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령이詩발표♬/[♡] 계간문예지

아라문학(2016가을호)-근작조명(김설희)/정령의 시읽기

by 정령시인 2016. 11. 11.

 

 

 

 

근작읽기>

거침없이 숨을 불어 넣어주는 존재

김설희 시인의 근작시

 

                                                                    정령

 

 

비 그치고

수척하던 지붕이 부풀었다

지하도 언저리에 삼각그늘이 생겼다

 

그 그늘에 꽃이 피는 날은 일 년에 며칠뿐

박스에 누워도 이끼는 축축하다

알코올 향이 꽃술을 내민다

 

밤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그들의 눈동자는

어떤 경고음에도 초롱초롱하다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이 이끼들의 잠이다

잠 밖에서 잠들 궁리를 하는 사람들

 

물기에서 더 푸르게 번져가는 습관으로

사지에 가늘어진 핏줄을 일으켜 세워야한다

 

알몸은 다른 알몸을 경계하지 않는 걸까

어깨가 닿지 않아도 후끈하다 (2015. 다시올 가을호)

―「이끼

 

 이끼」는 폭 넓게 확장했다가 간결하게 수축하는 상상력 속으로 다양하게 드나들며 고도의 시각적, 후각적 이미지를 열어놓는다.

 김설희 시인은 우리들의 기억속에 어설프게 떠오르며 시인이 존재하고 있던 이미지에서 또 다른 새로운 존재들의 솔기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채 지하도 입구 계단에 드러누워 꿈을 꾸는 듯 한 어떤 노숙인의 모습이다. 꼭 이 시의 한 대목 같다.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이 이끼들의 잠이다/잠 밖에서 잠들 궁리를 하는 사람들', '알몸은......후끈하다 습하고 그늘진 곳에 웅크리고 있던 이끼, 그 안에 잠들어있는 노숙인, 그의 눈동자가 유일하게 꽃으로 필 수 있는 박스 안에서도 축축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꽃술'을 내민 '알코올향기'는 매우 인상적인 풍경이 아닌가.  후각적 이미지 속에 감추어둔 또 다른 향기가 있다. 그것은 시인의 언어적 향기이다. 이러한 시인의 언어적 향기는 하찮은 것에도 배려를 할 줄 아는 관심어린 심미안이 되고, 이러한 심미안은 작고 미세한 것들에게도 거침없이 숨을 불어넣어 준다. 다음의  「펜플루트」에서는 그의 언어적 향기가 더욱 짙게 나타난다.

 

 

나무들이다

뿌리 없는 마른 나무

 

그의 입술이 닿자

어느 쓸쓸한 오후의 바람소리가 난다

 

저 죽은 것의 심장에

무엇이 건너간 것일까

 

톱날에 잘려지던 때

내지르지 못한 단말마의 숨이 저리 순하게 삭은 것인가

 

어디 깊은 데서 솟아오르는 샘물소리 같다

횡격막을 가로지르는 소리

 

고공 타워크레인에서 아슬아슬 흔들리던 비정규직같이

아득한 터널을 헤쳐 나오는 소리

 

잘려진 것들은 소리가 된다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된다(2015 아라문학 봄)

―「펜플루트

 

 

  생명이 없는 것들로 하여금 살아 숨쉬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 시인은 뿌리없는 마른 나무에 횡경막을 가로지르는 펜플루트를 만들어 연주한다. 시인은 펜플루트의 연주소리를 통해 고공 타워크레인에서 아슬아슬 흔들리던 비정규직같이/아득한 터널을 헤쳐 나오는 소리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의 아슬아슬한 인생의 고비를 넘는 소리로 연결 짓는다. 마치 신의 손길이 건너간 자리마다 꽃이 피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퍼지는 세계처럼 펜플루트의 소리로 내지르지 못한 단말마의 숨이 저리 순하게 삭은 것인가탄식하는 비정규직들의 고된 삶의 목소리를 단 한 줄 문장으로 대비시킨다. 노동자들의 횡경막을 가로지르는노래 소리로 바꾼 것이다. 펜플루트는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며 요동을 치게 하는 신비스런 악기이다. 그 연주소리는 머나먼 타향에 와 듣게 되는 억센 삶의 소리이기도 하고, 이제 막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시멘트바닥을 걸으며 집으로 향하는 노동자의 마음을 훑듯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또한 두고 온 고향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며 휴식을 취하도록 만드는 소리이기도 하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헛헛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그들의 삶은 토막토막 잘려진 것들이 되어 소리가 되고 노래가 되듯 펜플루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깊은 그 울림에 코끝이 찡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물을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듯 보이는 신의 시적 사유가 심연에 닿아 심금을 자극하는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음 시를 읽으면 울림이 떠난 울음을 도토리 하나로 표현해 내는 시인의 뛰어난 필력을 엿볼 수 있다.

