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 10편을 특집으로 게재하고 싶다는
연락을 올 봄 3월에 받았었다.
무려 10개월의 작업준비기간이 걸렸다.
작품이야 써놓은것도 있었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신작도 넣었다.
두달 여간의 이메일대담으로 약간은 설레는
작업도 이어졌다.
작품이 실린 책을 받고 보니
내가 무슨 방송출현이라도 한 것처럼
약간은 부끄럽고 또 조금은 어깨가 뻐근해졌다.
이 일을 시작으로 정령이라는 이름의 시인이
얼마나 노력하는 시인인지
얼마나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지
더많이 지켜봐주고 많은 응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큰 희망을 걸어본다.
다시 한 번 이런 멋진 기회를 주신
신생이라는 시전문계간지 임원진여러분과 편집위원님들,
그리고 이메일대담을 잘 정리해주신 이재성작가님과
작품론을 너무 좋게 써 주신 김참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어쩌다 외 9편>
어쩌다
끈 떨어진 커튼이 펄럭인다.
열 받은 전깃줄에 새들이 비비거린다.
푸른 바람이 마르도록 울음소리가 탄다.
놀란 나뭇잎이 가로등을 깨운다.
적막과 밝음 사이에 어쩌다 와 있다.
시간이 오슬오슬 흘러간다.
빛의 그림자가 고양이가 되어 웅크리고 있다.
끈 떨어진 커튼이 문득 새를 바라본다.
전깃줄을 넘다가 바람이 새들을 건드린다.
태양의 비명이 낭자하다.
목젖이 타들어가고 가로등은 나뭇잎을 재운다.
어둠과 고요 사이에 어쩌다 와 있다.
자자, 나비야
빛깔에 끌리기로 하자 아침에는
주홍빛의 능소화 노란 금계국 붉디붉은 찔레
빙빙빙 후리며 돌다보니 겨드랑이가 결린다.
날갯죽지가 뻑뻑하다.
향기를 따르기로 하자 저녁에는
붉은 장미 바라보다가 코가 따갑다.
목련꽃 핀 자리에는 아련한 어머니의 냄새
고상하다는 튤립 옆에서 어깨를 편다.
옆집 누이 치마속이 궁금해지는 명자꽃 정강이가 가렵다.
달개비꽃길 따라 맴맴 돌다가
보르르 날개를 접고 숨을 고른다.
쑥부쟁이
하지에 볼살이 부풀어 오른다 그 볼살 금방이라도 터질라 말라가는 다리가 허리가 바람을 탐하고 몸을 비튼다 하지는 밤에도 살아나 달빛을 가린다 뜨거운 속을 밤새 뒤집는다 햇살을 밥 대신 오물거린다 진딧물이 살 속을 파먹고 성긴 바람이 잠시 머물다 잠을 잔대도 어깨라도 비워 몸을 내어준다 가지 마라 붙잡다가 오지 마라 보냈다가 비튼 몸, 꿈속으로 걸어가고 달 속으로 달려가고 별 속으로 뛰어가 오래오래 머물러라 설핏 바람 한 줄기 지나다가 부푼 볼살에 홀리면 연자줏빛 짧은 혀를 내밀고 바람의 엉덩이를 핥는다.
즐거운 쉰
달이 지면 태양은 다시 떠서 꽃을 피우고 향기로 날아온다. 나비가 오고 꽃은 흐드러지고 또 다시 달은 차고 다시 이운다. 다달이 달도 뜨고 지고 꽃들도 노래를 지어 부른다. 노랫소리가 희미해지고 달빛도 가려지면 들리지 않는 비명으로 서서히 잠잠해진다. 가로등 불빛도 지쳐 눈을 감는 정거장, 바람소리마저 버스를 재운다.
주인을 버리고 짓이겨진 광고지가 하얗게 죽은 거리, 말라버린 나뭇잎이 바스라져 까끌까끌한 보도블럭을 살비듬이 되어 덮는다. 꽃은 피지 않을 것이고 달도 차지 않을 것이다.
