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꿈틀꿈틀
구부러진 생으로, 필생의 역작
한일자를 긋던 그가
백주대로에 헛발 디뎌
오그린 채 열반했다
축축한 어둠이 길든 그에겐
한낮으로 훤한 길바닥이
깜깜한 절망의 절벽이었겠다
자세히 살펴보니
힘주어 멈춘 운필의 마디마디에
흐르다 막힌 검은 먹물이
뭉툭뭉툭 뭉쳐있다
통째로 주름투생이인 그가
죽어서도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주틈의 틈들을 끌어당긴다
다 닳은 몽당붓을 비틀어 짜며
마침내 올곧은 한 획이 되려고
다시 한 번 꿈틀
집요한 수습이
한일자의 전서체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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