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령의시인바람♬/[♡] 령이읽은 시

시읽기/통조림(하린)

by 정령시인 2018. 6. 10.



통조림 /하린



 

   

겨울잠 자기에 가장 좋은 곳은 통조림 속이다

이렇게 완벽한 밀봉은 처음

모든 수식어가 바깥에 머문다

 

이곳에서 1인극은 생리적 현상

숨이 막혀도 웃을 수 있고 들키지 않게 울 수도 있다

그대로 멈춰서 극한의 목소리를 삼키면 그뿐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잠이고

유통기한은 무한대니 적을 필요가 없다

용도는 단순하게 목적은 비릿하게

 

미발견종으로 1000년쯤 살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고고학적 취향을 즐기자

미라가 돼서 타인의 꿈속을 유령처럼 걸어 다니자

 

누구든 통조림 안이 궁금해서 서성이게 만들면 된다

한참 후에 발견될 유언 몇 줄을 빗살무늬로 새긴 상태면 족하다

 

어떤 천사가 뚜껑을 딱하고 딸 때까지

처음 그대로 변질도 없이 참다가

젓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꿈틀대면 되는 거다

 

계절은 딱 하나다,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다

머릿속 황사가 걷히고 심장 속 늪지대가 마르고

내가 나에게 들려주던 거짓말도 삭제된다

 

누군가를 저주하던 버릇은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증오는 토막 난 후에도 싱싱해지고 있는 걸까, 점점 더

-『현대시』2016. 6월호 <현대시가 뽑은 이달의 시인>에서





감상> 사람들은 누구나 상상을 즐긴다. 이처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린시인이다. 말하듯 풀어가는 언변이 능수능란하다. 확  한번에 빨려들어가 단숨에 읽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계절은 딱 하나다, 궁핍도 가난도 비굴도 없다/머릿속 황사가 걷히고 심장 속 늪지대가 마르고/내가 나에게 들려주던 거짓말도 삭제된다-언젠가나를 괴롭히던 누군가가 밉고 원망스러워 숨고 싶은 그 때에 이 시를 읊어본다면 그 맛은 또 달라질 것이다.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듯 늘 상반된 감정은 우리들 주위를 따라다닐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