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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이詩발표♬/[♡] 계간문예지

아라문학(2016여름호)-신작특선/정령

by 정령시인 2016. 7. 25.

 

 

<신작특선/정령>


사거리 편의점 앞/

여기는 당신이 자주 드나드는 사거리 편의점 앞입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면 배가 간질거립니다

간질거리는 문장으로는 성이 안차 얼른 오라고 손을 흔듭니다

어깨가 축 처진 당신이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직장을 잃었다고 할 때도 등만 대주었습니다

당신이 직장은 또 구하면 된다고 말할 때도 고개만 끄덕여 주었습니다

이사를 결정한 당신이 떠난다고 말해주었을 때도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편의점 앞은 당신이 던진 빈말들로 너덜거립니다

빈말들은 여전히 들어오고 나가고 다시 나가고 들어오고 무심한 발자국에 너덜대는 소식들이 성성합니다

당신이 떠나고 난 자리에 비둘기 한 쌍 날아오릅니다

 

 

아버지/

부목을 댄다. 부목을 댄 손과 발들은 깁스를 하고 잘린 팔과 다리에 어슷하게 맞춰져 줄을 달고 한철을 보낸다. 분재된 팔이 무쇠팔이 되도록, 분재된 다리가 무쇠다리가 되도록, 동해 바닷가에 서 있던 소나무가 태평양을 끌고 집안으로 오기까지 한라산의 소나무도 말없이 돌하르방처럼 굳은 얼굴로 지켜보곤 했다. 살 것은 살고 죽은 것은 다시 잘라내고 철심을 박아 고정한다. 탄탄한 소나무의 곁가지로 부목을 다시 세워 가뭇없이 산 것이 줄을 달고 회춘을 꿈꾸는 팔목과 손목이다. 소나무가 끌고 온 태평양을 줄줄 마시던 배가 영락없이 한라산의 비로봉을 꿈꿀 때도 허튼소리 마라 했다. 퉁퉁 불어나와 다시 관을 넣어 물을 빼내고 심폐기능 회복을 위하여 심장을 이식한다. 요도와 요관을 철철 흐르게 치료하고 동해바다의 기를 받아 맥을 이어 온 내분비 순환기 소화기 검사를 받고 쑥쑥 자란다. 피부종양 지루각화증 연성섬유종 검사를 하고 강박증 클리닉 수면장애 스트레스장애진단을 받고 격리되어 집중치료를 받는다. 늘어진 소나무 가지마다 진료과목의 항목이 나풀거리고 처방된 약들이 홀씨마냥 나부끼는 동해바닷가 어디쯤 소나무의 생가지를 구해서 돌아와 이제는 가제트 만능 손과 발을 만들어야하는, 여기는 종합병원.

 

 

*/

입술을 모은다

뒤꿈치를 살짝 든다

두 손을 모으고 아랫배에 힘을 준다

어깨를 모으고 허리를 고정한다

별나라에 사는 나팔수의 피리소리다

머리칼이 쭈삣 서고 눈은 허공을 떠돈다

허공을 떠도는 씨앗들이 미리내 강가에 노랗게 피어난다

산천이 들썩이고 지구가 들썩이고 우주의 별들이 한바탕 뒤집어지는 지경이면 날아가던 새도 날개를 접고 솟구치던 물길도 잠잠해진다 노랗던 꽃잎도 피리소리에 고개를 떨구고 버스도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팔팔하던 열정도 길바닥에 주저앉고 꽃을 꽃이라 말하면 입술이 트고 수천억을 삼킨 고래는 아직도 배가 고파 허덕인다 하나같이 소리를 자르고 의미를 자르고 언어를 자르고 글자를 자르는데, 하나 같이 귀도 닫고 눈도 닫고 입도 닫고 코도 닫는다.

입술을 모으고 주먹을 쥐고 외쳐야 한다

들으라고 들어보라고

땅이 꺼지고 비행기가 추락한다

우박이 떨어지고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다

빙하가 녹고 물개가 청새리를 잡아먹는데 못 알아 듣는다

우주가 듣고 지구가 듣고 태양이 듣고 달이 듣고 별이 듣고 나무가 듣고 잎을 피우는데.