쉰을 막 넘긴 거기, 데워진 달이 열꽃으로 피어나고 피어난 열꽃은 줄기마다 갈라져 타는 목마름으로 뜨거운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미세한 모세혈관들은 물줄기를 찾아 허덕이며 온몸을 흔들어 깨운다.
데워진 달이, 피어난 열꽃이, 요동치는 심장으로, 간절하게 고개를 든다. 젖은 달빛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달맞이꽃이 노랗게 반긴다.
적요
시간이 꽃잠을 자고 그림자가 오수를 낳으면 사아삭사아삭, 개미가 빵조각을 앞발로 굴리며 간다.
바람이 태몽을 꾸고 공기가 몽정을 하면 어기적어기적, 달팽이가 더듬이를 세우며 돌아본다.
고요가 만든 달팽이관을 따라 고막이 거미줄을 치면 뒤적뒤적, 노인이 담배쌈지 뒤지며 담뱃불을 찾고,
한숨이 지나간 폭풍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소리 없는 기적을 울리면 부스럭부스럭, 신혼부부가 옆방에서 꿈나라 여행을 간다.
냇물이 마르고 꽃이 꽃잎 속으로 노을을 거두어들이면 안으로안으로, 지친 몸뚱이가 꽁꽁 얼어붙는다.
사무친 사람들이 적요의 얼굴로 생생해진다.
군자란
―치매입담·3
누구 먹으라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누. 상다리가 부러지나 엄마 다리가 부러지나 볼라고요. 아서라, 상다리 부러질라. 상다리가 부러지나 엄마 엉덩이 올려보지요. 내 엉덩이로 상다리가 부러진다고. 그럼요, 요만한 감자보다 엄청 크잖아요. 얼레, 엉덩이가 삐져서 뿡 소리를 내잖여. 그럼 탈탈 털고 엉덩이만 빼고 앉아요. 넘치도록 담지 말랬더니 엉덩이를 빼고 앉으라고. 주홍색 꽃무더기가 해 난 쪽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다.
붉은 버지니아풍년화
―치매입담·4
덜거덕덜거덕 오토바이가 으르렁대며 달려와 선다. 누룽지맛 사탕이 가슴에 안겨 부스럭거리며 떠든다. 당이 어쨌다고 그만 하라고, 북어포 너댓 봉지가 갈비뼈를 드러내고 가만 있으라며 웃어젖힌다. 속이 시원하네 암말 말어, 매운맛 컵라면이 빙 둘러 앉아 몸에 좋은 건 하나도 없다 투덜거린다. 고만해 다 내가 먹을 거라고, 털썩 앉은 불룩한 배에 고래를 태우고 당으로 꽉 찬 공기를 빨아 마시며 벌겋게 달아오른 혈압으로 버럭 내지른다. 하루벌이가 누룽지맛 사탕처럼 달달하다가, 북어포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다가, 다 불어 터진 면발처럼 뚝뚝 끊어진다. 불거진 볼에 심통이 가득 차서 벌떡거리며 고래를 걷어찬다. 그만해요 아버지, 버지니아풍년화가 마른 잎사귀로 살살 흔들어 말린다.
하얀 홀아비바람꽃
―치매입담·5
고혈압 당뇨에 안 좋다는 것만 잔뜩 장을 봐온다고 큰 소리로 나무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와서는 일손을 놓았다. 밤새 애끓이다 잠 한숨 못 이루고 찾아가니 어제의 일은 까맣게 잊고 새롭게 보시고는 탕수육을 참 잘도 드신다. 맛있죠? 맛없어. 살살 녹죠? 안 녹아, 임자도 얼른 먹어 맛있어. 임자까지 챙겨가며 싹싹 다 비우신다. 불룩 나온 배에 탕수육이 헤엄친다고 틀니를 덜그럭거리며 웃는다. 또 와, 네가 젤 이쁘다. 버석거리는 손가락이 머리칼을 무디게 쓸어내리며 박하사탕을 내민다. 오도독오도독 홀아비바람꽃이 하얗게 핀다.
