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태시인께서 친히 전화로 주소를 물어주시고 귀한 시집을 보내주셨다. 그마음이 감사하여 소중하게 읽었다. (허리통증으로 누워서 보는데 진통제때문인지 눈알이 핑핑돌기도 했다.)
자서를 제목으로 할 만큼 자서부터 아주 시적이라 감탄하며 찬찬히 읽었다.
첫 시집[달을 끌고 가는 사내]보다 훨씬 다르게 와닿아 더욱 신선하고 전체적인 색이 밝아 좋았다.
이야기를 옆에서 듣듯이 생활밀착형으로, 자세한 묘사는 시인의 시선과 마음이 보태어져 정을 담았고, 평상시의 진지한 모습과 유머러스한 언변실력을 고루 표현한 탁월한 시들이 무성하게 올라오는 들꽃처럼 피어있다. 그로인하여 시인의 시적사유가 오묘하게 어우러진 시의 만찬을 즐기도록 한 시집이다.
시감상)
등
벽 모서리에 비비적거리며 등을 긁는 저녁
밋밋해서 넓다는 말이 강을 건너 왔다.
내세울 것 없이 사신 아버지
칭송을 받기도 하고 핀잔을 받기도 하며 사셨지만
몇몇이나 기억할까.
고개 넘어 묵밭 된 산밭이 기억할까.
구획정리 잘 된 들판 논배미가 기억할까.
등을 긁는 어린 손이 마냥 좋아서
아버지는 거기, 그옆에, 아니 그 아래
시커멓고 꺼칠꺼칠한 아버지 등이 싫어
왜 이렇게 넓어, 왜 이렇게 넓어, 이제 됐지?
곡식이 됐든 꽃이 됐든 그리움이 됐든
올려 놓으면 다 짐으로 생각하고
짐 아래 바닥으로 사셨다.
아련히 아버지가 내게 등을 내미는 저녁
아버지는 언제 아셨을까.
등은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두 손으로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한가운데는 닿지 않는다는 것을
수첩: 난 예전에 등이란 제목을 지어놓고 다정하게 나이드신 어른들의 옆구리를 기댄 등을 석양아래서 보고 써봐야지 하고는 몇년이 흐르도록 못쓰고 있었다.이 시를 읽으니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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