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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령이랑놀기♬/[♡] 꺼리랑

한국인의 성 풍속도 ...16

by 정령시인 2010. 3. 18.

김총각과 주경야독
 

   옛날 시골 어느  냇가에서였다. "아이, 그 댕기 어서 이리  내!" "허허  단번에
내주려고 내가 빼앗은 줄  아는가?"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빨래터에서 정순
이는 울상이되어 떠꺼머리 김총각에게 손을 내밀어  조르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
에 앞치마를 맵시있게 졸라맨 정순이의 예쁘장한 얼굴을 빙글 빙글 웃으며 내려
다 보고 있는 김총각의 얼굴은 여드름이 숭숭난 데다가 어릴적에 아궁이 앞에서
졸다 덴 맷방석만한  흉터가 대패로 함부로 밀어  놓은 것같은 이마빼기까지 죽
달리고 있었다. 정순이는 더  보기도 싫다는 듯이 휑하고 돌아서며 팔장을 낀다.
김총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로 아무 곳에서
나 남이 쉽게 덤벼들 수 없는 이리들을 마구  해주며 밥을 얻어 먹곤 했다. 특히
그가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노총각이 다  되어 있었다. 얼굴 한쪽이 찌그러지
고 곰보에 언청이라고 해도  장가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는데 그만 정순이를
보자 첫눈에  반해 버렸다. 허나 원래  본때 없이 생긴 데다가  미련하기로는 또
남못지 않은 위인이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데 저 예쁜줄아는 정순이가 눈이
나 한  번 돌려보겠는가? 마음이 후끈  단 것은 김총각뿐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볼상없는 풍모를 하고 있어도 힘은  장사라 온 동네의 힘든 일은 으레 김총각에
게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김총각에게는 또 하나의  재주가 있었다. 그는 바둑을
꽤 두었다.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고 이집  저집 머슴살이로 굴러 다니는 동안
사랑에서 선비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어깨 너머로 익힌  솜씨였다. 그리하여
바둑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럴 만한 적수 역할을 해 주는 터라 그럭저
럭 김총각은 쫓겨나지  않고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김총각의  소원이라면 배를
두드리며 빈 곳마다 쌀밥을 꽉  꽉 채워 보았으면 하는 것과 정순이를 한 번 안
아보는 것이었으나 물론 두 가지 다 그에겐  불가능한 꿈이었다. 허나 쌀밥은 안
먹어도 대신 보리밥으로나마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괜찮았으나 상사병만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제 답답한  심정을 털어 놓으리라 하고  틈만 있으면
멀찍이서 정순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녔지만 신통한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도 마침 바둑판에 불려가고  있는데 정순이가 빨래터에서 혼자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 것이다. 김총각은 신이  나서 살금살금 정순이의 뒤로 다가가
정순이의 갑사 댕기를 잽싸게 채어서 품에 넣고 한달음에 도망치려고 하자 놀란
정순이는 잽싸게  김총각을 잡아 갑사  댕기를 내놓으라고 조르고  있는 터였다.
"정말 안 내놓을테야?" "헤헤...아랫물과  윗물이 합칠 때 주마" "왜 남의 댕기는
빼앗아 가지고 난리야? 남이 보면 창피하지,  어서 돌려줘" "석 자 가위 무명 수
건 기둥에 걸어 놓고  너 낯 닦고 나 낯 닦고  할 때 주마" 김총각은 서로 장가
가고 시집 가서 한데  얼려 살며 한수건에 낯 씻을 때  주겠다는 것이었다. 정순
이는 기가 막혀  김총각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쌩긋 웃으며
눈을 내려뜬다. "너 정말  나한테 장가들고 싶니? " 김총각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럼 정말이야. 내가  정순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아?" "알았어.  댕기를 너
한테 빼앗겼으니 이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가 봐. 그렇지만  지금같이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너에게  시집가긴 싫어, 네가 벼슬해서 벽제소리를 내며  돌아오면 시
집갈 테야!" "정말? 약속을 꼭 지키는 거지?" 김총각은 시집 오겠다는 소리만 믿
고는 댕기를 돌려주곤  희색이 만면하여 돌아왔다. 머슴방에  돌아와서야 김총각
은 이내 자기가 속은 것을 깨달았다. 사실, 자기 주제꼴에 무슨 벼슬을 할 수 있
겠는가? 배가 아무리 고파도  슬픈 줄 몰랐던 김총각은 처음으로 가슴이 저릿저
릿해지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자기 신세가 한스러웠다. 이튿날이 되어서
였다. 김총각은 막연한  생각으로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그 마을을  떠나 서울
로 향했다. 그러나 몇 십 리 길을 걷고  나니 그리운 정순이며 벼슬도 모두 잊어
버렸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밥 한 그릇  뿐이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이었다. 서
울에 도착했을 때는  배 창자가 등허리로 빨려  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려 우선