노란 애니시다
―치매입담·6
엄마 이 애 알죠?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집이는 나 알우? 아유 어머니 저는 알죠 바로 옆집 살았잖아요 그랬구먼요 몰라보게 예뻐지셔서요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잖아요? 엄마 다시 봐 봐요 얘는 뻐드렁니에 가재미눈이에요 그런 말 마요 얼굴 살이 포동포동하고 살결 보드랍고 눈도 작고 얼굴도 주먹만 하고 이만하면 예쁘지요 엄마 나는? 뉘신가 이 분보담 못해도 마음씨 하난 곱지요 뉘 집 엄마인지 마음씨 하나는 비단결처럼 곱기도 하지요 어머니가 최고로 고운데요 거봐요 몰라보게 예뻐졌지요? 노란 애니시다가 살살 고개를 든다.
백목련
상복 위에 투둑 하얀 목련이 피었다
겉저고리 밖으로 상주 대면할 때마다 피는 것을
옷섶에 뽀얀 젖무덤, 목련처럼 매무새가 열렸다
가는 길조차 목련 피우고 가는 저 야속한 사람
저 사람이 생전에 잇몸 하얗게 웃더니
삼년 병수발 목련처럼 웃으라며 피었다
이메일 대담내용>
정령 시인과의 e-mail 대담 (2017년 계간 ≪신생≫겨울호 73호)
풋풋한 사과 한 알, 익어가기까지
이재성 안녕하세요! 이번 ≪신생≫ 겨울호 특집 시에 관한 e-mail 대담을 맡게 된 이재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시를 쓰셨습니다. 시를 통해 맺어지는 인연, 한 사람의 독자로써 작품을 통해 정령 시인을 알아 간다는 것, 더욱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웃음).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아, 그리고 정령은 본명인가요? 필명인가요?
정령 안녕하세요? 먼저 저의 졸시를 ≪신생≫ 특집에 게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정현종 시인의「방문객」이란 시를 들어 어마어마한 인연으로 맞이해주시니 더욱 영광이고 앞으로 더 열심히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내년 세 번째 시집을 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동안 열심히 써놓은 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정령은 저의 필명입니다.
이재성 아, 정령이 필명이셨군요. 이번 e-mail 대담을 준비하기 위해 두 권의 시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했습니다. 물론 전화나 만남 이전에 포털 사이트를 통한 검색이었습니다. 녹색 창 및 여러 곳을 ‘정령 시인’으로 검색했습니다. 물론 정령 시인 관련 기사가 주를 이루었지만, 상상 속 정령, 그리고 연계되어 음유시인이 검색 되었습니다. 그래서 혹, 필명을 ‘정령’으로 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계간지인 ≪리토피아≫ 신인상을 통해 등단. ‘막비시’ 동인으로 활동 중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토피아≫는 창간사를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소통연구소’의 ‘막비시’ 동인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정령 시집을 사보셨다고 하니 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필명 정령은, 등단 무렵 선생님께서 제 고향 앞개울 이름이 죽령천인 것을 알아내시고는(사실 저도 제가 살았던 개울이름은 알려고도 안했고 관심도 두지 않아 몰랐습니다만,) 가운데 령만 따서 붙인 것입니다. 고향의 기를 받도록 하신 듯한데, 저는 외자인 것도 좋았고 발음도 좋아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 그렇게 많은 정령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정령’을 입력하면 ‘마비노기 정령’이 이미 인터넷 공간을 점령한 상태였지요. 지난번 계간 ≪미네르바≫ 봄호에 발표한 「정령들」이란 시는 이 인터넷 공간에서의 영역 차지하기가 소재였습니다.
