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오래된 것들은
침잠되기도 하고
누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의 언어가
사유와 더불어 오래도록
생활 속에서 침잠하고
그만의 삶과 더불어
누적되었다면,
우리도 시인의 호흡을 따라
퇴적된 행간을 채우며 무작정 걸어 봄직하다.
누구든 그를 신뢰하며 상처를
마음 놓고 만져볼 수 있을 테니.
시감상)
빈 방
너는 말하고 애인은 울었다.
너는 바다와 산과 도시의 골목을
애인은 버스정류장과 빈 방을
오래 기웃거린 뒤였는데
기다림의 뿌리에 대하여
한 뿌리의 기다림에 대하여
뻗어나간 기다림의 여러 줄기에 대하여
기다림의 하늘이 들지 않아 어둡고 쓸쓸해
빈 방일 수밖에 없는 빈 방에서
너는 말하고 애인은 울었다.
언 땅이 풀리기 전 꽃이 피기 전
애인은 떠났다.
애인은 그대를 안았을까.
언 땅이 풀리고 꽃이 필 때까지도
너는 빈 방을 떠나지 못했다.
애인이 뿌리에 닿았다는 풍문을 들었을 쯤에는
너는 이미
암종같은 빈 방을 여럿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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