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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읽기-백인덕[짐작의 우주]

by 정령시인 2018. 2. 19.

 

짐작의우주-4

ㅡ꽃의 비밀

 

증오의 벼랑에 달리아가 폈다

겨우 몇 송이로도 세상

아침이 붉다.

붉은 이 배치는 모순이거나 왜곡.

갓길의 달리아를 누가 벼랑에 옮겨 놨을까?

극점極點에 피는 꽃은 없다.

 

화이트아웃*의 아침.

삶에도 위상학이 적용될 수 있을까?

 

간밤 노트에 적혀 있는 이상한 문자들,

해협의 독수리가 발아래 움켜쥔 어린 양을 동정하지 않듯

벼랑으로 몰아 수없이 머리 찍게 하는 너울이 어린 물개를

염려하지 않듯, 담장 위 민들레를 아직

차가운 봄바람이 아랑곳 하지 않듯,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ㅡ불운은 예정된 것,

무릇 생명이란 고단한 머리를 끄덕이며

제 그림자를 길게 늘이면 그만, 그만이다.

 

자기란 얼마나 좋은 질료인가.

명예와 추락을 한 그릇에서 빚고

사랑과 배신을 같은 눈길에 담을 수 있으니

아침에 붉은 꽃이 아니다.

통점通點에서 터져 나오는 비탄悲嘆의. 밀도.

누가 갓길의 달리아를 벼랑에 옮겨 놨을까?

 

 

*화이트아웃whiteout : 눈이나 모래 등으로 인해 시야가 심하게 제약되는 날씨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