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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의시인바람♬/[♡] 연꽃홍수

텅/정령시집[연꽃홍수]중 63쪽

by 정령시인 2013. 6. 11.

텅/정령

 

 

텅, 텅, 지금은 목하 묵언수행 중이다.

지엄한 호통도 간 곳 없는 암자 속 빈 목어도

석탑 아래 바람도 죽비 맞던 수행승처럼 참선을 하고,

노란 저녁 햇살도 내려와 합장한다.

목탁소리 불경소리 만행 다녀온 바랑인양 주저앉는 산의 어깨,

이슥한 밤 작은 벌레의 움직임에도 가위 눌리다.

허물 같은 이부자리 머리맡 창문이 파랄 때 눈을 비빈다.

가스불을 켜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는다.

엘리베이터 층간불이 바뀌면 밋밋한 얼굴이 화사해진다.

자동차의 문을 열고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커서가 깜박이고 손가락이 자판을 두들긴다.

목도리를 두르고 전철의 손잡이를 잡는다. 

사방에 흩날린 시간들로 밤마다 묵언수행하는 오늘,

의중을 헤아린 관세음보살 마음그늘에 길을 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