 

 

허공을 찢으며 거처를 바닥으로 옮기는

도토리 하나

 

투둑

 

첫발 부딪힌 바닥에서 간단히 운다

흘러내릴 때 흔들렸던 몸이

울음의 뿌리다

뿌리를 중심으로 울음들이 파문처럼 번져간다

 

울음의 고리에

겨울을 불러들이던 찌르라미가 멈칫한다

밟힌 낙엽이 몸을 뒤튼다

나무에 간신이 매달린 나뭇잎이 오슬오슬 떤다

 

멀리 갈수록 가늘어지는 울음들의 꼬리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귀 작은 벌레들이

가을을 물고 뜀박질 중이다

 

노을이 다가올 시간이다

울음의 결을 벗어난 것들의 울음이 점점 커져간다(다층 2015겨울호)

―「울음의 거리(距離)

 

  시인은 하찮은 것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울림을 주는 존재이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구사하는 평이한 단어로 도토리의 마지막을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뜀박질 중이라는 표현으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내고 있다떨어져가는 생명의 울음소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나서는 시인의 순수한 열망이느껴진다. ‘울음의 곁을 벗어난 것들의 울음이 점점 커져가는것처럼 시인의 필력도 점점 자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의 시 산이 건너왔다를 읽으면 구체적 사물에서 점점 시야가 넓어져 멀리 자연환경에 눈을 돌리는 시인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이 무차별적인 개발과 산업화에 떠밀려 더 멀어져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속을 다 비운 산이 어디 먼데를 돌아 제자리로 왔다

빈 항아리처럼

 

그가 흘린 것들이 무엇인지

어디를 돌아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신의 가랑이를 슬쩍 지나간 바람 같은 것

당신의 정수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다 간 구름 같은 것

교통사고 현장에서 누군가의 피를 밟고 지나간 발자국 같은 것

 

그런 시간들이 그의 속이었을까

 

세상 감옥을 벗어난 물렁한 산 하나가 누워있다

산맥 같은 핏줄이 얇은 살가죽을 들고 일어선다

가죽의 파랑사이 흙냄새가 물씬 솟아난다

헐거워진 아랫도리에서 계곡 물소리가 찔찔거린다

 

속을 다 버린 산에는 슬픈 새소리마저 사라졌다

벌거숭이, 누가 어디를 만져도 부끄러움이 없다

 

헐렁한 산은 이제 눈을 감고

지나온 대지에 깊숙이 뿌리를 박는다

그리고 산은 다시 산으로 건너갈 것이다(스토리문학 2015겨울)

―「산이 건너왔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삶은 그로부터 멀어져만 간다. 그는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을 담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속을 다 버린 빈항아리로 돌아온 산을 두고 인생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인생살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다시 자연이 되는 돌고 도는 인생살이가 덧없음을 덤덤한 시각으로 노래하고 있다. ‘속을 다 버린 산에는 슬픈 새소리마저 사라졌다/벌거숭이, 누가 어디를 만져도 부끄러움이 없다죽음 직전에 이르면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정작 더 이상 부끄러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거리낌없이 다시 봉분을 만들고 작은 산으로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딱따구리도 집을 짓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뻘 뒤지는 어부처럼 삽질을 해댄다

삽날에 잘려진 시간이

껍질을 뚫고 나무속을 파고든다

박속을 끄집어내려 구멍을 내 듯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찔러댄다

 

벌레를 낚으려는지

새끼를 낳으려는지

 

서 있는 뻘 한그루와 부리가 맞닿는 정점에서

뼈 닳는 소리

들창을 돌아나가는 세레나데 같이

잎과 잎 사이 머뭇거리다

절벽 아래로 산산이 부서진다

 

겨드랑이 같은 오망한 집 한 채 생긴다

 

비바람 피할 수 있는 곳을 장만한다는 것은

저렇게 수만 번 부딪쳐

주둥이 근처 센털이 닳아 짧아지고

뾰족한 부리가 뭉툭해지고

뼈가 녹고

몸이 야위어져 작아진다는 것

 

그러나 생은 뜬금없어

사그라진 살과 뼈가 만들어 낸 그 집에

처음 보는 오색뻐꾸기가 살아가기도 하는 것(2016 리토피아 봄호)

―「딱따구리

 

  시인은 삶을 통한 사유를 빌어 말하고 있다. 딱다구리가 주는 일련의 행동들을 시인의 눈을 통하여 관찰하고, 관찰한 그 결과물을 가지고 독자로 하여금 삶을 재조명하도록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한 컷 한 컷 상상할 수 있도록 짜여진 시이다. 그러나 생은 뜬금없어/사그라진 살과 뼈가 만들어낸 그 집에/처음 보는 오색뻐꾸기가 살아가기도 하는 것 뻔뻔하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 자아가 아닌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재조명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가끔은 내가 아닌 타인으로서의 삶을 통하여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이루기도 하고 국가를 이루기도 한다. 시인은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없이는 쉬이 살기 힘든 우리들의 삶을 꼭 닮은 딱다구리의 일상을 통한 관찰로 묘사되었다손 치더라도,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삶을 통해 얻어지는 진실은 노동자의 댓가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삼 십대의 실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천만고령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야하는 것인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시편들이다. 노동 후 돌아가 잠시 휴식할 안식이 가족이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 함께 있을 때에 작은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런 속에서 숨을 쉬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섭리를 깨닫게 한다. 굳이 저명한 이들의 말을 빌리거나 업정한 논리를 적용하여 말하지 않더라도 그는 우리들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 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빈 몸으로 와 딱다구리처럼 사그라진 살과 뼈가 만들어낸 집에 살다가 속을 다 비운 산으로 건너가야 한다.

 

정 령2013<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연꽃홍수].[크크라는 갑], 막비시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