대담 준비를 위해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막비시동인’이나 계간 ≪리토피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피셨다고 하니 감탄할 따름입니다. ‘막비시동인’은 대부분 계간 ≪리토피아≫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월 2회 모임을 갖고 합평회도 하고 시 지도도 받으면서 다양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편집동인으로 계간 ≪아라문학≫을 17호째 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비’의 의미는 한자로는 ‘莫非’이므로 ‘莫非詩’로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非詩’의 최고 경지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혹자는 ‘막비’를 ‘마구 쏟아지는 비’라거나 ‘마구 쓰다 버리는 빗자루’ 정도로 인식하기도 해서 재미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계간 ≪리토피아≫, 계간 ≪아라문학≫이 텃밭이고 주 무대여서 열심히 시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다는 것이 강점인 동인입니다. 그러다보니 계간 ≪리토피아≫, 계간 ≪아라문학≫을 발행하고 있는 ‘사단법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의 다양한 문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15년째 진행 중인 ‘창작시노래콘서트’, ‘아라포럼’, ‘김구용문학제’ 등의 행사를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이끌고 있습니다.
이재성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 시집『연꽃 홍수』(2014, 리토피아), 두 번째 시집『크크라는 갑』(2016, 리토피아). 등단 년에 1권, 2년 후 1권. 시집을 출판하셨습니다. 『연꽃 홍수』에는 71편, 『크크라는 갑』에는 87편의 시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평균 1주일에 1편정도 시를 써야 됩니다. 이는 시인으로써 많은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매일 시에 관한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봐도 될까요? 언제부터 시를 쓰시고 싶은 계기가 생겨나셨는지, 등단 전 습작의 시기도 얼마나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령 등단 전 습작시기를 말씀드리면 약간 가정사가 개입되어 식상한 핑계로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둘째아이를 낳고난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너무 많이 아픈데 아픈 아이를 껴안고 있으면 같이 아픈 것 같아 다른데 신경을 쏟아야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시였던 것 같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계기는 아이학교의 어머니교실이 처음이었고, 그 다음이 지역의 ‘여성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쓰다 보니 ≪리토피아≫라는 계간지와 만날 수가 있었고, 그곳에서 주간이신 장종권 선생님의 지도와 도움으로 시다운 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등단 후 그동안 써놓았던 습작들을 다듬어 첫 시집『연꽃 홍수』를 발간하게 된 것이고요. 그 후부터는 매일매일 시만 생각하면서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첫 시집 속에는 10여 년 동안 써두었던 작품들이 주로 실리게 된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 안달했고, 그렇게 뜻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작품들을 모아 두 번째 시집『크크라는 갑』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일주일에 1편 정도는 써보려고 수없이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재성 전혀 식상하지 않습니다. 시의 동기가 치유에 있다는 것에 저도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시간적 깨달음에 대해 ‘아프니까 병원가라’인 현실적 공감으로 바뀌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웰빙’을 넘어 ‘힐링’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명 그 속에는 위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질문 드리겠습니다. 『연꽃 홍수』에서 시인의 시세계는 「생활에서 피어난 생명의 넋」으로 박서영 시인께서 해설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크크라는 갑』에선「기원origin을 탐색하는 두 손; 알레고리allegory와 페이소스pathos」로 백인덕 시인께서 해설을 해 주셨습니다. 첫 시집에서 형식적으로 산문시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막힘없이 읽혀집니다. 구어나 동어반복, 의성어들이 산문적 율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서영 시인의 해설을 빌리자면 ‘정령시인은 자연에 대해서는 맑고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하는 반면 문명사회의 욕망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태도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으로 산문을 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더욱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두 번째 시집에서도 산문시의 경향이 보입니다. 백인덕 시인의 해설을 빌리자면 ‘이번 시집에서 정령 시인의 시적 수법 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시적 알레고리를 만드는 솜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신화나 전설, 민담 등을 소재로 차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산문시를 통해 작품의 내용의미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작품 속 사건의 서사를 표현하기 위해 혹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위해 산문을 많이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정령 제가 쓰고 있는 시는 무언가를 특별히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고 대부분 본능과 감성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저의 시를 논리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제 시의 산문성은 아이에게 이야기시를 들려주고픈 어머니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픈 아이가 있어서 시를 접하게 되었고, 아픈 아이들에게 이야기시를 들려주어 밝고 희망적인 생각을 품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산문성을 더 깊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시를 읽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공감하며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마음이 각박하고 심신이 외로울 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가 어려워 접어버리는 이들에게는 이야기로 다가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특히 저는 우리 고전을 비롯하여 외국의 고전들도 좋아합니다. 