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1.
어느 부끄럼나라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임금이 있었어. 그 나라에는 비읍이 없었어. 임금이 얼굴만 내놓고 온통 감싸고 다니면서 ㅂ자만 들어도 경기를 해서 백성들도 덩달아 싸매고 다녀야 했고 심지어 동물들도 싸매야 했어. 말은 네 발에 바지를, 소는 망토를 두르고, 닭은 밑이 뚫린 치마를 입었지. 민감한 단어인 ㅂ이 들어간 단어를 쓰질 못하게 해서 백성들은 바람을 아람이라 하고 벌러덩은 얼러덩, 벌거숭이는 얼거숭이, 벗다는 엇다, 벚꽃은 엊꽃, 봄은 옴이라고 읽었어. 백성들은 말이 꼬이자 말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온 나라 안이 침묵했어. 쪽지가 떠돌기 시작한 건 그 쯤일 거야. 쪽지엔 한 날 한 시에 모두 홀딱 벗고 다니자는 내용이었어. 작전개시일 임금은 기절할 지경이었을 거야. 모두 벗고 있는데 혼자만 옷을 입었잖아.
2.
한참을 고민하다가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는 볕 좋은 날 벌거숭이들이 산다는 나라를 방문하는 꿈을 꾸었어. 홀딱 벗은 벌거숭이들이 바다에 누워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에서 봉긋한 가슴으로 배꼽으로 보드라운 살갗이 이어지는 반듯한 다리까지 발기된 채 바라보는 자신에게 벌거숭이 여인이 전해주는 ㅂ이라는 숭고한 단어를 받아들고, 오일을 바르고 반질반질한 피부를 만지려는 찰나.
3.
ㅂ은 사랑을 받는 그릇이 되었고 지금도 ㅂ은 부끄럼나라에서 입을 벌리고 비밀을 지키며 온 나라 안에 ㅂ을 채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