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원 야고 / 변종태
난지도의 새 이름 하늘공원에
만발한 억새풀 사이 걷다 듣는다.
귀에 익은 종소리, 물 건너 제주에서 듣던 그 종소리,
바람 불 때마다 딱 한 번만 들려주는 소리,
무자년* 분홍 종소리 예서 듣는다
부끄럼에 상기한 볼, 아니란다.
억새 뿌리에 몸을 감춘 채
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 있었단다.
잎사귀 같은 서방 산으로 가 소식 끊기고
돌배기 딸년의 울음소리 데리고 찾아 나선 길,
어디서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
휘릭 바람을 타고 지나칠 때
아이의 울음 그러막으며 억새밭에 납작하게 엎드린 목숨,
이제나 저제나 수군거리는 소리 잦아들까.
틀어막은 입에서 새던 가느다란 숨소리마저 잦아들고
붉게 상기한 볼, 딸아이 가슴을 텅텅 치며
목 놓아 부르던 딸아이 이름,
야고야 야고 야고,
핏빛 물든 억새 밑동에 몰래 묻어야 했던 분홍 종소리,
오늘 예서 듣는다.
서울 복판 하늘공원 발그게 울려온다.
*무자년 : 제주 4.3사건이 일어나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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