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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대하여

by 정령시인 2017. 3. 28.

판소리란? 말의 뜻

 

  창우(倡優:판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가수)가 부르는 서사적인 노래를 한문으로는 잡가(雜歌)·본사가·창가·극가 등으로 치고 있으나 본디 우리 말로는 판소리라 일러 왔다. 판소리란 판놀음으로 연행되는 소리라는 뜻이다. 판놀음은 넓은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벌린다’하여 놀이의 구색을 갖추고, ‘판을 짠다’하여 놀이 순서를 제대로 짜서 처음부터 끝가지 제대로 연행하는 놀음을 가리키는 바 판놀음으로 타는 줄타기는 판줄이라 하고, 판놀음으로 치는 농악은 판굿이라 한다. 그렇듯이 판놀음으로 벌이는 소리를 판소리라 하는 것이니 판소리란 이름이 본디부터 있었던 이름이라 하겠다.


 판소리의 역사

 

  판소리의 형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7세기경 남도 지방엣 서민 청중들을 대상으로 서서히 부상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적어도 18세기말까지는 판소리가 제 모습을 완전하게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소리꾼은 하한담·최선달·우춘대 등이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세기 전반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19세기 후반기를 ‘후기 8명창시대’라고 한다. 권삼득·황해천·송홍록·방만춘·염계달·모홍갑·김계철·고소관·신만엽·송광록·주덕기 등의 8명창들은 각기 특색 있는 창법과 선율을 개발하여 양반들의 감상과 미의식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려 했으며, 각 지역의 민요 선율을 판소리에 담아냄으로써 판소리의 표현력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박유전·박만순·이날치·김세종·송우룡·정창업·정춘풍·장자백 등 후기 8명창들은 전기 8명창들의 음악적 업적을 계승하고 이를 다듬어 다양한 더늠(長短)을 창출했다. 이 시기에 박유전에 의해 보다 서민적인 감성에 충실한 서편제 소리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판소리는 더욱 다양하고 강한 흥행성을 띤 예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 판소리는 왕실에까지 침투하게 되었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많은 창우들은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청중은 양반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서민의식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덕분에 판소리는 사설·음악·무대 등에서 진경을 이루었으나 민중적 현실인식과 반봉건적 예술적 심화나 문제의식은 일정하게 수정되어 얼마 간은 봉건적 의식의 개입가지도 허용하는 굴절을 겪었다.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는 중인 출신으로서 판소리 광대를 적극 후원하면서, 양반들의 미의식에 걸 맞는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 판소리 6마당의 사설집과 성조가·광대가 등의 창작 단가들이 만들어졌다.

 

판소리의 유파(제(制))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적 특성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를 제라고 한다. 제는 현존하는 실체라기보다는 다양한 판소리를 구분하여 유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관념적으로 구성되니 참조의 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에는 동편제(東便制),서편제(西便制),중고제(中高制)가 있다.

 

판소리의 장단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에는 진양,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엇중모리 이렇게 일곱 가지가 있다.

 

중모리

  판소리·산조에 쓰이는 조금 느린 장단으로 12박이다. 중모리는 서술적인 대목이나 서정적인 대목에서 쓰인다. 중모리 장단으로 부르는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의 쑥대머리,‘흥보가’의 가난타령 등이 있다.


    중중모리

  판소리·산조에 쓰이는 중모리 장단보다 조금 빠른 장단이다. 중중모리는 흥겨운 대목에 많이 쓰이고, 때로는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대목에 쓰인다. 유명한 대목으로는 ‘춘향가’의 기산영수·자진사랑가·춘향 어머니 나온다·군로사령·어사와 장모,‘심청가’의 심봉사 통곡·아기 어르는 데·봉사들 춤추는 데,‘흥보가’의 겨울동자 갈거자·제비 노정기·제비 후리러 나가는데,‘수궁가’의 토끼화상·가자 어서가·고고처변 등이 있다.