음식 냄새가 날  만한 골목만 기웃거리다가 한 골목을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때는 초여름이라 골목 안에는 대문  밖에다 평상을 내놓고 두 노인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김총각은 다리도 아프고, 또 두 노인의 바둑 솜씨도 궁금하
여 평상  옆에 발을 멈추고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구경에  열중해 있는데
언제 왔는지 시꺼먼 수염이 수더분하게  난 한 늙은이가 자기 옆에 서서 자기와
마찬가지로 바둑판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을 알아 차렸다. 김총각은  다시 바둑
판으로 눈을 돌렸다. 바둑판의  형세는 흑이 백에게 자꾸 휘둘러 먹히고 있었다.
그러나 김총각이 보기에는  흑이 헤어나갈 수 있는 구멍이 충분히  엿보였다. 그
런데도 흑을 가진  노인은 심사숙고하여 한참을 지켜보더니  드디어 흑 한 점을
놓는 마땅히 놓아야 할 급소에 놓지를 않고  다른 곳에다 놓는 것이었다. 김총각
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저런!"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흑이 졌다.
그러자 이긴 노인이 김총각을 올려다 보며 "한 판 하겠소?" 하고 자신만만한  어
조로 물었다. "그렇게 하지요"  김총각은 흑을 놓던 노인의 자리에 앉았다.  허나
바둑을 절반도 놓기 전에 노인의 말은 다 죽고 더싸워 볼 여지도 없이 김총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노형 바둑 수가  밝소" 이제까지 죽 옆에 서서 구경
하던 시커먼 수염의  사나이도 감탄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가  했더니 김총
각더러 "내 집에 가서 한 번  겨루어 보지 않겠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
총각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리였다. 그런데 멋모르고  따라가 보니 시꺼먼 수염
의 사나이는 바로 상감이 아닌가? 상감은 가끔 변복을 하고 항간을 암행하는 습
관이 있어 이 날도  시꺼먼 수염을 붙이고 나온 것이었다. 김총각은  숨이 칵 막
히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둑에 이기지 말걸!'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
용없는 일이었다.  이제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김총각이
상감 앞에 나아가니 좀 전에  있었던 지저분하고 억세게 보이던 수염은 간 데가
없고 명월같이 훤한  용안이 앞에 있었다. 김총각은 고개도 제대로  못들고 바둑
판만 뚫어지게 내려다 봤다. 상감은 백을 쥐고 김총각은 흑을 쥐었다. 그리고 흑
을 쥔 김총각의 선수로 시작이 되었다. 김총각은 그야말로 사생 결단, 온 정신을
가다듬어 한 점 한점 신중히 놓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상감이 이만저만 꿀
리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되니 이번엔 도리어  상감을 이길가 걱정이 되기 시작
했다. 첫판을 김총각이 이십 집을  이겼다. 상감의 흰 얼굴에 붉은 기가 확 솟구
치는 것을 김총각은 곁눈으로 흘겨보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리라' 이렇게 단
단히 마음을 먹고 두 번째 판을 벌렸는데 어찌 됐는지 김총각이 첫판보다 더 많
은 삼십 집이나 대승을 거둔게 아닌가? 김총각이 얼핏 상감을 보니 안색이 창백
해지는 듯하더니 마침내 상감은 바둑알을 놓고는 김총각을 빤히 쳐다보며 "자네,
보아하니 서울에  사는 사람같지  않은데 어디에  사는 누구인고"  하고 물었다.
"예, 소인은 김태섭이라  하옵고 살기는 전라도 후백제의  수도인 전주에 사옵니
다" "그렇게 시골에 사는  자가 어이하여 서울에는 왔는고? 그리고 글공부는  얼
마나 했는고?" "예, 소인은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막일을
해주고 몇 푼 벌어  살아가느라고 배운 것이라고는 일자무식이옵니다 그리고 소
인이 서울에 상경한 것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정순이라는 처녀가 있는데 그
처녀를 제가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머슴살이를 하거나 막노동
을 해서 살아가는  총각이라서 저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벼슬을 해야만
저와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상감께서 제능력에 맞는  벼슬 자리 하나 내려주실
수 없으신가요?  좀 도와주십시오. 상감마마"  김총각은 이렇게 말한  뒤에 코가
땅에 닿도록  상감께 큰 절을 올렸다.  그러자 상감은 이내 곰곰히  생각에 젖는
듯 하더니 "그래 그대에게 전주 덕진동에 있는 왕능 참봉에 명하겠네. 내 임명장
을 부탁해 놓겠으니  고향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서 정순이 아가씨에게 보이고
결혼하여 잘 살아가도록  하게. 그리고 낮으로는 능참봉 일을 하고  밤으로는 공
부를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도록 하게. 그렇게 되면 암행어사도 될  수 있
고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좋은 벼슬자리들은  얼마든지 있네. 김총각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는 것이네"   이렇게하여 김총각은 바둑 때문에 능창봉의
벼슬을 얻어 금의환향하니  과연 정순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즉시로 결
혼하니 첫날밤의 그  운우의 정이란 그렇게 황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총각은
상감의 말대로 밤이면 계속해서  공부를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니 이 때부터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시골의 많은 젊은이들
이 너도 나도 낮엔 일하고  밤에는 책과 더불어 씨름하는 주경야독의 경지에 빠
져 들었다.

