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쓰는 단양연가‧1
―뒷산 창꽃
가느다란 고갯길을 넘어가요.
풀밭 위에 앉아볼래요.
예쁜 꽃이 여기도 핀다고 말해요.
하늘 저편엔 누가 살고 무엇이 있을까를 말해요.
수술싸움으로 내기를 해볼래요.
꽃이 쌓일수록 귀가 빨개져요.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네요.
손톱속의 하얀 반달이 동그랗게 보여요.
창꽃이 실바람에 살살 몸을 흔들고 있어요.
우린 아무 짓도 안했어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2
―미루나무 가로수길
들키지 않으려면 뛰어요.
가로수 그림자 안에 숨어야 해요.
오가며 슬몃슬몃 보았지요.
쭉쭉 뻗은 미루나무가 두 팔로 안으면 따스해요.
그늘에 숨어서 기다려요.
보여요보여요. 여기로 오는 게 보여요.
뛰어가요. 고개를 내민 얼굴에 꽃이 피는 줄도 몰랐어요.
영락없이 구름은 가지 끝에 걸터앉아 깔깔거려요.
가로수가 놀리며 옆구리를 툭툭 쳐요.
또랑에 돌돌거리며 떠가는 실바람도 실실 웃으며 보고요.
그냥 뛰기만 했는 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3
―또랑 속 개구리알
아름드리 미루나무 아래 또랑이 흘러요.
불쑥 개구리알을 내밀어요.
손이 닿으니 구름이 뭉글뭉글
깜짝 놀란 미루나무도 왈랑왈랑
또랑물은 잘잘잘 웃으며 흘러가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4
―징검다리
다리춤을 걷어 올리고 첨벙첨벙 걸어가요.
햇볕이 따가운 날은 금방 햇볕냄새가 나요.
옷이 젖어도 좋아요. 등에 업히는 날은.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잠기면요.
혼자 건너가다 물에 빠져요.
그 순간 물길을 걸어와 일으켜주면 가슴이 벌떡거려요.
업혀 건너는데 벌떡거리는 가슴이 들킬까봐 숨을 죽여요.
이대로 징검다리가 하늘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면서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5
―고무신
장난감 대신 자동차로 뒤집고 구기고 접고 놀아요.
찰진 고무를 바위에 마구마구 비벼대다가 문질러요.
고무신이 닳아서 버려야 해요.
야단은 듣지만 곧 새로 나온 신발을 사줄지 몰라요.
새 신발을 신으면 모두들 부러워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시장가는 날까지는 헐거운 코고무신도 마다하지 않고요.
냄새 나는 검정고무신도 신문지를 깔고 신어요.
신데렐라를 꿈꾸며 댓돌을 보았어요.
타이어조각으로 덧댄 자국이 선명한 고무신을요.
누덕누덕 고무신을, 담 너머에서 접시꽃이 보고 웃어요.
개울가에서 배처럼 동그랗게 말아 놀다가 띄워 보내요.
업혔던 기억이 나서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6
―개울
선녀와 목동이 처음 만난 곳이 여기였다고들 하지요.
구름 속에 달이 숨어 잘 적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요.
천지에 많고 많은 목동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몰래 개울가에서 선녀를 기다려요.
분명한 굴곡들이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요.
서서히 궁금해지는 달도 고개를 내밀고 보아요.
아슬아슬한 그림들 분명 선녀가 맞아요.
목동이 개울로 뛰어들어요.
물결이 춤을 추는 개울 속에 달도 별도 숨을 죽여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7
―아이스케키*
돌팔매로 얼음을 깨고 꽁꽁 언 손을 비벼가며 빨래를 해요.
궁둥이가 들썩이며 빨래를 빨아요
꽃잎을 던져주면 가슴이 두방망이질 쳐요.
또아리 머리에 빨랫감을 이고 갈 때는 더
궁둥이가 씰룩씰룩 빨리 걸어요.
웬 놈이 후다닥 아이스케키―, 하고 뛰어요.
귓불이 달아오르고 콧구멍이 벌름거려요.
*아이스케키:어린 사내아이들이 장난으로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걷어올리며 외치는 말이며 그런 장난을 일컫는 말.
몰래 쓰는 단양연가‧8
―빨랫줄
빨래를 너는데
복숭아나무도 이파리를 널어요.
노랑나비가 숨바꼭질 하느라
눈알을 뱅뱅 돌리면
복숭아꽃이 놀라 벙그러지고
복숭아 붉은 꽃잎 나풀나풀
빨래에 내려앉으면
노랑나비 빨랫줄에서
쪽쪽 술래를 잡아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9
―술래잡기
빙빙 도는 운동장 그늘에 한창이어요.