    자진모리

  판소리·산조에 쓰이는 빠른 장단으로 매우 빠른 12박이나,실제로는 4박을 친다. 자진모리는 어느 것을 길게 나열하거나 극적인 긴박한 대목에 쓰인다. 자진모리 장단으로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의 나귀안상·술상 차리는 데·신연맞이·어사 출도,‘심청가’의 삯바느질·심봉사 물에 빠지는 데·인당수 바람 부는 데,‘흥보가’의 놀보심술,‘적벽가’의 자룡이 활 쏘는 데·적벽가 불지르는 데이다.


    휘모리

  판소리·산조에 쓰이는 4박의 가장 빠른 장단이다. 휘모리 장단은 매우 분주한 대목에서 쓰인다. ‘춘향가’의 신연맞이 끝에,‘흥보가’의 흥보 박 타는 데 등이 있다. 


    엇모리

  판소리·산조에서 쓰이는 장단의 하나로 빠른 3박과 2박이 혼합된 박자로 10박이다. 엇모리는 중·도사·범·장수 등 특수 인물이 나오는 대목에서 쓰이며, 유명한 대목은 ‘심청가’의 중 내려오는 데,‘흥보가’의 중 내려오는데,‘적벽가’의 자룡이 나오는데,‘수궁가’의 도사 나오는 데이다.

    엇중모리

  판소리에서 쓰이는 장단으로 보통 빠르기의 6박이다. 엇중모리는 윗사람이 사연을 아뢰는 대목이다. 판소리의 맨 끝 대목에 쓰인다. 유명한 대목은 ‘춘향가’의 「화동성참판 영감께서」,‘수궁가’의 「이내 근본을 들어라」이다.

 

  판소리의 종류

 

판소리가 하나의 민속음악으로서의 내용과 형식을 갖추고 완성의 단계에 이른 시기는 대체로 조선왕조 숙종로부터 영조까지의 시기라 본다. 또한 판소리의 전성시기는 태개 정조로부터 철종시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조선 순조 때 송만재라는 선비가 쓴 「관우회」라는 글에는 창우의 판놀음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창우들이 줄을 타는 것이며 땅재주 하는 것이며 죽방을 하는 것도 보이고, 소리하는 가객이 목을 풀기 위해 단가를 부르고 나서 판소리를 부르는 것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이어서 판소리에는 열두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이며 그 내용을 보면 「춘향가」,「심청가」,「홍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타령」,「옹고집타령」,「무숙이타령」,「강릉매화타령」,「장끼타령」,「배비장타령」,「가짜신선타령」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에는 「춘향가」,「심청가」,「홍보가」,「수궁가」,「적벽가」 만이 불려지고 있다.


춘향가

12마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리이며, 많은 이본창본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열녀춘향수절가」, 신재효 작 「춘향가」, 정북평 창본인 「옥중가」,이선유의 「춘향가」,이해조의 「옥중화」 등이 있다. 춘향가의 주제는 사랑과 자유의 숭고함이며, 많은 설화를 소재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 놓았다.

 

심청가

이 소리 역시 「춘향가」와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순조 때의 명창인 박만춘이 「심청가」를 윤색·개작하였다는 「조선창극사」의 기술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심청가」는 효가 그 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유·불교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대표적인 창본으로는 완판,경판,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


흥보가

이 소리 역시 「춘향가」·「심청가」와 거의 같은 시대의 것이거나 , 그보다 앞섯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8명창 중에 가장 선배인 영조·정조 때의 권삼득의 「더늠」이 「홍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었다는 점이 뒷받침 해 준다. 「홍보가」의 주제는 형제간의 우애이며, 실학의 영향을 입은 근대적 경제사상이 강조되었다. 경판, 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대표적 창본이다.


수궁가(토별가)

영조 30년(1754) 이전의 판소리이다. 그 내용은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고자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으로, 충이 일종의 테마인 듯하면서도 문무의 상쟁 속에 암매(暗昧)한 지도자를 풍자한 작품이다. 대표적 창본으로는 완판본,신재효본,이선유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