 

 

  시어머니의 행실

    "아니, 하라는 일은 내팽개치고  또 무슨 잡생각이냐? 자식 있겠다. 서방  있겠
다.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넋을  잃고 앉아 청승을 떨어? 계집년이 허구헌날, 쯧
쯧,,,, 장사하는 서방이 길눈 어두워 집 못 찾아올 걱정이나 하면 또 몰라도 샛서
방 못 잊어 그 청승이니..... 내 원 참" 오늘도 시어머니의 포악은 날 새기만을 기
다렸다는 듯이 눈을  뜨기가 무섭게 시작되었다. 동네 방네 다  떠나가도록 고래
고래 악을 쓰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드는  시어머니의 등살에 아궁이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피고 있던 순임이는 정말 죽고만 싶었다.  하루하 기승만
늘어가는 시어머니의 욕설에 동네가  부끄러은 것은 고사하고 우선 순임이 자신
이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었던 것이다. 한 번 속시원히 말대답이라도  했으면 좋
으려만 자기에게도 떳떳치 못한 약점이 있었으므로 아무리 억울해도 꿀 먹은 벙
어리가 되어  그 악다구니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으니 더욱  답답한 노릇이었다.
시어머니가 그토록 포달을 부리고 순임이를  들 볶는 것은 다름 아니라 지난 봄
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순임이의 남편은 등짐 장사로 전라도나  경상도 일대
를 두루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탓으로 집에 붙어 있는 날은 일 년에 몇 번인
명절 때  정도였다. 그러므로 순임이는  밤마다 허전한 잠자리에서  팔자에 없는
생과부의 설움을 짓씹으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었다. 날씨가 화창하고  봄바람이 옷 속으로 기어들며 갖가지 꽃들이  활짝 웃
는 봄이었지만 순임이에게는 웬일인지 이런 봄이  싫었다. 공연히 마음이 산란하
여 곱게 핀 개나리의 잎을 후드득 뜯어서  못쓰게 만드는 순임이었다. 그녀는 먼
골짜기에 유난히도 아지랑이가 선연한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보리 밭
으로 행했다. 그러자 어느 새 뒤따라 왔는지  전부터 순임이에게 심상치 않은 눈
길을 던지곤 했던 옆집 장쇠가 바짝 순임이의 등 뒤에 다가서는 게 아닌가 그녀
는 사나이의 뜨거운 입김을 목덜미에 느끼자 갑자기 얼굴이 닳아 올랐으며 가슴
은 마구 두  방망이질을 하였다. 장쇠는 아무도 없는 으슥한  보리밭에서 평소에
연정을 품고 있었던 순임이와 단둘이  마주 서자 너무나 벅찬 기쁨에 덥석 순임
이의 손목을 잡았다.  뿌리치지 못하고 사나이의 열정에 손목을 맡긴  그녀는 오
랜만에 사나이를 가까이 두고서 자기도 모르게 환희의 기쁨으로 몸을 부르르 떨
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살쾡이처럼 살금살금  뒤를 밟은 시어머니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번연히 손만 잡힌 것을  본 시어머니였으나 그 후부터 시
어머니는 걸핏하면 화냥질을  했다고 순임이를 모함하는 것이었다.  청상 과부인
시어머니로서도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모를리 없으련만 손목 한 번 잡힌 것을 그
처럼 과장해서 욕하는  것이 너무나 야속했다. 남편이 다녀가는 날에는  더욱 시
어머니의 극성이 도를 넘었다.  "저런 뻔뻔스러운 년 같으니... 그 더러운  몸으로
천연스럽게 서방을 끼고 자?  도대체 몇 놈의 씨나 받을 작정이냐?" 시어머니는
이런 욕설 ㄱ에 항상 늘어놓는 자기 자랑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십대 과부로 깨
끗하게 수절을 하며  살았어! 어디라고 함부로 얼굴을 내밀고 돌아다녀?  어저다
부득이 밖에 나갔다가  길목에서 남정네와 눈이 마주쳐도  죄를 범한 것같아 칵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단 말야" 혹시  순임이가 옷고름이라도 바로 고치려고
단정히 매면 시어머니의 눈꼬리는 금새 귀쪽으로  올라가 붙었다. "어느 놈 만나
