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미물도 살아 숨쉬게 하는 힘
- 윤종환◀별빛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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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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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사물을 보는 심미안이 있어야한다. 이런 논리를 잘 지키는 시인이 있다면 윤종환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주변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을 소재로 가져와 새로운 의미로 부각시켜 우리들의 삶을 조명한다. 자연적인 힘에 부스러져가는 인생살이를 주변의 사물과 연관시키면서 문명이 만들어놓은 일상의 도구들을 차용하여 우리들의 삶을 재확인하였다. 끝내 우리는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빨래집게에 비유한 작품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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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등 떠밀려 떠나려는 옷가지
악착같이 잡고 있는
빨래집게의 숙명처럼
끝자락 붙잡는 가냘픈 울음은
맞물린 주둥이 사이로 새어나올 수 없다
그 입을 벌리면
그 말을 뱉으면
언제든 당신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
이름 모를 나락에서 묻은 먼지
혹여나 얼룩으로 번질까
마르지도 못한 가슴에 다시금 떼가 묻을까
집게는 입을 다물 뿐
소리 없는 악력으로 그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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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게의 가슴을 간통한 줄은
빛바래지고 때가 묻고 강풍에 깎여나가고
세월의 풍파를 맞은 조언자처럼
바람 부는 대로
마치 그를 놓아주라는 듯 집게를 흔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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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잡을 수밖에 없는
비운의 숙명은
어떻게든 그곳에서 버틸 뿐이다
―「빨래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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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빨래집게라는 소재를 빌어 ‘그 입을 벌리면/그 말을 뱉으면/언제든 당신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 라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어설프게 떠오르며 잊혀지지 않을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적 사건들 몇 가지를 떠오르게 하면서 입조심을 시킨다. 시인이 존재하고 있던 그 자리에서 본 그대로 존재하고 있던 다른 사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쩔 수 없이 ‘비운의 숙명은/어떻게든 그곳에서 버틸 뿐이다’라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버텨내라고 한다. 따라서 시인은 죽었거나 멀어져가는 사물의 재인식화를 통해 삶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엿보이는 시로 이번 시집을 가득 채웠다.
인생은 외로움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이 뼈 속까지 느껴지는 또 다른 작품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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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주말이 찾아오면
같이 쓰던 우산은 허리가 시렵습니다
오랫동안 우산을 펼치지 않으니
철사 마디마디에는 습기가 차있고
우산의 가슴도 멍들어갑니다
부식한 뼈마디는 그렇게 시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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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주말이 찾아오면
나는 그대의 우산이었습니다
커다란 우산을 들면
나는 또 다른 우산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 당신을 품었습니다
어쩌다 젖어버린 한쪽 팔 한쪽 옆구리
습한 옷자락 닿을 때마다 찝찝했지만
그때는 젖은 지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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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랗게 펼쳐진 우산은
그대를 모든 빗물로부터
오롯이 막아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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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나날은 더는 못 쓰는 우산처럼
돌돌 말려 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발이 함께 걷던 땅을 기억하듯
우산꼭지는 함께 걷던 하늘을 기억합니다
그대의 우산이었기에
내 머리는 우산꼭지입니다
왜 비오는 주말 하늘이 이리도 캄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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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주말이 찾아오면
홀로 우산은 뼈 속까지 시렵습니다
허리가 시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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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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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주말이 찾아오면’ 특히 봄비가 내리는 생동감 있는 주말이라면 생명이 없는 것들마저 살아나게 만든다. 나무들의 시린 뼈들도 추스르고 가지의 허리를 펴는 등 이따금 살아 숨 쉬는 때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오랫동안 우산을 펼치지 않으니/철사 마디마디에는 습기가 차있고/우산의 가슴도 멍들어갑니다/부식한 뼈마디는 그렇게 시렵습니다’하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외로운 심정을 홀로 달래며 지내어 온 듯말하고 있다. 한동안 만나왔던 연인의 우산으로 ‘젖은 지도 몰랐습니다’로 흠뻑 빠져 지내다가 ‘모든 빗물로부터 오롯이 막아야했습니다’하여 책임감과 염려로 살아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제는 비 오는 주말이라도 헤어진 연인과는 만날 수가 없다. 그러니 나갈 일이 막막하고 그저 돌돌 말린 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만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직조한 ‘시린 우산’은 시인의 세계이자,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가치관이 곡진하게 용해된 노래라 하겠다.
시인은 외로운 직업이다. 늘 시어들과 싸움을 해야 하고 밀린 마감일을 맞추어 시를 쓰다보면 시인의 시간은 늘 돌돌말린 우산처럼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시인의 심상이 잘 그려진 시다.
