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 백인덕
눈이 내린다.
창밖은 서설이 한창,
아내는 멸치를 볶는다.
창안엔 빈 틈 사이 삶이 달궈지고
나는 하르투리안의 책을 읽고,
아내는 남태평양을 유영한다.
지느러미 없이 저 우아한 물질은
그렇다. 당신이 얼마나 숨 고르며 이
세상을 거슬렀는지 말해 준다.
나는 그저, 선언적 명제 아래서만
고만한 섬의 어부가 된다.
성긴 그물로 낯선 은유를 낚아 올려
도매금 어(語시)장에 널어놓고 싶을 뿐이다.
창밖의 서설은 제 스스로 겨워
이제 폭설이다.
올려 보는 창 안에서
유영을 마친 아내가 물빛으로 시선을 건넨다.
나는 아직 '역사의 요동' 속에 있는데,
창 이 쪽, 저 쪽이 진저리치게 밝아온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의 불과 기름에 있고,
저 성긴 눈사이에 하릴없이 서성이고
고단한 참과 꿈의 경계에
지친 빨래처럼 널려있으려니,
창을 메워버리는 눈,
걷어내지 못한 눈의 폭력 아래
이 쪽창 안에서 나지막하게 그대를 부르는
나는 목이 겨워,
겨우, 그대 이름을 부를 뿐.
- 백인덕시집『짐작의 우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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