려고 저렇게 야살을 부리노?  제 버릇 개 못주는 천하의 화냥년은 다르구나" 이
처럼 별의별 소리를 다하며  순임이를 몰아 세웠으므로 마침내 그녀는 시어머니
가 이웃에 마실 간 사이에 대들보에 목을  맸다. 순임이가 한창 허우적거리고 있
을 때 마침  놀러 온 우록이 할머니가 기겁을  하고 놀라며 달려들어 풀어 주었
다. 그런  바람에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순임이는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설움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복받쳐 우록이 할머니에게  매달려 통곡을 했다. 자초
지종을 묻는 노파에게 순임이는 흐느기며 이제까지 자기가 당해 온 수모를 모두
털어 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우록이 할머니는 의분을 느끼며 이렇
게 말하였다. "바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더니만 이게 곡 그짝이구
먼 그랴. 제  행실이 바르고 나서 남을  탓할 노릇이지 어디 제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자기는 과부인 처지에 글방 훈장님을 좋아해서 훈장 방에 몰래 숨어 들
어 갔다가 오히려  그분에게 회초리를 맞았던 일은 잊었나?  허나 어디 그 뿐인
가? 삼돌인지 하는  동네 머슴 녀석과 배가 맞아  놀아나다가 통음한 죄로 북을
메고 동네를 사흘이나 돌아 다니는 벌을 받기까지  했으면서..... 아 그래 저는 그
랬으면서 며느리가 외간 남자에게 손목  한 번 잡혔다고 해서 이렇게 목을 맬만
큼 들볶는단 말야?" 우록이 할머니의 말을 듣자 순임이는 너무도 분하고 억울하
여 죽고 싶은 생각이 삭 가시고 말았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큰 마아신을 당하고
도 여지껏 뻔뻔히 살아가는데 손목 한 번 잡힌 일롤 생목숨 끊고 원혼귀가 되어
더돌아다닐 필요가 뭐  있는가?' 이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어머니가 돌아오
길 기다리던  순임이는 사립문으로 들어서는 시어머니를  보자 이제까지의 설설
기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달리 보따리를 꾸리며,  "털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는
법이예요. 어머님  소원대로 화냥질을 한  저는 쫓겨 갑니다만  어머님 쪽에서도
그렇게 큰 소리 치실 행실은 안하셨던 것 같더군요? 춘정에 못이겨 글방 훈장님
방에 뛰어 들었다가 종아리를 호되게 맞으셨고 또 머슴과 놀아나서 갖은 재미를
다 보시다가 들통이 나서  사흘 동안 동네에 조리를 돌리셨다더군요? 참 장하게
수절을 하셨군요?"  하고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새파
랗게 질리더니  마늘통만한 족머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발을
구르며 며느에게 소리쳤다.  "어느 년이 그 따위로 나를  모함하더냐? 내가 언제
훈장님께 종아리를 맞았다고 그러더냐? 사람잡지 말라고  그래, 나는 그 때 겨우
볼기를 다섯 번 맞았을 뿐이야, 알갰어? 그리고  또 조리를 돌린 일만 해도 그렇
지, 사흘 동안  동네를 돌았다니.... 나는 단지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틀밖에 안
돌았단 말이야! 어느  년이 그런 억지 거짓말을 꾸며대더란 말이냐?"  입에 침을
튀기며 변명을 했으나  그것은 변명이 아니고 훌륭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이 말
을 들은 순임이는 참으로 오랜만에 통쾌한 웃음을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게 정
말이었군요? 어머님도 이제는  과거를 생각하셔서라도 더 이상 실수를 들춰내지
마세요! 저는 아무런 죄도 없이 어머님의 꾸중을 참아 왔습니다." 그때서야 비로
소 시어머니는 바싹 다가들어  보따리를 빼앗으며 "아가, 네 말이 맞다. 내가 잘
못했어. 이제부턴 우리 서로 의좋게 살아 가자꾸나..... " 하며  지금까지의 태도를
싹 바꾸어서 더할 수 없이 유순하게 나왔다.