송충이들이 떨어져도 가만히 숨을 죽여요.
술래가 나뭇잎을 날려요.
꼬물거리는 그림자 보고 마구 흩어져 도망을 가요.
꽈당 눈을 떠보니 마주 닿았고요.
놀라 일어서는데 나뭇잎이 합창을 해요.
얼레리꼴레리.
송충이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워요.
나뭇잎이 연신 떠들어요.
얼레리꼴레리.
몰래 쓰는 단양연가‧10
―두레박 우물
달빛이 하얗게 흐르는 밤 앵두나무 뒤에 숨었지요.
딱 이맘때면 우물 속 요정이 두레박을 타고 우물 밖으로 나와 목욕을 하고 간대요.
목욕하던 요정이 물 길러 온 아가씨와 신랑각시가 되어 응응응 재미나게 살았다는 전설을 들었어요.
두레박을 우물에 던져놓고 기다려요.
잘람잘람 우물 안 달빛이 흔들려요.
푸르르 물결이 일렁거려요.
요정이 두레박을 타고 올라와요.
우물 밖으로 나와 어푸어푸 물을 뿌려요.
두레박을 감추고 앵두 몇 알 따다가 손에 쥐어주어요.
별빛 같은 두 눈이 빛나요.
앵두 알이 포개어지면 두레박 전설이 우물가로 퍼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1
―성황당 나무
오색 천들이 바람에 나부껴요. 나부끼는 천들을 색깔마다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매일매일 빌어요. 짝꿍하게 해주세요. 빨간색 천을 떼어내요.
빨갛고파랗고노랗고하얗고까맣고.
달려가는 길이 색깔마다 변해요.
소원을 말하라고 천들이 흔들거려요.
이놈 겁쟁이군 하는 소리로 천들이 나부껴요. 매일매일 절을 해요. 일등하게 해주세요. 파란색 천을 뜯어요.
빨갛고파랗고노랗고하얗고까맣고.
천들이 저마다 떼어가라고 떠들어요. 딸랑이도 떠들어요. 북소리도 덩달아 떠들어요. 딸랑딸랑 둥둥둥 매일매일 천들이 나부껴요.
천들이 떠들어요. 소원을 빌라고요.
빨갛고파랗고노랗고하얗고까맣고.
몰래 쓰는 단양연가‧12
―물레방앗간
떡쌀을 빻으러 가요.
쿵덕쿵 공이가 떡쌀 빻는걸 보려고요.
쿵덕쿵 박자에 맞춰 쌀을 고르고요.
쿵덕쿵 방아를 잡아요.
쿵덕쿵 소리에
얼굴에서는 꽃방아를 찧고요.
방앗간에는 꽃이 가득 피어요.
울긋불긋 꽃 한 다발을 움켜지고요.
쿵덕쿵쿵덕쿵 심장도 덩달아 찧고요.
쿵덕쿵쿵덕쿵 그냥 잡고만 있었는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3
―기찻길 딱지왕
기찻길 옆 철로위에 병뚜껑은 우리딱지
칙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우리딱지 튼튼하다
노래를 부르다가 기찻길 철로위에 병뚜껑을 올려놓아요.
납작하게 만들어진 병뚜껑으로 딱지왕이 되요.
와요와요 기차가 웃으면서 와요.
납작 엎드리는데 심장에서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나요.
병뚜껑을 철로 위에 올려놓는데
민들레 꽃씨들이 춤을 추어요.
기차가 가까워지고 민들레 꽃씨들이 날아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멈추질 않아요.
땡땡땡 종소리가 들려요.
그저 보기만 했는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4
―콩서리
콩이 모닥불 속에서 타닥타닥 심장을 터트려요.
터진 심장이 이를 드러내고 웃어요.
알콩달콩 콩들이 춤을 추어요.
콩알콩알 까매지도록 꽃이 피어요.
너울너울 춤사위에 흰 연기를 뿜어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5
―돌담길 소꿉장난
돌담길에 작은 꽃들이
담장그늘에 앉아 소꿉놀이를 해요.
풀잎들은 놀고 싶어 안달이고요.
돌멩이는 부엌에도 앉고 방에도 앉지요.
풀밥 먹고 나면 흙밥이 앙탈도 부려요.
담장너머 대추나무아저씨도 넌지시 이파리를 흔들고요.
라일락아줌마도 새살거리며 꽃잎으로 참견을 해요.
