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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의시인바람♬/[♡] 령이읽은 시

정지용 시모음 -1

by 정령시인 2020. 11. 10.

,갈릴레아 바다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는

미美한 풍경을 이룰 수 없도다.

 

예전에 문제門弟들은

잠자시는 주主를 깨웠도다.

 

주를 다만 깨움으로

그들의 신덕은 복되도다.

 

돛폭은 다시 펴고

키는 방향을 찾었도다.

 

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

주는 짐짓 잠자신 줄을-.

 

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

나의 탄식은 깨달었도다.

 

 

 

갑판 우

 

나지익 한 하늘은 백금빛으로 빛나고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동글동글 굴러오는 짠바람에

빰마다 고운 피가 고이고

배는 화려한 김승처럼 짖으며 달려나간다.

문득 앞을 가리는 검은 해적 같은 외딴섬이

흩어져 날으는 갈매기떼 날개 뒤로

문짓 문짓 물러나가고,

어디로 돌아다보든지 하이얀

큰 팔구비에 안기여

 

지구덩이가 동그랗다는 것이 길겁구나.

넥타이는 시원스럽게 날리고 서로 기대 슨

어깨에 유월 볕이 스며들고

한없이 나가는 눈ㅅ길은

수평선 저쪽까지 기폭처럼 퍼덕인다.

 

바다 바람이 그대 머리에 아른대는구료,

그대 머리는 슬픈듯 하늘거리고.

 

바다 바람이 그대 치마폭에 니치대는구료,

그대 치마는 부끄러운듯 나부끼고.

 

그대는 바람보고 꾸짓는구료.

 

별안간 뛰여들삼어도 설마 죽을라구요

빠나나 껍질로 바다를 놀려대노니,

 

젊은 마음 꼬이는 구비도는 물구비

둘이 함께 굽어보며 가비얍게 웃노니.

 

 

 

겨울

 

비ㅅ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 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구성동九城洞

 

골짝에는 흔히
유성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싸이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 ㅅ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귀로歸路

 

포도鋪道로 나리는 밤안개에
어깨가 저윽이 무거웁다.

이마에 촉觸하는 쌍그란 계절의 입술
거리에 등불이 함폭! 눈물겹구나.

제비도 가고 장미도 숨고
마음은 안으로 상장喪章을 차다.

걸음은 절로 드딜데 드디는 삼십적 분별
영탄도 아닌 불길한 그림자가 길게 누이다.

밤이면 으레 홀로 돌아오는
붉은 술도 부르지않는 적막한 습관이여!

 

 

 

그의 반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영혼 안의 고운 불,

공손한 이마에 비추는 달,
나의 눈보다 값진이,
바다에서 솟아 올라 나래 떠는 금성,
쪽빛 하늘에 흰꽃을 달은 고산식물,
나의 가지에 머물지 않고
나의 나라에서도 멀다.
홀로 어여삐 스사로 한가러워 -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오로지 수그릴 뿐.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여지며
구비 구비 돌아나간 시름의 황혼길 우-
나- 바다 이편에 남긴
그의 반 임을 고이 지니고 걷노라.

 

 

기차

 

할머니
무엇이 그리 슬어 우십나?
울며 울며
녹아도鹿兒島로 간다.

해여진 왜포 수건에
눈물이 함촉,
영! 눈에 어른거려
기대도 기대도
내 잠못들겠소.

내도 이가 아퍼서
고향 찾어 가오.

배추꽃 노란 사월 바람을
기차는 간다고
악 물며 악물며 달린다.

 

 

꽃과 벗

 

석벽石壁 깎아지른
안돌이 지돌이,
한나잘 기고 돌았기
이제 다시 아슬아슬 하고나.

일곱 걸음 안에
벗은, 호흡이 모자라
바위 잡고 쉬며 쉬며 오를 제,
산꽃을 따,
나의 머리며 옷깃을 꾸미기에,
오히려 바뻤다.

나는 번인蕃人처럼 붉은 꽃을 쓰고,
약하야 다시 위엄스런 벗을
산길에 따르기 한결 즐거웠다.

새소리 끊인 곳,
흰돌 이마에 회돌아 서는 다람쥐 꼬리로
가을이 짙음을 보았고,

가까운듯 폭포가 하잔히 울고.
맹아리 소리 속에
돌아져 오는
벗의 부름이 더욱 고았다.

삽시 엄습해 오는
비ㅅ낯을 피하야,
김승이 버리고 간 석굴을 찾아들어,
우리는 떨며 주림을 의논하였다.

백화白樺 가지 건너
짙푸르러 찡그린 먼 물이 오르자,
꼬아리같이 붉은 해가 잠기고,
이제 별과 꽃 사이
길이 끊어진 곳에
불을 피고 누웠다.

낙타털 케트에
구기인 채
벗은 이내 나비같이 잠들고,

높이 구름 우에 올라,
나릇이 잡힌 벗이 도로혀
안해같이 여쁘기에,
눈 뜨고 지키기 싫지 않었다.

 

 

 

나무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어느모양으로 심기어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은 위치! 좋은 우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의 적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을 헤였노라.
나의존재는 우주의 한낱 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성혈聖血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新約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나비

 

시키지 않은 일이 서둘러 하고 싶기에 난로에 싱싱한 물푸레 갈어 지피고 등피燈皮 호 호 닦어 끼우어 심지 튀기니 불꽃이 새록 돋다 미리 떼고 걸고 보니 칼렌다 이튿날 날짜가 미리 붉다 이제 차츰밟고 넘을 다람쥐 등솔기같이 구부레 벋어나갈 연봉連峯산맥길 위에 아슬한 가을 하늘이여 초침 소리 유달리뚝닥거리는 낙엽 벗은 산장 밤 창유리까지에 구름이드뉘니 후 두 두 두 낙수 짓는 소리 크기 손바닥만한어인 나비가 따악 붙어 들여다 본다 가엾어라 열리지않는 창 주먹쥐어 징징 치니 날을 기식氣息도 없이네 벽이 도로혀 날개와 떤다 해발 오천척 우에 떠도는 한조각 비맞은 환상 호흡하노라 서툴리 붙어 있는 이 자재화自在畵 한폭은 활 활 불피여 담기여 있는 이상스런 계절이 몹시 부러웁다 날개가 찢여진 채 검은눈을 잔나비처럼 뜨지나 않을가 무섭어라 구름이 다시 유리에 바위처럼 부서지며 별도 휩쓰려 내려가 산아래 어늰 마을 우에 총총 하뇨 백화白樺 숲 회부옇게 어정거리는 절정 부유스름하기 황혼 같은 밤.

 

 

 

난초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다문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내 맘에 맞는 이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옛사람 처럼 사람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 한 번만 합쇼.

호. 호. 호. 호. 내맘에 꼭 맞는이.

큰말 타신 당신이
쌍무지개 홍예문 틀어세운 벌로
내달리시면

나는 산날맹이 잔디밭에 앉어
기(口令)를 부르지요.

「앞으로----가. 요.」

「뒤로--가. 요.」

키는 후리후리. 어깨는 산ㅅ고개 같어요.
호.호.호.호. 내 맘은 맞는이.

 

*출처 : 정지용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