 

 

  계집종의 남편을 심부름 보내놓고
 

   옛날에 계집종 간통하기를  좋아하는 못된 선비가 한 사람 있었다.  무슨 일로
인하여 계집종의 남편을 수십  리밖에 심부름을 보내는데 계집종의 남편은 십분
주인의 처사를 수상히 여기던 터이라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이에 사람을 고용하
여 대신 보내고 스스로 그 방에 숨어 있었겠다. 밤이 깊은 후, 주인은 이미 계집
종의 남편이 출타한 줄 아는지라  아무 꺼리는 바 없이 계집종의 방으로 들어갔
겠다. 방에 들어서니 방  한ㄴ쪽에 한 사람이 누워서 잠 자고  있는 소리 뿐이라
금새 성욕이 치솟아  이불 아래 꿇어 앉으며 한  손으로 이불을 걷고 두 다리를
들어 올린 후에 그 허리를 꽉 끌어안은 즉 주객 네 다리 사이에 두 거북의 대가
리가 돌연히 서로 부딪치거늘 주인은 창황지간에 꾸며댈 말이 없는고로 이에 가
로되, "너의 물건이 왜 그리 크냐?" "비부의 물건이 크고 작은 것을 양반이 알아
서 무엇하리오?" 하니 주인이 넋이 바진 채 아무말 없이 물러가더라.

