쇄적으로 물 흐르듯이 연결된다. 눈길이 한 행씩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연분홍 잎사귀 살짝 떠는살구꽃 앞에 까지 와있다. 각 행마다 풍경을 하나씩 스케치하는 기분이다. 어느덧, 구도가 잘 잡힌 울긋불긋한 수채화 한 폭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살구꽃 수채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귓불이 달아오른다.

 

 

햇살 좋은 담장 너머로 선발대회가 한창이다.

과시하려는 몸사위로 매혹적인 에스라인을 뽐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노란 별꽃들이 순번대로 피어난다

넉넉한 플레어스커트를 착용할 것과 까실까실하고 날카로운 살갗으로 호리호리한 허리를 감싸 안아줄 것, 지조 있는 품위와 후덕한 인상으로 관대하게 웃어줄 것과, 매일 한 번은 벌에게 꽃가루를 내어 주고, 항상 의리와 정으로 돈독함을 유지할 것 그리고, 아낌없이 내어주고 용기 있게 죽을 수 있는 힘이 선발조건이란다.

서 있어야할 틈 비집고함께 가야할 곁 비비며 더듬이처럼 덩굴손들이 앞장서 간다

 

비가 촉촉이 내린다.

노란 우산을 받쳐 든 소녀가 담장 곁을 막 나온다.

-호박꽃전문

 

 

호박은 박과 호박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채소다. 호박은 커다란 잎이 거친 털로 덮여 있고, 수꽃과 암꽃이 따로 핀다. 수꽃에만 있는 화분을 벌이 암꽃에 옮기면 수분이 되고, 수분된 암꽃에서 호박이 자란다. 암꽃 하나하나가 단 하루만 피어 수분할 수 있는데다가 호박꽃 대부분이 수꽃이기 때문에 실제로 호박을 생성하는 꽃은 몇 송이밖에 없다. 우리는 못생긴 여자를 호박꽃에 비유한다. 그러나 정령 시인은 호박꽃을 노란 별꽃으로 치환하며 호박꽃 선발대회를 열었다. 대회 조건이 꽃가루받이에 적합하게 속을 활짝 열어 보일 수 있는 넉넉한 플레어스커트를 착용할 것과더불어 벌에게 꽃가루를 내어주고 용기 있게 죽을 수 있는 힘이 대회 선발조건이라고 한다. , 식물은 종족 번성의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 띄는 모습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유혹하여 이 일에 집중한다. 호박꽃도 이런 과정을 위해 호박을 생산한다. 앞장선 덩굴손의 뒤를 따라 비가 촉촉이내리는 날, “노란 우산을 받쳐 든 소녀가 담장 곁을나온다. 곧이어, 벌에게 소년의 꽃가루를 받아 호박 아이를 잉태할 것이다.

 

 

덜커덩거리던 버스가 밤골에 선다.

밤꽃 향기 들이마시며 기지개 한 번 켠다.

알사탕 문 아이가

밤꽃잎 달랑달랑 떨어지는 길가에 쉬를 하다가,

버스가 덜덜덜 서두르자

고추를 털다 말고 버스에 얼른 오른다.

밤톨 같은 아이의 콧물에서 밤꽃 향기가 난다.

 

 

아랫도리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밤꽃 몇 잎이

훌훌 날아 옆자리 노인의 팔에 살짝 기댄다.

노인이 지팡이를 콕콕 찍는다.

버스 안은 밤꽃 향기로 가득하다.

차창으로 밀려드는 바람이 밤꽃잎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밤꽃잎들 사르르 온몸 흔들며 꽃비로 흩날리다가,

뒷자리 새댁의 치마폭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새댁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낙들이 피실피실 웃는다.

풀밭에서 있었던 꽃잠이야기 풀어진다.

풀꽃들도 낯빛을 붉히더란다.

-밤골 버스 안의 밤꽃 향기전문

 

 

밤골 버스 안의 밤꽃 향기라는 제목에서부터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시골버스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시골버스 안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등장한다. 아이, 새댁, 아낙, 노인, 시에 등장하지 않은 운전기사까지 말이다. 이 버스는 밤골-밤꽃향기-밤꽃잎-밤톨로 이어지며 밤꽃비새댁의 치마폭에 내려앉더니 꽃잠이야기까지 연결된다. 일련의 밤 행렬이 재미있다. 꽃잠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1) 깊이 든 잠과 2) 결혼한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다. 여기서는 풀꽃들도 낯빛을 붉히는 것으로 보아 2)의 뜻으로 쓰여 진 것으로 보인다.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온다. 빨간색 스카프가 바람에 나부낀다. 그녀가 난간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운다. 그가 달려온다. 눈물을 닦아주며 웃는다.

