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령의시인바람♬/[♡] 연꽃홍수56

시계/ 정령시집[연꽃홍수]중 103쪽 시계/정령 넌 이제 끝이다. 그동안 널 만나려고 초란을 불러 꽃다발도 주고 예쁜 브로치 달아주었더니, 쭉빠진 분녀에게 눈웃음 한번 찡긋, 귀여운 시동이하고는 상큼한 입맞춤, 넌 정말 끝이다. 시동이 너 좋다고 기어이 따라나서는 걸 분녀가 잡아두고는, 초란이 오기를 기다려 삼자 대면할 때 나는 대성통곡했다. 초란이, 분녀, 시동이, 그 세 녀석이 한 집에서 나오는 걸 나는 다 봤다. 니들, 딱 걸렸어. 2023. 6. 6.
사랑 사랑 오늘은 허탕을 치지 말아야할 것이다. 해서 요령껏 넘어갈 담도 봐두고 자리도 살폈었다. 실수 없이 빈집인 걸 두 번 세 번 확인 차 초인종도 눌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신이 나서 마구 주워 담아 의기양양 대문을 열고 나왔다. 성공이다. 하루는 쉬어야지, 물색만 해놓고 휘파람 불며 지나고 있을 때 앗싸, 저기 또 여행가나 보다. 잘 봐 둬야지 이게 웬 떡이람 무게 나가는 것 말고, 현금 좋고, 금은 더 좋고. 그 놈이 그랬다. 홀라당 집을 통째로 털더니 끝내는 꾀가 생겨서 알맹이만 쏙쏙 빼갔다. 에라, 이 도둑놈아! 2022. 9. 1.
봄이니까 봄이니까 립스틱을 칠하고 나선다. 봄이니까. 스카프를 두르고, 스타킹을 신고, 굽 높은 힐을 신었다. 봄이니까.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스카프가 붉어진다. 나비가 조팝나무 꽃무리 사이에서 훨훨 날아다닌다. 그가 따라온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간밤에 내린 비로 꽃봉오리가 톡 터진다. *봄이니까-정온시인의 시 「꽃 피는데 비」에서 인용함. 2022. 4. 2.
아버지와 개꼬리 아버지와 개꼬리 물을 대고 오신 아버지가 흙을 털고 평상에 등을 기댄다. 갓 깨어난 개구리가 갈라진 손등에 올라앉는다. 바람 한껏 부풀리다가 까딱, 하자 폴짝, 뛰어내린다. 평상 위 막걸리 한 사발이 입을 헤벌리고 있다. 사발 속 김치도 철푸덕 주저앉아 덩달아 곯아떨어진다. 아버지 곤한 숨소리 따라 햇빛도 바람도 더덩실 춤춘다. 개구리가 아버지의 콧등에 다시 앉는다. 아버지가 놀라 일어난다. 이 · 노 · 무 · 개 · 꼬 · 리. 액자에 끼운 시와 사진이 지난겨울 얼다녹다 하다가 곰팡이가 슬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이것도 꽤 멋지다. 20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