  인생이란 가벼운 티끌이 약한 풀을 스치는 것과 같으니
  옛날 어느 시골에 과부가  살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이요, 집안 살림은 넉넉하
였다. 그리고 슬하에 아들 딸  하나 없었다. 그래서 일꾼을 두어 농사를 짓고 밤
으로는 길쌈을하여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니 이웃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
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 중에 상처한  지가 여러 해 되는 가난한 홀아비
가 살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과부를  보고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홀아비는 그리움을  견디다 못해 한 친구를 만나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제대로 장가 갈 가망이  없으니 그 집 과부나 얻을까 하네.  그래서 오늘밤에 내
가 기어이 저 집에 가서 알몸으로 과부의 이불을 덮고 속으로 들어가 누워 있으
리니, 그대로 내일 새벽 동틀 때에 자네가  과부집에 오면 과부가 틀림없이 바깥
채 부엌에 있을 것이니 그대가  꼭 여차여차하게 한다면 나의 일이 끝나리라 믿
네" 그 말에 벗이 말하기를, "그 여인의 절개가 굳고 살림이 또한 넉넉하니 어찌
그대를 좇는다 할 것인가? 일이 만일 성공치 못한다면 반드시 좋지 못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니 어찌 그걸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그러자 홀아
비가 "한 가지 염려가 없지 않으나 다만 자네는 나의 말만 다라  해주기 바라네"
모든 것은 자기에게 맡기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벗도  할 수 없
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에 홀아비가 꼭두새벽에  과부의 집에 가서 울타리 밖
에서 엿본 즉 과부가 바깥 부엌에 나와  소죽을 ㄱ이고 있었다. 홀아비는 살금살
금 후문으로 돌아 방에 들어가서는  다짜고짜 과부의 금침을 펴고 옷을 벗고 이
부자리 속으로 깊이 누웠다. 날이 샐 무렵해서 벗이 약속한 대로 찾아왔다. 과부
가 부엌에서 "무슨 일 때문에 이처럼 일찍 오시었나요?" "오늘  우리 집 밭을 갈
려고하여 소를 잠시 빌리면 오전중에  곧 돌려 보내리니 이 청 때문에 왔소" 하
니 과부가 아직 채 대답치 못하고 있는 중에 홀아비가 갑자기 창가의 조그만 창
을 열고 이불 속에서 머리를 들고 벗을 향하여 "우리 지비도 오늘 밭을 갈 터인
데 소를 빌릴 틈이 없으니 딴집에 가서 빌려 보시오" 하니 과부가  놀라 "그대가
웬일로 이 집 방 안에  누워 있나요?" 하고 묻거늘 "내가 내 집 방에 누워  있는
데 무엇이 괴상해서 묻느뇨?" 하고 홀아비가 웃으면서 말하니 그의 벗이 "이  집
주인은 저 아주머니가  혼자 사는 것을 온 마을이  다 아는 터에 우리 집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만약 내 집이 아니라면 어찌 다른 사람의 안방에서  함부로
잘 수 있으리오?" "내가 바로 새벽잠이 들어 일어나지 못한고로 아직 이불  속에
누워 있으니 다른 사람의 집안일에 그대가 어찌 말이 많은고? 쓸데없는 소리 다
시는 하지 말게" 하니 벗이 기괴히 여기는  듯 뒤통수를 치며 나갔다. 여인이 이
모양을 보고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서 말이  없었다. 벗이 곧 이웃집으로 돌아다
니며 소문 좋아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자세히 이  일을 말하니, 세상일은 가히 측
량할 수 없는지라 남녀 노소가  다 믿지 않고 의심하는 자가 있으니 "내가 이제
이 눈으로 보고 왔으니 여러분도 곧 가서 보면 알게 아니오?" 하고 벗이 말하니
소년 남녀 7,8인이 일시에 과부의  집으로 간 즉, 그 홀아비가 아직도 이불 속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고 입에 장죽을 물고 담배를 피우며 창을 열고 내다보며 "웬
놈들이 주인도 일어나기 전에  이리 일찍 왔느냐?" 하니 여럿이 보고 손뼉을 치
며 "아무개의 말이 과연 옳군. 이제는 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군" 하고 다 흩어져
돌아가니 과부가 얼굴이 샛노래지며 입을 열지 못하고 등신처럼 서서 있거늘 홀
아비가 이에 부엌으로 나아가  과부의 손을 잡고 "인생 세간이란 가벼운 티끌이
약한 풀을 스치는 것과 같으니 그대가 아직 늙지 않은 몸으로 어찌 스스로 저와
같이 괴로워 할 까닭이 무엇이오? 이제 일이 여기에 이르러 비록 혀가 열 개 있
어도 이 일을 변명할 수는 없을 것이오. 또  설사 송사질을 한다 해도 굴욕 뿐일
것이니 나와  인연을 맺음이 옳을까 하오.  우리 서로 홀아비와  과부가 아니오?
어찌 가합치 않으리로? "하니 과부가 백 번 생각해 봐도 어쩔 도리가 없어 이에
눈물을 흘리며 길이  탄식하더니 이내 한 덩어리가 되어 운우를  즐기었다. 그리
고는 그 후에 아들 낳고 딸 낳고 즐거이 한 평생을 잘 살아갔다고 한다.

