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터지게스리 오늘은 2022년 1월 11일인데, 2012년 이라고하여 이종헌시인과 내가 이미 십년전에 만났었나 하는 착각으로 시집을 펼쳤다.
시인은 현재 부천시에서 내노라하는 신문<콩나물신문>의 이사장님이라는 직함에 더 잘 어울린다.
그도 그럴것이 한참 코로나19가 퍼질 즈음 부천의 예술인들의 동정을 살피고 그들의 예술혼을 정리하여 [주부토의 예술혼] 이라는 책을 낼 만큼 문장력과 구술이 뛰어난 작가이다.
나는 그의 예술혼 발굴작업에 끼지는(잘 알지 못한 이유가 됨) 못했지만 그덕에 콩나물신문에 정령시인과 함께 읽는 [엄마와 아이를 위한 독서지도]를 작년부터 지금껏 해오고 있다.
고맙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해서 그에 대한 인터뷰를 하겠다고 자청해서 그 귀하다는 첫시집을 얻어 읽었다.
과거 국어선생님다운 면모가 몇몇 시에서 보이고,
또 삶을 초월한 듯 장자를 흉내내는 시인의 시들이 언뜻언뜻 장자인듯 아닌듯 장자를 대하듯 호접몽을 헷갈리게 했다.
시감상)
고물
고물상에
산더미처럼 고물이 쌓여있다
저녁 해는 뉘엿뉘엿 지고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고등학생 아이들이
우수수 교문을 빠져나가는 시각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건너편 고물상을 바라보며
세상에나 웬 고물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혀를 끌끌 차는 할미는
세상모르고 잠이든 젖먹이를 등에 업은 채
장난감 강아지를 안고 칭얼대는 계집아이를 어르며
옆에 서있는 내게 미안헀는지 묻지도 않은 자식들 얘기를 늘어놓는다
버스는 오지 않고
계집아이는 연신 칭얼대며 에미를 찾아 쌓는데
고물상 앞 전봇대에는
털이 듬성듬성 빠진 백구 한 마리
쇠줄에 매인 채 졸고 있다
“아그들이 살아보겄다고 발버둥 치는디 으짜겄소? 손주새끼들이라도 건사해야지라. 나도 고물 된지 오랜디...”
나도 고물 된지 오랜디 하며
힝하고 코를 풀어 재끼는 할미의 야윈 어깨 위로
하늘하늘 연분홍 꽃잎 하나 떨어져 내렸다
북한산
내가 문득
산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지친 내 어깨 위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주었다
세상은 처음부터 불이 아님에
미워하지 말라고
아직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뿐이니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라며
타다 만 공룡의 뼈 한 조각을 보여주었다
희망을 가져봐
유유히 높은 하늘을 나는 새들과
뭉게뭉게 떠도는 구름
우거진 숲과 나무 사이로
불쑥 솟아오른 바위와
그 바위 속을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들
평화란 저런 거란다
저 흐르는 물소리가
몇 만 리 밖 우주로 날아가
다시 태고의 성음(聲音)이 되어 돌아오는 날
너의 산에도 나무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새가 울 거야 하며
가만가만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삼각산 입술바위
삼각산 도선사 김상궁 바위 지나
지금은 길마저도 희미한 무당골 한쪽에
어여쁜 여인의 입술 하나 떨어져 있다
앵도라진 듯
삐죽거리는 듯
어떤 이는 마를린 먼로를 닮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안젤리나 졸리를 닮았다고 하는
샐쭉하니 도드라진 입술
옛날 천상(天上)의 서왕모(西王母)가
은하수(銀河水) 서쪽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직녀(織女)를 붙잡아 갈 때
그 입술은 떼어 무당골에 버리고
가슴은 족두리 바위에 버리고
여성은 건너편 도봉산 어름에 버리고 갔노라는
전설 하나 있을 법한
그리하여 견우는
직녀를 찾아 은하수로 떠나고
늙은 소는 죽어
뿔은 삼각(三角)이 되고
귀는 우이(牛耳)가 되었다는 전설 하나 있을 법한
삼각산 도선사 무당골 한쪽에
슬픈 여인의 입술 하나 떨어져 있다
겨울 바다
바다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피랑 언덕 넘어
강구안 포구에 닿을 때까지
바다는 온종일
갈매기 울음소리에 취해있었다
장미였던가?
이제는 이름마저 희미한 소녀
그녀가 내 귀에 대고 들려주었던
소라껍질에서
우수수 바람이 쏟아졌다.
우수수 세월이 쏟아졌다.
새벽달이 터벅터벅
미륵산 고갯길을 넘어올 때쯤
인생은 다 그런 거라며
바다는 내게
시린 소주 한 잔을 건네주었다
-2011.01.20. 통영 강구안에서
북어
교실 벽면 한 쪽에
우두커니 매달려있는 북어
퀭한 눈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아가리가
하루 종일 북적대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다가
몸도 마음도
석고(石膏)처럼 굳어져버린 북어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교실에 어둠이 깊어질 때
북어는 비로소 제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무명의 실타래를 빠져 나와
달빛 젖은 알래스카
베링 해의 푸른 파도 속을 유유히 헤엄쳐 간다
처음부터 북어는 북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북어는 북어가 아니었다
나도 북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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