지나던 하늬바람이 장단을 맞추며
천생연분이라고 소문을 내며 떠들어요.
제법 잘 어울린다고 해님이 빙그레 웃어요.
이냥 놀기만 했는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6
―달쌉쏩쏘로로 시루섬
달의 모서리에 밧줄을 던지고 시루섬으로 가요.
달이 꼬리를 담그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당겨주면요.
작은 쪽배가 움직이는 대로 강물도 춤추고요.
실바람도 따라 덩실덩실 배를 타고 가요.
땃쥐 등줄쥐 멧밭쥐 두더지 너구리 족제비들이
수달 고라니를 불러서
흰목물떼새 붉은배새매 소쩍새들과 어울려
뽕을 따기로 소문난 곳인 걸요.
뽕밭에서 달쌉쏩쏘로로 외치면
죽어서도 함께 한다는 대요.
달이 꼬리를 감추기 전에 외쳐야 해요.
살금살금 다가가 달쌉쏩쏘로로.
오래오래 달쌉쏩쏘로로 달쌉쏩쏘로로.
몰래 쓰는 단양연가‧17
―동감소 물뱀
햇살이 물 위에 앉아서 찰찰찰 떠들어요
물장구치는 속에도 끼어들어 찰랑대며 수다를 떨어요
잘잘잘 놀면서 잡은 것이 미끄덩 꿈틀대요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러덩 자빠지는데요
물뱀이 배꼽을 잡고 웃으며 지나가요
까르르까르르 물결도 덩달아 자지러져요
마냥 웃음만 나는 걸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8
―누룽지
솥뚜껑만한 누룽지 한 가득 안고 있으면요
나풀대던 노랑나비 먼저 와 머리맡에 앉는 데요
모두가 네가 꽃인가 보다 하고요.
노릇노릇 누룽지 오도독 나눠 먹고 나면요
벌노랑이 노랑꽃 나비하고 재잘재잘 수군대는 데요
바짝바짝 아기분꽃이 까치발을 들어요.
시침 뚝 떼다가 딸꾹딸꾹 누룽지 목에 걸려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19
―소원묻이 소금무지산*
해마다 소원을 빌어요
소금이 꽃으로 피길 바라면서요
소원묻이소원묻이
한강수를 나르고 소금을 묻어두면요
그 소금이 꽃으로 피어 꽃동산을 이룬다고요
진달래 꽃순이 뽀록뽀록 돋아날 무렵
산으로 올라가는데요
골짜기물이 거꾸로 흐르고
바윗덩이가 지축을 흔든 일은 아무도 몰라요
소원묻이소원묻이
연신 신선이 불꽃을 뱉어내더라는 설만 퍼져가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소금무지산: 단양丹陽은 모두 불을 상징하고 단양의 주산인 두악산도 불꽃모양을 띠고 있어, 불이 자주 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주민들은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두악산 정상에다 소금과 한강수를 담은 항아리를 각각 묻고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리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두악산을 소금을 묻었다고 하여 소금무지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몰래 쓰는 단양연가‧20
―애곡리 애살이꽃
달빛이 푸르죽죽 낯빛을 흐리던 밤, 꽃들이 아삼삼한 향기를 풍기면 강 건너 마을 숫총각네 집에서는 애풀이굿이 한창이지요. 몸살을 앓게 만든 이는 외딴집아가씨지요. 딸랑이를 흔들며 삼신할미 도락도사 온달장군에게 도움을 구하는 신녀는, 깊은 골짜기 세 개를 넘고 마르지 않는 옹달샘 물을 퍼 산중턱의 서른 세 번 째 소나무 아래에 부어두고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삼천 번의 절을 하라는 거지요. 그러면 천년에 한번만 핀다는 애살이꽃이 드디어 하얗게 핀다지요.
그 꽃을 보려고 강 건너 마을 숫총각이 절을 했다는 골짜기로 가요. 애살이 애살이꽃. 하얗게 애살이꽃이 필적에 함께 보러가요.
몰래 쓰는 단양연가‧21
―얼굴
비행기가 하얀 동그라미 휑하니 그리면요
흐릿하게 허물어지다가 어느 결에 구름 속으로 스미고요
두둥실 파란 구름이 하얀 도화지에 둥둥 떠다니면요
구름도 쉬어가는 마른가지 끝에
붉은 단풍잎 팔랑거려요
노란 가로수 길에 걸어가는 긴 그림자
물장구치고 멱 감던 호수 위에
잔물결로 반짝이면요
그림을 보듯 사방에 온통 어른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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