 

 

  덩치가 큰 한 사내가 미인을 끌어안고

   옛날에 북관의 어느 한량이 정시를  보려고 상경하는 도중 한 읍에 이르게 되
었다. 날은 저물었는데 주막이 없었다. 우연히 한 마을에 이르러 보니 큰 기와집
이 있음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 본 즉,  사랑이 다 폐방이 되고 고요하여 인적이
없거늘 중문 안에 들어가서 아이를  불러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니 안에서 한
여인이 나와 "이 집엔  남정네가 없어서 유숙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이었다. 그래서 한량이 "날은 저물었고 주막은 없으니 청컨대 사랑방이라도 빌려
하룻밤 자고 가게 해주소서" 이렇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여인이 "정히 그
러시다면 사랑방 마루에서 쉬고 가셔도 무방합니다" 하며 응낙해 주었다. 이윽고
한량이 마루 위에 누워서 잠이  들까 말까 하였을 때였다. 그 때 약 15,6세 가량
되어 보이는 귀엽게 생긴 초립동이 소년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 한량에게 읍하고
꿇어 앉아 "제가 비명으로 원통히 죽어서 원수 갚을 길이 없더니 당신께서 마침
우리 집에 오시고 또 기력이  있으니시 원컨대 무인께서 저를 위하여 설한케 하
소서"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설한코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제가 본시 향읍
사람으로 이 집의 사위가 되어서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이로부터 멀지 않은 어
느 절에 나갔다가 엉큼한 중을 만났습니다. 그  절의 주승은 기운이 장사여서 우
리 집에 와서 저의 처를 통간하고 이로써 하룻밤에 끈으로써 나를 묵고 큰 돌로
나의 가슴을 눌러 절간 뒤의  큰 못에 집에 넣었으니 죽은지 이미 여러 해에 뼈
와 살이 썩지 않았습니다. 그 중이 지금 또한  안방에서 들어 앉아 제 처와 함께
자고 있으니 당신께서 이 원수를  갚을 길을 도모해 주신다면 삼가 결초보은 하
리이다" 라고 말하며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량이 놀라 깨어 일어나 앉으니
마음이 괴이쩍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한량은 가만히 걸음을 옮겨  담을 넘어
안방에 들어 간  즉 때마침 여름달이 밝아 대청  위에 평상을 놓고 비단 이불을
펴고 중간에 발을 드리우고 그  속에 덩치가 큰 한 사내가 미인을 끌어 안고 비
단 이불위에 누워서 코 고는 소리가 우뢰와 같거늘 한량이 보고 분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손에 아무  것도 든 것이 없어서 다시 나와  육량군전을 벌린 후
에 안쪽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곧 평사아 가에 와서 힘껏 활을 당겨 맹렬히 중의
배를 쏘니 화살이 중의  등을 꿰뚫고 상 위에 꽂히었다. 중이  큰 소리로 일어나
앉으려다가 거꾸러지거늘 한량이 이에 칼을 빼어 중과 여인의 여러곳을 찔러 함
께 죽이니 통쾌함을 금할  수 없었다. 한량이 곧 관가에 들어가  꿈에서 본 바와
살인한 일을 자수하며 또한 절 뒤 연못 가운데 소년의 시체가 매장된 일을 고하
니 사또가 곧 중과 여인의 시체를 검사하고 절에 와서 않아 사승으로 하여금 못
에 들어가 찾게  하니 과연 한 소년의 시체가  묶여서 돌에 눌려 있는데 면모가
산 것과 같아서 한량의 꿈 꾼 내용과  부합하였다. 드디어 후하게 매장하고 한량
도 포창하여 백방하였다.  한량이 밤을 세워가며 서울에 왔는데 그날이  과거 기
일인지라 잠시도 눈을 붙여보지 못한  채 과거장에 나간 즉 피곤하고 기운이 없
어 '이제 또 낙방 거자가 되는구나'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꿈 가운데 초립동이 소
년이 화살을 가지고 날아와서  오시오중케 하여주니 이에 한량이 장원으로 등과
하였다. 그  후에도 물론 내외 벼슬과  더불어 무릇 길경한 일에는  문든 소년이
나타나 지시하니 한량이 극히 부귀하게 되고 수복을 오래도록 누리었다 한다.