 

* : 경상도 사투리로 그만 해, 하지 마의 뜻.

 

 

 

누에/

길을 걸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끊을 수 없는 허기가 즐비한 먹거리 골목으로 발부리를 돌리게 해요. 오 신이시여 내 몸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내 마음을 감싸주시어 허기의 목마름을 쫓아 주시옵소서. 허기로 몸 속 깊은 욕망을 감추려고 애를 써요. 통통해진 몸, 하다말다를 반복했던 그런 날들의 아픈 과거 하나 잡아 돌려요. 돌돌돌 몸의 곡선이 햇빛에 얼비쳐요. 뽀얀 살결 매끈한 다리 아래 발목이 문턱을 넘어요. 한 올 한 올 슬픈 현실을 당겨요. 줄줄 물길이 발밑에서 뭉개져요. 굳은 살 박힌 뒤꿈치 갈라진 틈에 뭉개진 물이 스며들어요. 발끝에서 스민 물길이 발목을 타고 허리를 감고 올라가요. 머리칼을 타고 콧잔등으로 턱으로 굴곡 있는 몸을 어루만지며 지나가요. 거울 속에서 눈물로 짠 옷을 입어요.

다시 길을 나서는 어깨 위에 바람이 앉아 속삭여요. 간절하게 빌어요. 금식기도를 해요. 백일치성을 드려요. 다시 반복 되는 일상. 또 다른 허기가 꿈틀거려요.

 

 

 

진딧물과 개미/

저는 지금 장미꽃 곱게 띄운 욕조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중입니다. 달콤한 와인도 한 잔 들고 말이지요. 반 쯤 걸친 다리의 종아리는 신경 써서 햇빛에 그을리는 중입니다. 매끄럽고 윤기 나도록 향료와 올리브 오일도 바르고요. 바람이 내 머리를 한 올 한 올 쓰다듬고 있어요. 곧 세계일주를 마친 그가 도착할 거에요. 늘 하던 것처럼 그의 기타랑 그가 좋아하는 와인잔도 꺼내놓아야지요. 밀려오는 바람에 꽃잎이 나부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그가 몰고 온 바닷바람 냄새가 나요. 가까이 다가와 그을린 얼굴로 웃으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에요. 당신도 한 잔 하실 거죠?


<시작메모-정령>

두번째 시집을 내게되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도움주신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먼저 전한다. 이번 시집을 만들면서 다른 어느때보다 엄마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는 내가 감기걸렸을 때나 배앓이를 할 때마다 배를 쓸어주면서 혹은 머리에 수건을 얹어 주면서 얼른 탈탈 털고 일어나야지하기도 했고, 엄마손이약손이다하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사경을 헤맬 때 멀건 미음을 떠먹여주시곤 했는데, 그것은 세상에도 없는 명약이었다. 엄마가 실행한 그 처방은 때때로 나이를 먹어서도 약효를 발휘할 때가 있었는데, 아이가 아파 병원을 들락거릴 때나 부부간의 다툼이 생길 때에도 영락없이 엄마는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지금은,

누구슈하고 잘 모른다면서도 집이가 참 잘해줘서 항상 고맙쥬하는 말에는 그저 웃음만 나오고, 그 어떤 약보다 힘이 나게 하는 효능을 낸다. 그런 엄마가 있기에 지금껏 내가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준 것 같다. 이번 두번 째 시집에는 누구나 겪었을만한 소소한 동심을 그려넣기도 했는데 그것은 엄마의 그리움에서 나온 힘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의 그 어떤 명약보다도 훌륭한 엄마에게 시집을 드리며 이게 집이가 만든거유 이런 훌륭한 걸 내가 받아도 될까 모르것네유

하는 엄마가 내게는 시를 쓰게하는 원동력이고 참 의미가 되어준다. 그런 엄마가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