가방을 든다. 기차가 선다. 밤꽃 흐드러지는 봄밤이다. 가뭇한 그림자가 들창에 다가선다. 너울너울 춤을 춘다. 두 그림자 달구경한다.

풀이 누워 잔다. 꽃잎 하르르 진다. 그가 가방을 든다. 옷깃을 세우고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바람이 거세진다. 그녀가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눈이 온다. 눈밭에 눈사람 두 개 덩그렇다. 하얗게 쌓여가는 눈, 책을 덮는다.

-19금 소설전문

 

 

19금은 야한 자료의 총칭이다. 어원은 19이며 19세 미만은 열람을 자제하라는 뜻이었으나 야한 자료임을 강조하는 뜻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성적 호기심이 가득한 사춘기 시절 야한 소설이나 야한 잡지 한 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누가 볼까봐 방문을 걸어잠그고 이불 속에서 군침 흘리며 삼류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정령의 시19금 소설1960~70년대의 멜로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이 남녀는 집안의 반대가 극심하였던지, 불륜이었던지 간에, 사랑하지만 불가피하게 헤어져야하는 운명이었나 보다. 그러나 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밤꽃 흐드러지는 봄밤두 그림자달구경을 하다가 역사가 이루어졌다. 구경하던 풀이 누워 잔다. 꽃잎 하르르 진다”. 둘은 눈사람망부석이 될 만큼, 죽을 만큼, 지독한 사랑을 한다. 하얀 눈은 계속 내려 쌓이고, 소설은 끝이 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19금 멜로 소설 한 편이다.

 

 

덮으면 감쪽같이 가려진다는, 따뜻하기로는 어머니 가슴도 대신할 수 있다는, 감긴다는 상상만으로 이야기하면 남자 품에 안기다가 유두가 짜릿하게 날서기도 한다는 비밀이 숨어 있는, 솜이 틀어지고 풀 먹인 광목이 누벼지고 홀쳐지는 그 어둠 속에서 아궁이엔 장작불이 타고 굴뚝엔 저녁연기 모락모락, 구들장은 달아오르고. 매일 장작불은 타오르고 밥 짓는 연기는 모락모락, 해가 반짝 고개 들고 나오면 마당엔 배꽃이 피고 복숭아꽃이 피고 강아지가 새끼를 낳고 코흘리개 오줌싸개의 누런 지도가 마르고 다듬이돌 위에서 또드닥 또드닥, 지린내가 풀풀 나는 이불 위에서 아이가 자라고 고추가 여물고 어화둥둥 알몸이 뒹굴고. 말리고 밟고 두드리고 다지고 덮고 감싸고 공들여 쌓은 만리장성, 자자 과거사의 실천론과 가려야할 것 제쳐두고 덮어야할 것 포개어버리는 비밀스런 성역들이 맨몸으로 활개 치는 숲속의 화원, 배꽃 밤꽃이 피었다가 사라진 잘자 현대사의 이불기술론. 아무튼 펼쳐야 푼다.

-이불론전문

 

 

필자는 매일 베고 자는 베개와 이불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다. 정령 시인의 이불론을 읽고 나서야 이불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옛날 이불은 솜이 틀어지고 풀 먹인 광목이 누벼지고 홀쳐지는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런 이불 위에서 오줌싸개의 누런 지도가 말라가기도 하고 지린내가 풀풀 나는 이불 위에서 아기가 자라고더불어 이불 안에서 알몸이 뒹굴어, 지린내 풍기는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아이가 생겼다. 그리고 방에는 구들장이 식지 말라고 늘 방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 발을 이불에 묻으며 추위를 달랬었다. 구들장에 데워진 이불은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따뜻하여 낮잠에 들곤 하였다. 책을 읽을 때도 숙제를 할 때도 이불을 엉덩이까지 걸치고 몸의 일부처럼 끌어당겨 덮었다. 예전에 비해 오늘날의 이불은 세탁도 쉽고 가볍지만 대부분 침대 위에 깔아놓고 잠잘 때만 사용한다. 이불의 기능이 단순해졌다. 하지만, 예전에는 좀 달랐다. 육아도, 사랑도, 잠도, 형제애도, 연애도, 책보는 것도, 이불 속에서 이루어졌다. 정령 시인의 이불론을 읽으며 이불의 변천사를 살펴보게 된다. ‘이불론을 읽다보니, 친구들과 아랫목에서 이불 덮고 놀던 때로 돌아간다. 그 이불 속에서 마음에 둔 이성 친구와 살짝 발이 스치기라도 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령 시인의 시적 발상은 성적 에너지에서 발화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한다. 그녀는 이불론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덮어주는 따뜻하고 넓은 가슴을 가졌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의 시라서 정령의 시는 웃음이 있고, 재미가 있고, 설렘이 있고, 환상이 있고, 때론 눈물이 가득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