 

 

  큰 스님의 풍진세속 답사여행

  엉거주춤 양 다리 걸치는 이유
 

무릇 사람의 양물은 홀랑 벗겨진 것이 있기도 하고 머리가 감추어진 우멍거지
가 있기도 하단다. 옛날의 어느 날 강원  감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여러 기생들이
교방에 모여서 서로 한  마디씩 하기를 "이번 감사 사또께서도 양도가 벗겨졌겠
느냐? 아니면 우멍거지겠느냐? 그  어느쪽인지 알 수 없도다" 하고 떠들어 대자
그중 사또께 수청들기로  된 기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벗고 벗지 아니하였음은
내가 먼저  알 수 있을게 아니냐?"   이 말을 읍기가  훔쳐 듣고 대답해 말하되
"탈과 갑을 아는 데는 내가 아니고 누구랴?" 하고 나서니 군기들이 모두  손뼉을
치면서 꾸짖어 말하기를 "망년이로다. 너의 행실이여! 먼저 알 수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때 관노 한 놈이 앞에 나서면서 군기들을 향해
"내가 만일 그 사실을 먼저 아는 경우에는 그대들은 어찌 하려오?" 하자  군기들
이 말하기를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들이 사또를 맞는 연회석에서 그대에게  후한
상금을 드리리다" 하니 관노가  기뻐하여 말을 달려 십리 길에 나아가 두갈림길
이 있는 옆에 당도하여 새로 부임하는 감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감사가 당도하자
감사의 앞에  나아가 공손히 인사하고 이르기를  "폐주에 풍속이 있어 예로부터
전해옵니다. 여기 길이 두 갈래로 갈려 있사온  바 사또께서는 이에 당도하여 양
도가 벗겨지셨으면 윗길로 가셔야 하옵고 그것이 우멍거지시면 아랫길로 가셔야
하실 줄 압니다.  만약 이것을 어기신다면 성황신이 대노하여 성황당  안팎의 사
령 관노들이 말도 듣지 않고  불충할지며 뿐만 아니라 온갖 이속들이 영민치 못
하여 바보가 되어  버린답니다. 소인이 미리 아뢰옵는 것은 사또를  위하는 일편
충심이오니 원컨대 사또께옵서 재량하시기 바라나이다." 이 말을 듣고 감사는 어
이가 없는지라 말 고삐를 붙잡고  한참 있더니 눈을 지그시 껌벅이며 일부러 크
게 노하여 말하기를  "그게 대체 무슨 돼먹지  못한 풍속이란 말이냐?" 하고  한
번 꾸짖은 다음 그래도 안됐는지 "그렇다면 윗길로 가는 것이 옳으리라" 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말 위에서  중얼거리되 "무릇 사람의 양도는 비록 형제 간이라
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붕우의 사이라도 이를 서로 숨기는 것이나 이제 저 조그
만 관노 놈까지 아는 바  되었고 이리해서 온 고을이 다 알게 되었으니 내 이제
이를 속일 길이 없으나 그러나  내 또한 이와 같은 수법으로써 내가 받은 이 부
끄러움을 씻으리라  " 하고 벼르더니  부임 이튿날 아침에  영을 내려 말하기를
"너희들 대소이원들은 듣거라 오늘  나를 보러 들어노는 자는 마땅히 그것이 벗
겨진 자는  섬돌 위에 오를  것이며 우멍거지인 자는 뜰  아래에서 뵈어야 하렸
다!" 이에 그 품계를  따라 혹은 섬돌 위에 서기도 하고 혹은 뜰  아래에 내려서
기도 하였다. 그런 중에  한 사람의 이속이 한 발은 섬돌 위를 밟고  한 발은 뜰
아래에 놓은  것을 보고 감사가 "너는  웬일이냐?" 하고 물으니 "소인의  물건은
불탈불갑이온데 세상에서 이르기를 별양이라 하와 자라의 그것고 같사옵기에 그
어느 곳을 좇아야  옳을지 알지 못하와 이와 같은 형상을  지었소이다." 하고 그
사연을 아뢰니 감사가  웃으면서 "너희들은 이젠 다 그만두고 물러가렸다"  하고
인심 쓰듯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