시인은 늘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사물이 나타내는 시인의 심상은 어떠한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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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말려있다
달팽이관처럼 돌돌 말려 있는 철사줄은
귀처럼 종이 머리에 붙어있다
작고 얇은 것이 연골같이
휘어질 듯하면서도 단단히 매달려 있다
아마 숨겨진 비밀을 듣지않을까
종이의 탄생
종이의 삶
그 위에 그려진 시꺼먼 역사부터
화려하게 인쇄된 추억의 순간까지
쉽게 듣지 못하는 낱장들의 이야기
클립은 한데 모아 듣고 있다
흩어져있던 홑 장들을 하나로 모아다
소리를 증폭시켜 경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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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것이,
이 작은 귀는 재활용 된다
어떤 날에는 두꺼운 것
어떤 날에는 염색된 것
또 어떤 날에는 죽었다 살아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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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배경에 상관없이
어느 데서든 제 역할을 하는 귀
붙었다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모든 종이 숨소리를 듣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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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이 무엇들을 묶는 순간
뭉쳐진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고
또 하나의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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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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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같은 하찮은 것에도 생명의 울림을 불어넣어 세상의 말을 듣게 한다. 그에게는 이처럼 존재의 무용성을 유용성으로 변화시켜 소중한 존재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사물이 가지는 본질을 시각적 포멧에 담아 평이한 이야기로 토해놓는다. ‘모든 종이 숨소리를 듣는 귀’라는 말로 클립의 생존여부를 가늠하여 ‘뭉쳐진 것들은 하나의 이야기고/또 하나의 삶이 된다’ 하며 사물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사라져가는 생명들에게조차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의 순수한 열망이 박혀 있다. 주변에 눈을 돌려 죽어가는 사물들의 존재에 대한 창조적 언어구현과 다채로운 구성력은 그것들을 우리 곁에서 염연히 살아 숨 쉬는 존재감으로 승화시켜주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섬세한 관찰력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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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내 몸에
서른 번째 가시가 돋아났다
붉은 내 모습 지켜야하는
무거운 책임감 하나 더 튀어나온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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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스쳐가는 구경꾼들은 모른다
당신들에겐 그저 날카로운 무기
내게는 응어리진 삶의 바늘조각
매년 늘어가는 가시에 허리는 굽어가지만
얼굴은 변함없이 붉다
그래서 내 이름이 장미다
나를 얕잡아보다 찔린 손가락위에
눈물처럼 글썽이는 선홍빛
고의로 찌르고 싶지는 않았다
스스로 자라나야하는 본능일 뿐
줄기 마디마디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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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개의 가시들 속에는
붉은 향기가 스며들어 있다
이것들이 있어 나 역시 숨을 쉰다
어느 것에는 친구들이
어느 것에는 꿈꾸는 한 소녀가
꽃잎처럼 따스하게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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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른 번째 가시
이것으로 나는 아름다워진다
당신에 대한 경계가 아닌,
간직하고픈 내 모습 그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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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서른 번째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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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안이 틀림없다. 장미에 돋아난 가시의 수를 세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자연의 일부마저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삶에 가져와 자연스레 빗대어 놓는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삶은 ‘나를 스쳐가는 구경꾼들’로 하여금 나를 지켜 내야하는 숙명인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에겐 그저 날카로운 무기/내게는 응어리진 삶의 바늘조각’으로서 ‘매년 늘어가는 가시에 허리는 굽어가지만/얼굴은 변함없이 붉다/그래서 내 이름이 장미다’ 하고 자신을 내 보이는 것이다. 그는 그 가시로 우리의 인생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자신의 젊은 날의 ‘나의 서른 번째 가시/이것으로 나는 아름다워’ 졌고, 성인사회에 적응해나가는 자신을 ‘당신에 대한 경계가 아닌,/간직하고픈 내 모습 그 일부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서정적 메카니즘을 사용하기보다는 흔히들 빠지는 언어의 자폐에서 벗어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차용하여 표출해내는 젊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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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씻지도 않은 주둥이에
내 몸을 헌신하는 것이
탄생의 목적이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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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이빨마저 벌려놓는
씹는 것에 대한 욕망
그 사이에 끼어있는 잡식성 잔인함
그것을 후벼 파는 것이 오늘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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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엄지와 검지에 짓눌린 채
벌어진 틈새로 내 머리를 처박고
부식된 찌꺼기들이 얽힌 공간을
뾰족한 혓바닥으로 핥습니다
그러다 혀가 닳아버리면
온몸을 써서라도 모두 긁어내야 합니다
당신의 온전한 쾌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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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나를 잔인하게도 굴려 먹지만
더러운 이빨 사이에 껴
죽어서라도 살아보겠다고 저항한
수많은 음식물들의 잔해
그들을 보니 침묵할 수밖에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에 죽어간
수만 생물들의 시체
그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이쑤시개
삶의 존재를 원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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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뚱이의 날카로운 부분은
불현 듯 포악한 당신의 잇몸을 찔러
피비린내 맡게 하라는 천명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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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이빨 사이 선홍빛 허약함
이기심 사이 숨어있는 두려운 잇몸
짜증이 나면 찔러버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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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도 버려질 몸
당신의 주둥이에서 숨진 영혼을 긁다
썩은 내 풍기며
시체처럼 던져지는 처참한 하루살이
이것이 탄생의 목적이라 배웠습니다
당신의 온전한 쾌감을 위하여,
그래서 뭐라도 찌르다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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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쑤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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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쓰고 버릴 이쑤시개가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을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를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문제를 재조명하도록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갠지스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더러움 속에서 ‘당신들의 씻지도 않은 주둥이에/내 몸을 헌신하는 것이/탄생의 목적이라’ 배웠듯이 갠지스 강에 ‘썩은 내 풍기며/시체처럼 던져지는 처참한’ 인생을 우리는 지켜보며 그 강물에 몸을 씻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생의 ‘온전한 쾌감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주저없이 ‘뭐라도 찌르다 가야겠습니다’하고 삶의 당당하고 저돌적인 태도를 상상하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음을, 자아가 아닌 타인의 삶으로 인해 나를 재조명해 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사 주변에서 만나는 일상의 사물들을 관찰하여 삶을 재조명했다손 치더라도, 그가 말하고자했던 삶을 통해 얻어지는 진실은 부단히 노력하며 주위를 살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리라.
윤종환 시인의 시편들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어 통찰력과 존재론적 사고에 입각한 사물들로부터의 시적 깨달음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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