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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의시인바람♬/[♡] 령이읽은 시

멸치/김기택

by 정령시인 2023. 4. 17.

 

멸치/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 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집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시감상)

누구나 사물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살피지는 못 한다. 

시인의 심성과 심미안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멸치 하나로 넓은 바닷 속 이야기와

물결너머의 세상까지 제대로 구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모든 시인이 이토록 깊이 있는 심미안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듯 하다.

시인이랍시고 시의 집을 세채나 지은 나도 아직 이런 심미안을 가지지 못하여

이런  한 가지를 오롯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그것을 시로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많이 다르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차이를 부른 것인지 알면서도 

시인들은 자아도취되어 자기의 성깔대로 심상대로 자기멋을 부리며 시의 집을 짓는다.

한 가지를  오래도록 관찰하고 관찰한 심상을 시어로 표현해 내는 내공은 아직

통달하지 못한 무지의 내 실력이다.

자그마한 멸치의 세계로 빠져들어 내 시의 내공까지 비교하니 조금 반성이 된다.

나도 잘 지어야 할 텐데, 잘 짓고 싶은데, 아직 먼 이야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