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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의시인바람♬/[♡] 령이읽은 책

시집읽기-강미정[검은 잉크로 쓴 분홍]

by 정령시인 2024. 5. 29.


어찌 제목을 대하면 어둡다가 밝아질 것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비관적이게도 보면서 살아갈 길을 찾는다 할 것이다.
시인은 내면적인 해학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심오한 인생을 사유적으로 성찰해 놓은 듯 보인다.
마치 달관한 수도승처럼 깊이 깨닫고,
함부로 드러내지않으며 고요하게 뱉어놓은 듯하다.


시감상)




어떤 축문


못물 수위 조금씩 낮아질 때마다
동네 사람들 양동이 들고 가서 고둥을 주워오고 낚싯대 들고 가서 붕어를 낚아오고
고둥을 삶아먹고 붕어를 찜해먹고
못물 수위 더 낮아질수록 양동이는 가득 차서 휘파람을 불며 가난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고둥을 삶아먹고 붕어를 찜해먹고
물 다 빠진 못에는 자동차가 한 대
달리고 있었다지 동네 사람들
잡았던 붕어를 못에 돌려주고
주웠던 고둥을 못에 돌려주고
죽도록 사랑한 두 사람 꼭꼭 숨겨준 못에
향불을 올렸다지 살아서 사랑을 하지
태양이 닿는 모든 곳에서 사랑을 하지
두 사람 꼭꼭 숨겨준 못에 향불을 올렸다지
동네 사람들 모두 속을 게워내고
바람에게도 그림자에게도 향불을 올렸다지






벗나무 흰 치마



현 꽃을 머리에 인 벚나무 그늘 속,
할머니 네 분이 택시를 잡는다
화그르르 쟁강,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마침, 그늘을 나온 뽀얀 할머니 곁으로
택시가 미끄러지며 섰는데
할머니는 반가워서 그늘 속을 향해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한다 와그르르 쟁강.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 난다
벚나무 그늘에 화장지 깔고 앉았다가
일제히 일어서는 할머니들을 보자
택시는 부앙, 쏜살같이 내빼고
화장지 들고 맨살의 햇빛 쪽으로
허둥지둥 나왔던 할머니들
우야꼬 또 내뺏네, 뽀얗게 웃는다
처자들은 치마만 살포시 들쳐도
야타, 야타, 차들이 선다카더마는
돈 준다케도 안 서네 안 태위주네 웃는다
젤로 고븐 논실대아 니가 치마를
치마를 한 번 들쳐, 벗나무 흰 꽃그늘 속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 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