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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이詩발표♬/[♡] 계간문예지

전국계간문예지(2018제20회)- 작품상

by 정령시인 2018. 8. 26.

 계간지주간)

 수상자인 나

 


 


 

 

202018 전국계간지문예지 대전축제 기념사화집

바다 속의 이슬을 들여다본다에 수록

 

5회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리토피아수상작

 

붉은 버지니아풍년화 1

치매입담·4

 

정령

 

덜거덕덜거덕 오토바이가 으르렁대며 달려와 선다. 누룽지맛 사탕이 가슴에 안겨 부스럭거리며 떠든다. 당이 어쨌다고 그만 하라고, 북어포 너댓 봉지가 갈비뼈를 드러내고 가만 있으라며 웃어젖힌다. 속이 시원하네 암말 말어, 매운맛 컵라면이 빙 둘러 앉아 몸에 좋은 건 하나도 없다 투덜거린다. 고만해 다 내가 먹을 거라고, 털썩 앉은 불룩한 배에 고래를 태우고 당으로 꽉 찬 공기를 빨아 마시며 벌겋게 달아오른 혈압으로 버럭 내지른다. 하루벌이가 누룽지맛 사탕처럼 달달하다가, 북어포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다가, 다 불어 터진 면발처럼 뚝뚝 끊어진다. 불거진 볼에 심통이 가득 차서 벌떡거리며 고래를 걷어찬다. 그만해요 아버지, 버지니아풍년화가 마른 잎사귀로 살살 흔들어 말린다.

2017신생겨울호

 

 

 

어쩌다

 

 

끈 떨어진 커튼이 펄럭인다.

열 받은 전깃줄에 새들이 비비거린다.

푸른 바람이 마르도록 울음소리가 탄다.

놀란 나뭇잎이 가로등을 깨운다.

적막과 밝음 사이에 어쩌다 와 있다.

 

시간이 오슬오슬 흘러간다.

빛의 그림자가 고양이가 되어 웅크리고 있다.

끈 떨어진 커튼이 문득 새를 바라본다.

전깃줄을 넘다가 바람이 새들을 건드린다.

태양의 비명이 낭자하다.

목젖이 타들어가고 가로등은 나뭇잎을 재운다.

어둠과 고요 사이에 어쩌다 와 있다.

2017신생겨울호

 

 

수상자 신작

 

기러기가 전하는 안부

 

 

끊어진 철길 위에 철자들이 지역을 암기하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줄지어 침목을 베고 누워있다. 서울에서 도라산역까지 장단역을 지나올 적에 많이도 울었다. 울음 낭자한 끝에 숭숭 구멍 뚫려 멈추어 선 철마, 기적소리 삼키고 오랜 세월 바람만 댕겅 모가지에 걸렸다. 갈바람에 기러기들이 북녘 된서리를 몰아온다. 산수유는 피 토하며 죽어간 영혼들인 양 알알이 영글고, 눈물로 써내려간 소식들은 오색 띠로 엮이어 나부낀다. 끼룩끼룩 어머니 몸 성히 계시지요. 끼루욱끼루욱 건강해라, 언년아. 끼루끼루룩 기러기 떼들이 읽고 또 읽고 끼룩끼룩 구슬피 읽고, 자음과 모음을 물어다가 보내주는 곳, 철마에 쇳물을 붓고 광을 입히고 철길을 놓고 역전 현판을 올려주고 싶다. 역전 현판이 되어 너를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리토피아선전평

 

 

사소함에서 건져 올린 정서적 인식의 힘


시작(詩作)이란 늘 진부해지려는 경향과 새로움의 압박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일지도 모른다. 작품의 안정을 취하려고 하면 진부한 느낌을 받게 되고, 무언가 새로운 시도에 골몰하게 되면 작품이 허술하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균형이 잠정적으로 필요한데, 정령시인이 바로 그런 시점에 접어들지 않았나, 개인적인 판단이 선다. 시인이었을 때의 발랄하고 산개(散開)한 시선이 비로소 한 중심으로 집중(集中)하고 있다고 보인다.

작품, 붉은 버지니아풍년화에는 하루벌이에 매인 그저 그런 아버지의 일상이 비유를 통해 병렬적으로 배치된다. ‘누룽지맛 사탕/’, ‘북어포/불편한 속’, ‘컵라면/혈압의 비유는 하루벌이가 누룽지맛 사탕처럼 달달하다가, 북어포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다가, 다 불어 터진 면발처럼 뚝뚝 끊어진다.”는 표현을 통해 하루일생으로 확장하는 힘을 얻는다. 게다가 그만해요, 아버지.”는 화자의 목소리이면서 버지니아풍년화 마른잎의 행위라는 점에서 저절로 강조된다. 풍년화 계열의 꽃이 노랑인데, 시인은 왜 붉은이라 했을까, 그리고 산수유나 개나리처럼 익숙한 것이 아니라 하필 낯익었으면서 보편화되지 않은 풍년화일까, 등등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시의 균형을 몸이 아니라 인식적 수고에서 비롯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한다./장종권, 백인덕()

 



리토피아수상소감

 

 

바람의 고요가 귓바퀴를 간질이는 봄이다. 외로운 고요가 적막한 고요를 낳느라 한 낮이 다가도록 꽃잎이 물 달라는 소리도 초록 잎이 햇살을 조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기역이 니은을 부르고 디귿이 리을을 불러 조음을 주무르는 동안, 단어를 달래고 문장을 응시하는 중에는 일시적으로 순산을 한 것도 같았다. 글자들이 앵앵 울면서 떼를 쓰고 보채고 하는 어리광을 한동안 껴안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 품을 떠나 날아간다. 그동안 달래고 안아주느라 못 보아온 꽃들이 반갑다고 할테지. 연초록 빛을 쏘면서 잎들이 더 파래진 얼굴로 따갑게 째려 볼테지.

 

자판에서 글자들이 싱싱하게 다시 튀어오른다. 붉어진 태양은 벌써 동쪽에서 달려오고 있다./정 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