이솝이나 그림형제이야기, 안데르센동화나 탈무드에서도 소재거리를 찾는 편입니다. 그래야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우리가 시를 줄줄줄 외우던 시절처럼 시를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며 노래처럼 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재성 창작시노래콘서트도 함께 하시고 계신 것으로 보아 ‘마비노기 정령’의 실사 판이 ‘정령 시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무언가 있는 시는 정말 대단한 경지입니다. 시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인데요. 실험시가 주류를 이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형식의 변화를 통해 ‘서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물론 사용하는 단어도 시를 줄줄 외우던 시절의 ‘황금시대’와 다른 언어였지요. 이미 전부 적혀버린 시대에 고전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실험적인 시들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는데 한 가지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정령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의 연령층은 어떤지, 독자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셨는데 시를 쓰실 때 연령층도 고려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령 맞습니다. 저도 노래를 장르와 상관없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10월에 있었던 창작시노래콘서트에서 제 시 두 편이 노래로 발표되어 호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 말씀대로 형식의 변화를 통해 ‘서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고, 시어들도 이미 거의 모조리 사용되어버린 시대에 고전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으로 실험적인 시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여 지기 때문에 작가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또한 시인들 자신의 고유한 방식이 시를 통하여 표현된 기술의 하나라고 보여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연령층을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굳이 연령대를 가린다면 청년 중년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감대라는 것은 나이가 얼추 맞는 사람들끼리가 쉬운 것이라 곰곰 생각해보니 저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새삼 반성하게 됩니다.
이재성 이번 특집 시에는 ‘치매입담’이라는 부제를 단 4편의 연작시가 있습니다. 『연꽃홍수』「엄마의 치환」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각각 ‘군자란’, ‘붉은 버지니아풍년화’, ‘하얀 홀아비바람꽃’, ‘노란 애니시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권의 시집에서 나타나는 산문시를 직조하는 방법과 동일(시인의 스타일)하지만 상관물을 통해 마지막 방점을 찍으려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생활의 개인적 감정이 사건 혹은 서사를 통해 작품에 그대로 노출 되면서도 그 감정을 상식적으로 직접적 관계가 없는 상징을 통해 작품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문시에 제목과 마지막에 제목의 상관물을 표현함으로 써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시인의 창작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인께서 시를 쓰실 때 어떤 방법으로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작품은 퇴고의 결과물이지만 초고를 쓰실 때 어떻게 스케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령 저는 귀를 열어놓고 모든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혹은 아이들과 수업하는 중에, 혹은 친구들과 얘기를 할 때에도, 혹은 동아리모임 때에도 제 눈과 귀는 숨죽이고 주변의 말과 행동을 주시하여 살핍니다. 또 두 분 다 치매에 드신 친정어머니와 아버지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살피다보면, 새로운 단어가 떠오르고 그 단어를 가만히 되뇌다 보면 어떤 문장이 떠오릅니다. 마치 자동차가 꽝하고 부딪칠 때 반사적으로 생기는 현상처럼 머리를 탕 치는 언어와 문장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바로 메모를 하고 그 메모를 가지고 시를 쓰기도 합니다. 화가가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전시했을 때,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그 그림을 보고 첫 붓질을 어디서 했는지 마지막으로 색칠한 부분은 어디인지 신비스럽게 찾아가듯 시를 쓰는 것입니다. 저는 그림을 가지고 시를 써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감상하러 다니면서도 아직 그림을 보고는 시 작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림도 화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걸 보면 아직 저는 숙련된 시인은 아닌 듯합니다. 아직 배울 게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중 하나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일 시 쓰기 좋은 방법은 다른 시인들의 시작품을 열심히 읽고 필사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시집을 두 권 내고부터는 더 이상 다른 시인의 시를 필사하는 일은 자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많은 장르의 책들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하려고 합니다. 전래동화도 좋고, 전문서적들도 좋고요, 지금은 ?미술관 옆 인문학?이랑 ?토지?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다양한 읽기, 보기, 듣기, 말하기 등이 시를 쓰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재성 『연꽃 홍수』에 실린「눈부처」를 보면 시인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보통 등단작이나 첫 시집에 시인의 순수한 시세계가 많이 들어난다고 합니다.
