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허만하
ㅡ박수근의 그림
잎 진 겨울나무 가지 끝을 부는 회초리 바람 소리 아득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무와 함께 있다. 울부짖는 고난의 길 위에 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한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다른 아이 손을 잡고 여덟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아득하고 먼 길. 길 끝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 위에 광주리를 이고. 또는 지친 빨랫거리를 담은 대야를 이고 바람소리 휘몰아치는 길 위에 있다. 일과 인내가 삶 자체였던 어머니. 짐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손이 모자라는 어머니는 허리 흔들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아득하고 끝이 없는 어머니의 길. 저무는 길 너머로 사라져가는 어머니. 길의 끝에서 길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머니. 하학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따듯한 햇살을 쏘이던 내 눈시울 위에 환하게 떠오르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눈시울은 어머니를 담은 바다가 됩니다. 어머니의 바다는 나의 바다를 안고도 흘러 넘칩니다. 어머니 들립니다. 어디까지 와있나. 임정리 아직 멀었나. 어디까지 와있나. 골목 끝에 부는 바람소리. 나는 한 마리 매미처럼 어머니 등에 붙어 있었지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걸었던 바람 부는 길을 이젤처럼 둘러메고 양구를 떠났습니다. 나는 겨레의 향내가 되고 쉽습니다. 가야 토기의 살갗같이 우울한 듯 안으로 밝고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의 살결같이 거칠고도 푸근한 어머니의 손등을 그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가 끓이시던 시래깃국 맛을 그리겠습니다. 어머니. 나를 잡아끌던 어머니의 손이 탯줄인 것을 나는 압니다.
잎 진 가지 끝에 바람이 부는 겨울 그립습니다.
시감상)
예전에 동문수학하는 문우들과
박수근갤러리에 다녀온 기억도
새로새록나고,
내가 좋아하는 수근선생님의 그림들
서너장면도 떠오른다.
이렇게 시로 한꺼번에 떠오르게 하다니,
시란 참 오묘하기도 하지만,
허만하시인님의 시적 표현력이 경지에 오른 듯
뛰어나 보인다.
꾸밈없이 언어만으로 더 해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사진참고 박수근미술관사진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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