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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의시인바람♬/[♡] 연꽃홍수

칼/정령시집[연꽃홍수]중 66쪽

by 정령시인 2013. 6. 10.

칼/정령

 

 

 

 숨이 다하던 날이었다. 몸의 일부가 구부러져 펴려는 순간, 

따개도 없이 깡통의 아가리에 칼끝으로 찌른 게 화근이었다.

도마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니, 넉넉한

웃음으로 섣불리 다가가 영영 사라져 버린 이도 종종 있었다.

태풍이 쓸어간  그 자리에는 푸성귀도 나지 않았다. 난도질

당한 이들은 저마다 입을 다물고 맞치기조차 두려워하였다.

 그러더니 오늘, 하늘이 노랗다며 이마를 짚고 쓰러졌다.

부고장은 간편하고 쉽게 문자로 왔다. 발 빠른 이들은 문상

간다 품앗이한다 조문객을 맞는다. 몇몇은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다며 대신 조의를 표했고, 늘 곁에서 따르던 이만 엎드

려 절했다. 회오리치고 풍파를 일으키던 마지막 길이다. 자

리마다 가지런한 나무젓가락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고 취

기 오른  빈 술잔이 털썩 주저앉는 시간. 향을 사른 연기가

허공을 메우고 갈 곳 잃은 날파리 한 놈 찾아와 술 한 모금

마셔도 휘이 내저을 손이 없다.

 마주한 상주가 잔을 받으며, 쓰러진 채 말도 못하고 숨을

두었다고, 시퍼런 날을 세워 활개를 치고 기고만장하던

당찬 얼굴이 영정사진 속에서 나를 보고 장지까지 와 달라

술청탁을 한다. 못내 한 줌 흙으로 대신하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눈발이 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