네 눈 속에 사람 하나
서 있다.
네 눈 속에 그 사람
별처럼 반짝인다.
너를 가슴에 품은 사람
눈물 따라 똑 또르르,
나를 보내고, 너도 보내고,
보내고 보내도
네 눈 속에 아직
나 있다.
「눈부처」전문
시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어쩌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로 눈부처처럼 그들의 눈동자 속에 내가 있고, 나의 눈동자 속에 그들이 있는 관계입니다. 바로 가족을 통해 작품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관계 속 우리들의 삶은 서로 다르지 않지만 시인은 ‘눈부처’로 그들을, 또한 자신을 바라봅니다. 싸우기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하지만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두 번째 시집에서 소재 차용을 한 작품들을 통해 가까운 이야기들이 의미가 확장되어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들은 첫 번째 시집부터 두 번째 시집까지 줄곧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시인께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 단위가 가족이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시인께서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령 가족은 힘의 원천이 되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말씀대로 제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전부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눈부처처럼 그들의 눈동자 속에 제가 있고, 저의 눈동자 속에 그들이 있는 관계입니다. 가족을 통해 작품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작품 속에 가족들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가족의 삶은 특히나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눈부처’로 그들과 싸우기도 하고 싫은 소리도 하지만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기 시작하고, 특히 작품을 통해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권의 시집 모두가, 가족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나 단위인 것은 제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시를 쓰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마운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과의 고마운 마음도 곧 그로 인한 관계들로 이어지는 고마움이니까요.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시를 접하고 또 읽고 쓰게 됩니다.
이재성 이번 특집 시는 「어쩌다」 외 9편입니다. 전부 쭉 읽어 내려간 다음 마지막 「백목련」을 읽고 난 다음 다시 「어쩌다」를 읽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령 사건이라고 하면 아마도 친구 남편의 죽음일 것입니다. 또 그로 인하여 우리들도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이 주는 겸허함과 숭고함을 이해해 가는 것이라고 할까요?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고 보고요, 죽음을 앞둔 우리들의 아버지세대를 보면 다시 꽃을 피우는 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생각이 좀 다양해지긴 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입장이라는 자세로 삶이라는 길거리에 가만히 서 있지만, 그래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고 보니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 조금은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이재성 살아가다보면 어쩌다, 문득 뒤돌아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의 큰 통과의례를 지나거나 큰일을 마친 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전 나와 그 이후 나는 삶이라는 연장선상이지만 분명 다를 것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특집 시 「즐거운 쉰」을 보면 쉰 살의 나이를 ‘주인을 버리고 짓이겨진 광고지가 하얗게 죽은 거리, 말라버린 나뭇잎이 바스라져 까끌까끌한 보도를 살비듬이 되어 덮는다. 꽃은 피지 않을 것이고 달도 차지 않을 것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쉰을 막 넘긴 거기, 데워진 달이 열꽃으로 피어나고 피어난 열꽃은 줄기마다 갈라져 타는 목마름으로 뜨거운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미세한 모세혈관들은 물줄기를 찾아 허덕이며 온몸을 흔들어 깨운다./ 데워진 달이, 피어난 열꽃이, 요동치는 심장으로, 간절하게 고개를 든다. 젖은 달빛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달맞이꽃이 노랗게 반긴다.’로 다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쉰이 아닌 ‘즐거운’ 쉰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백세 시대라고 하면 반 백세입니다. 그렇지만 쉰이라는 나이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이는 특집 시 중「적요」를 통해 ‘사무친 사람들이 적요의 얼굴로 생생해진다.’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온 시간만큼 더 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는 ‘청춘이란 인생의 한 때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정령 시인의 시 세계가 새롭게 전환하는 것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인을 사계절에 비유하자면 어디쯤 와 계신 것 같으세요?
