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령의시인바람♬908

살구꽃/정령 시집[연꽃홍수]중 47쪽 살구꽃 가그랑가그랑 기침 소리 문풍지를 흔들면요 대롱대롱 고드름이 놀라 엉겁결에 툭 떨어지고요 댓돌에 누워 있던 누렁이 벌떡 일어나서는요, 고드름 물다가 소스라쳐 부엌으로 달려가서는요. 부뚜막 고무신짝 물고 와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대는데요 방문이 열리고 서리 앉은 머리는요, 옥색대님 여물게 묶은 발목, 문지방 넘어와 고무신 신고요 오동나무 반지르르한 지팡이 땅을 탁탁 짚으면요 누렁이 꼬리 흔들며 아지랑이 피는 들길 먼저 달려가고요 누렁이 달려가는 길목마다 지팡이 콕콕 찍으면요 메마른 골짜기 얼었던 물이 졸졸졸 흐르고요 겉껍질 푸석거리던 앙상한 가지도 빠꼼히 잎을 피우고요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면 봄바람 살랑살랑 봉긋한 꽃망울, 살살 살구꽃이 저렇게 벙글어지는데요. 사뿐사뿐 살랑대는 치맛자락 지팡이로 톡톡 .. 2023. 6. 6.
눈부처 /정령 시집[연꽃홍수]중 97쪽 눈부처/정령 네 눈 속에 사람 하나 서 있다. 네 눈 속에 그 사람 별처럼 반짝인다. 너를 가슴에 품은 사람 눈물 따라 똑 또르르, 나를 보내고, 너도 보내고, 보내고 보내도 네 눈 속에 아직 나 있다. 2023. 6. 6.
그릇/ 정령 시집[연꽃홍수]중 108쪽 그릇/정령 어머니가 우신다. 무명 치맛자락 동여매고 화전밭 일구시던 마디 굵은 손으로 뚝뚝 눈물 훔치시다가, 이 빠진 시엄씨 호령에 꿀꺽 그마저 삼켜버린다. 호리호리한 며늘아기 볼 때마다 쓰다듬고 다독이더니, 손주딸 품에 안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단다. 훌훌 털어보내시니, 금지옥엽 내 아가 아까워서 어쩔꺼나. 벙어리 귀머거리 눈봉사로 살지 말고, 쏟아내고 넘치도록 퍼주면서 살라고, 문간에 나와 손 흔들어 배웅하니 어머니 마음만 타들어간다. 2023. 6. 6.
시계/ 정령시집[연꽃홍수]중 103쪽 시계/정령 넌 이제 끝이다. 그동안 널 만나려고 초란을 불러 꽃다발도 주고 예쁜 브로치 달아주었더니, 쭉빠진 분녀에게 눈웃음 한번 찡긋, 귀여운 시동이하고는 상큼한 입맞춤, 넌 정말 끝이다. 시동이 너 좋다고 기어이 따라나서는 걸 분녀가 잡아두고는, 초란이 오기를 기다려 삼자 대면할 때 나는 대성통곡했다. 초란이, 분녀, 시동이, 그 세 녀석이 한 집에서 나오는 걸 나는 다 봤다. 니들, 딱 걸렸어. 2023.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