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곳에서 마음으로 전해주신 소설책 같은 두께의 무거운 시집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방황하며 정처없이 헤매일 때 ,
조금 그럴 때가 있으니 쉬다가 또 보자는 응원과 노래까지 보내주셨던 분이시다.
남태식 시인의 인상이나 말투는 늘 온화하고 부드럽다. 아니, 장난기가 있으신가 싶다가도 진지하고, 지나치게 진지해서 상황마다 헤프닝이 많아 줄곧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나태식 시인의 삶 자체가 헤프닝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번 시는 좀 삶 자체가 누구나 힘들고 아프고 절절하다고 뭉뚱거려 말하기가 어렵다.
시인의 우여곡절이 많은 지난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시의 틀을 구성한 전체적이 분위기가 가늘고 길게, 그리고 아픔과 고통을 안고 아슬아슬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시인 스스로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돌이나 물이나 그런>에서는 나조차도 다음 생에서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돌이나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기면嗜眠, 종점에 들다>에서는 이상하게도 난 버스에서 잠이 들면 내려야할 곳에서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영락없이 내리는 편이라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질 않았는데, 한 번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저녁>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는 참혹했던 현장이 눈에 아른 거리는 것 같아서 나도 소름 쪽 끼쳤다.
얼핏 읽으면 쉬운 생활수필을 읽는 것처럼 속도감있게 읽혀지나, 읽고 나면 시인의 육십 넘은,
곡절많은 인생살이를 온 몸으로 체득한 것 같이 삶. 그런거지 싶다가도
짧다면 짧은(?) 길다면 또 긴(?)인생을 어찌 살아야하는지 헤맬 때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표지지판처럼 명료해짐을 느끼게 된다.
남태식 시인의 가늘고 긴 삶이,
부디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한 길이 계속 이어지며 건필하길 바란다.
시감상)
아나 DDONG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숙제로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의 1/4을 차지하는
빈 하늘
한가운데에 그려진
해를 보던 선생님께서
한말씀하셨다.
"그림에
해 그리면
안 돼!"
중1 국어시간에
자작시를 낭독했다.
물에 빠진 구슬같이
파아란 하늘 밑에
똥같이
누우런 땅위에
......
읽는 중에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고
선생님께서
한말씀하셨다.
"비속한 말은
시에 쓰면
안 돼!"
생물선생님께서
들고 다니시던
막대기 끝자리에는
DDONG 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그 막대기로
대답을 못 하거나
조는 아이들의
책상 위에 올린
손등이나
머리 위에 올린
손바닥을
한 대씩 때렸는데
반드시 그 부분에
맞추어 때렸다.
그때마다
낮으나
단호하게 읊조리셨다.
똥!
시감상2)
증거불충분
철강공단을
벗어나 위치한
도구에서
공단을 마주한
송도동으로
우체국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안구는
첫사랑에게서
일방적으로
기습적으로 통고받은
이별의 기억과
맞닥뜨렸다.
대기오염 전광판은
언제나 맑았으나
고춧가루통을 뒤엎는
아침과
수시로 양파를
벗기는 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안구건조증이었다.
증거로 전광판을
들이밀 수는 없었으나
심증은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앞의
긴 가뭄이었다.
어떤 가늠은
정황의 유무만으로도
증거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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