정령 보통의 쉰이 아닌 ‘즐거운’ 쉰의 이유가 되려면 어려운 일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쉰 나이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나이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표현하는 의미의 즐거운 쉰은 여자로서의 상실감에서 오는 그런 상실감에서 생각만 달리하면 얼마든지 즐거움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떠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만큼 앞으로 살아온 시간보다 더 살게 되는 시간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인들은 매번 변해야 하고 변해야만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새로워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시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쉽게 읽히며 독자와 소통하는 시입니다. 현재의 저를 사계절에 비유하자면 한 창 매미가 우는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에 대한 열기로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 이 달궈진 상태로 곧 내년에 세 번째 시집을 낼 거니까요.(웃음^^)
이재성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두 권의 시집을 한 출판사에서 내셨는데 다음 시집도 같은 출판사에서 내실지 궁금합니다.(웃음)
정령 글쎄요, 제가 한 의리 하는 사람이라 첫 인연을 ≪리토피아≫에서 맺었으니 곧 나올 시집도 물론 ≪리토피아≫에서 내야겠지요. 저는 그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이재성 진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집 자서를 보면 ‘덜 익긴 하였지만 풋풋한 사과 한 알 먹는다./ 그러나 먹을수록 침이 고이고/ 삼킬수록 배가 허전해진다./ 또 다른 사과 한 알 따먹으러 간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 자서를 보면 ‘덜 익은 사과 한 알/ 다 먹었더니 이가 시리다./ …중략…/ 또 먹다가,/ 다 함께 먹자고/ 소반에 가득 담아 내어놓는다.’라고 쓰셨습니다. 두 자서 역시 시집을 ‘풋풋한 사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시집의 자서와 두 번째 시집의 자서는 연결선상에 있습니다. 이에 세 번째 시집은 ‘풋풋한 사과’일지 아닌 다른 사과일지 궁금해지는데요. 특집 시를 통해 세 번째 사과는 어떤 사과일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면 너무 과한 생각일가요? 이번 특집 시에 세 번째 시집의 주된 주제의식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령 아직 세 번째 시집 자서는 생각도 안 해 봤는데, 정곡을 찌르는 질문입니다. 이제부터 고민하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니 아마 스타킹이나 부사는 아닐 듯싶습니다.(웃음^^) 그리고 이번 특집 작품에서 보이는 일면으로 제 세 번째 시집의 주제를 찾으시는 작가님의 냉철한 시선을 따갑게 받아들이며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제가 표현하고자하는 주제를 제 자신도 확실하게 잡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적절하게 표현하고자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들으면서 좀 당황스럽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인생을 말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현재의 인생을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인생은 늘어난 세월만큼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에 고민도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 절반의 나이에 서서 다시 천천히 제 인생을 더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인생 이야기가 세 번째 시집에서는 잘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재성 사람들은 저마다의 넓고 좁은 드라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가 희소성을 가지거나 대중성을 가질 때 그 부분들은 소통과 공감을 일으킬 것입니다. 반복이 스타일이 되고 그 스타일을 넘어서야 되는 일들이 꾸준히 반복 될 것입니다. 삶이라는 길 위에서 말이죠. ‘삶’이라는 이 한단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일들을 표현하는 일도 시인의 몫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짜,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시인이 지향하는 시적 세계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시인이 바라는 리토피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정령 말씀 백번 옳습니다. 저도 희소성과 대중성을 가진 작품으로 소통과 공감을 얻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인으로서 지향하는 시적 세계는 감사함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감사함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폭폭할까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시를 대하고 읽고 쓰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가 쉽게 읽혀지는 시로 시적 대화가 오가는 사회가 이루어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이 제 시적 리토피아라면 너무 어려운 목표일까요. 저도 이번 ≪신생≫ 특집 시에 관한 e-mail 대담을 하게 되어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이재성 작가님을 비롯하여 지면 할애를 해주신 ≪신생≫ 편집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재성 풋풋한 사과 한 알 익어가기까지 얼마나 걸리지는 자연과 시인의 관심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긴 시간 할여해 질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인의 나무에 어떤 열매가 맺힐지 어떤 맛일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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